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사이에서
금년 나이 54세의 처제는 난소암 때문에
5년간 투병생활 하다가 이제는 막바지에 와 있었다.
20일 째 음식을 먹지 못한 채 그녀는 집에 누워있었다.
그야말로 살가죽과 뼈만 남아 있었다.
눈은 휑하니 움푹 들어가 있었고,
머리털은 다 빠져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이고
몸무게는 28Kg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 사람이 이럴 수가!
말하려고 할 때마다 메말라 있어서 물수건으로 입술과 입안을
적신 후에 겨우 몇 마디하곤 했다.
손이 떨리고 힘이 없었다.
그녀의 손을 만졌을 때 너무나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산 송장이 따로 없구나!
IMF 때문에 남편이 실직되고 가정이 어렵게 되자
재정적인 압박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결국 불치의 병에 걸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고 육신의 생명이 끝나게 된 반면
그녀는 놀랍게도 그리스도를 얻게 된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인 것이다.
남편이 먼저 주님을 영접했지만 항상 남편을 무시했던
그녀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암으로 검사결과가 나오자
처음에는 낙심했었고 결국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지 5년이 된 것이다.
최근에 처제(자매)는 세 차례나 삶과 죽음사이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이런 처제를 찾아간 우리가 무슨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궁리끝에 혹시 좋아하는 찬송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뜻밖에도 처제는 860장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자매의 남편인 형제와 함께
조용하게 그러나 간절한 맘으로
처제를 위해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힘없이 누워있던 자매가 찬송소리에 얼굴이 환해지면서
그녀 자신도 누워서 있는 힘을 다하여 입안을 적셔가며 작은 소리로
찬송을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대가 없이 사랑케 하소서 보상 없이 섬기게 하소서
알아주지 않더라도 주여 나로 고난 받게 하옵소서
나는 마시지 못할지라도 나로 포도주 붓게 하소서
나를 잃어 그들 위로하며 나를 쏟아 축복케 하소서>
처제는 양손을 휘저으면서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냄새나는 반 지하 방은 갑자기 천국으로 변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남편도 그녀 자신도 모든 것을 잊고
찬송 안에 몰입되고 있었다.
<동정이나 도움구치 않고 영광이나 부 구치 않아
비참하고 외롭더라도 버림받고 멸시받아도
나그네 길의 슬픔 모두 참으며 면류관 위해 대가 지불하리라>
참으로 이런 분위기 안에서 이 찬송이 어찌 그리 어우러지는지!!
기묘하고 기묘한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처제는 천사 같은 얼굴빛으로 변했으며 아멘 아멘을 연발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50년 살아서 얻을 수 있는
그리스도를 5년 안에 얻은 것 같았다.
우리는 울다가 웃다가 기도하다가 찬송을 부르다가
마치 무엇에 이끌려가듯이 같이 손을 흔들며
주의 이름을 부르고 아멘을 연발하며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주일 아침에(05/3/20)
처제는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주님 품에 갔다.
벽제에서 화장 후에 남은 한 줌의 뼈 항아리를 붙들고
통곡하는 남편을 위해...
장례를 치루고 나서 죽은 동생의 딸과 함께
우리 자매는 그 집에 가서 청소하고 냉장고를 정리해 주었다.
이미 주님 품에 간 처제가 요청해서 끓여다 준 뼈 국물과 사골 뼈들과
이것저것 해다 준 반찬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남편 형제님의 말인즉 자기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편과 아들을 위해서 언니에게 요구했었다는 것이었다.
아파서 고통 중에서도 남편을 생각했던 처제로 인하여
우리 자매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처제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고 장례까지 치루고 나서
우리 부부는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느낌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만이 삶과 죽음의 참된 주인이시요
삶과 죽음 사이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2005년 3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