2024년 03월 13일
수요일
📖 생명

가이사랴 빌립보

(마16:13) 예수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역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 합니까?”라고 물으시니

(16~17)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바요나 시몬이여, 그대가 복이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에게 계시하신 분은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주님은 거룩한 땅 북부의 경계선 근처에 있는 헐몬 산기슭에서 변형되셨습니다. 그곳은 각 사람들의 생각이 낡은 유대 종교의 분위기로 가득차 있어서 새 왕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여지가 전혀 없었던 거룩한 도시와 거룩한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의도적으로 청명한 분위기가 있는 그런 곳에 데려가신 것은 그들의 생각을 거룩한 도시와 성전의 종교적인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하시려는 것이었고, 또한 하늘의 왕국의 맥박과도 같은 그분 자신과 교회에 관한 어떤 새로운 것을 그들에게 계시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셨고, 그분의 성도들이 역대로 고대해 왔던 분 곧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오실 분을 가리킵니다.출처 : 내 마음의 보물

✝️ 진리

금욕주의 대 그리스도의 십자가(1)

(골2:21~23) 그 규례는 곧 "붙잡지도 마라. 맛보지도 마라. 만지지도 마라." 라는 것으로서, (이런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썩어 없어질 것들입니다.) 사람의 계명과 가르침에 따른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제멋대로 하는 경배와 가식적인 겸허와 자기 몸을 학대하는 데에는 지혜롭다고 하는 평판이 있지만, 육체의 방종을 막는 데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체험하는 것과 금욕주의를 대조해 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금욕주의를 위한 여지가 없고, 육체의 탐닉을 제한하기 위하여 몸을 가혹히 취급하는 것에 대한 여지가 없습니다. 금욕주의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반대로 그것은 인간의 발명품이며, 사람의 타락한 생각의 산물입니다. 힌두교도나 불교도는 금욕주의를 실행할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금욕주의는 골로새서 2장 20절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의 초보적인 교훈의 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초보적인 교훈은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관한 초보적인 원칙이며, 종교적 형식주의의 유치한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초보적인 교훈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미숙한 가르침을 가리키며, 이 가르침은 고기와 마시는 것, 씻는 것에 관한 의식적인 규례와 금욕주의로 구성됩니다. 금욕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은 몸을 합당하게 다루지 않고, 육체를 억누르려고 자신을 가혹하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 즉 십자가의 길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따라 십자가는 우주 안에서 하나님의 중심적인 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길이 금욕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말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금욕주의를 실행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기쁨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는 기쁨이 가득한 사람들이고, 주님 앞에서 지속적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몸에 고통을 가하고, 몸을 학대해야 합니까?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우리의 길, 유일한 길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체험하는 것은 금욕주의와 반대됩니다. ( 발췌문 : 하단 영문 참조 )

🌏 Truth (English)

Asceticism versus the Cross of Christ (1)

Col 2:21~23 Do not handle, nor taste, nor touch, (Regarding things which are all to perish when used) according to the commandments and teachings of men? Such things indeed have a reputation of wisdom in self-imposed worship and lowliness and severe treatment of the body, but are not of any value against the indulgence of the flesh.

In this message we shall go on to see that the experience of Christ's death is versus asceticism. In the Christian life there is no place for asceticism, no place for treating the body severely in the attempt to restrict the indulgence of the flesh. Asceticism is not God's way.

On the contrary, it is a human invention, a product of man's fallen mind. Hindus and Buddhists may practice asceticism, but Christians should not. Asceticism is part of the "elements of the world" spoken of in 2:20.

These elements are the elementary principles of outward, material things, the childish teachings of externalism. These elements denote the rudimentary teachings of both Jews and Gentiles, teachings that consist of asceticism and of ritualistic observances in meats, drink, and washings. It is an elementary principle of asceticism to mistreat the body or to treat ourselves severely in an effort to suppress the flesh.

God's way, the way of the cross, is altogether different. According to the economy of God's salvation, the cross is God's central way in the universe. I wish to emphasize the fact that God's way is not asceticism.

No Christian should practice asceticism. As believers in Christ, we are not a joyless people. On the contrary, we are a joyful people, those who constantly rejoice in the Lord.

Why then should we inflict pain on our bodies or mistreat ourselves? How foolish! Our way, the unique way, is the cross.

Therefore, the experience of the cross is versus ascetic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