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은 그 다음엔? (1)
성경진리토론방
, 2005-01-02 , 조회수 (349) , 추천 (0) , 스크랩 (0)
우리가 다 알듯이 거듭난 이후의 삶은 믿음으로 사는 여정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어제 한 해의 마지막을 기하여 모인 자리에서 2005년에 실행할
성경 일년 일독표를 받았습니다. 거의 하루에 구약 세장 신약 한장
읽는 정도의 진도입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직접 쓴다는 분도
보았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
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바쁜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가한 시간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매일 성경을 서너 장씩 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것도 꾸준히... 많은 경우 이런 식의 성경 읽기는 콩나물에
물 주는 식입니다. 읽은 말씀 중에 어떤 것은 은혜가 되고 또
어떤 것은 뭔 말인지 모르지만 계속 진도를 나갑니다. 그래도
안 읽는 것보다 낮습니다.

어떤 때는 어떤 말씀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 이것이 무슨 말이냐
고 여쭙니다. 또 어떤 때는 다른 성경 해설자가 쓴 주석도 봅니다
물론 라이프 스타디를 많이 보거나 영어 회복역의 각주와 관주
를 봅니다.  외부 분들이 (지방)교회 사람들은 맨 날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책만 본다는 소리가 한 편으로는 듣기 싫고, 또 다른
면에서는 다른 이들은 도대체 뭐라고 주석을 다나 하고 다른
주석을 보기도 합니다.

빈센트 신약 워드 스타디도 보고, 한 헬 영 인터리니어도 봅니다.
어떤 때는 정말 애매하고 쟁점이 될 만한 구절 (예를 들어 벧전
3:18-19)은 한국 책방 가서 관련 주석을 최대한 찾아서 메모를
하고 비교를 해 봅니다. 어떤 때는 칼빈 주석 전집을 뒤질 떄도 있
습니다(예를 들면 요3:16 같은 구절을 뭐라고 해설했는지 보려고).

천국에 대한 견해를 비교해 보려고 책방가서 여러 권의 책을
사서 보기도 하고, 재림과 휴거에 대한 책, 천년왕국에 대한 토론
책, 누가 누구를 이단 삼단한 책들을 사서 훑어보면서 도대체
사람들은 이런 쟁점이 되는 말씀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지를
꼼꼼히 챙겨 보기도 합니다.

그런 후 내린 결론은... 역시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책이 포괄적,
입체적, 구체적이고 특히 체험적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런 결론은 비판하시는 분들의 생각처럼 눈귀 막고 세뇌되어
내린 결론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부분은 다른 단체에서 더 자세히 그리고 깊이 다룬
부분도 있습니다. 대환란이나 휴거에 대한 부분 다니엘서의
일곱 이레 부분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하게 써 놨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적용)라는
의문을 가지고 보면 막상 다뤄주어야 할 그 부분에 가서는 침묵
입니다.

성경을 읽고 풀되, 적용을 감안한 것이 아니거나 하나님이
성경기록자들을 통해 하시려는 말씀의 의도가 뭔지를 모르고
그저 좁고 깊이 파고들어가기만 하다가 미로에 빠진 경우도
있습니다.

근 10여년 전에 (미국에서) 원어 성서만 읽는 다는 단체의 사람
을 무슨 일로 가까이서 지켜 볼 일이 있었습니다. 원어 성서를
가르친다는 사람의 가정 생활 사회 생활이 엉망이었습니다.
말씀을 푼 내용도 각 각의 단어의 의미에 너무 집착하다보니까
전체 본문의 흐름과 동떨어진 엉뚱한 해석을 하고 그것을 붙
잡고 있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원어 성서 하시는 분들이 다
그렇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 성경을
잘 푸는 것이 실 생활에 제대로 적용되고 삶의 간증을 통해
표현되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그 때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특정 성경을 선호하는 분들도 말씀에 대한 사랑과 절대적인
태도는 칭찬할 만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그런 분들일수록 고집이 세어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모르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것처럼
외부에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고 갈라서기가 일쑤였습
니다. 그렇다면 요17장의 주님의 하나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무오한 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구호는 무엇
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말을 제가 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를 통해 주님이 계시하신 가르침
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어떤 분들의 비판처럼 맹목적으로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입니까?
인터넷 검색만 치면 관련 정보들이 주르륵 떠 오르는 세상입
니다. 북한처럼 정보를 통제하고 주체사상을 세뇌한다고 비난
을 받는 사회도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여러 가지 정보체널이
가동되고 있습니다. 소위 (지방)교회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또한 성경에 대한 기초도 없고 생각도 없는 문외한 들도 아닙
니다. 성경에 없는 말이나 성경에 위배되는 말이 혹시 있다면
그것을 지적해 주면 고려해 보고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성희 형제님이 여러번 절규하듯 항의하신
것처럼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믿지 않는 작문수준의 내용을
가지고 와서 이것 틀렸으니 너희가 이단 이니 삼단이니 합니다.
이런 일은 최 0경 목사가 시발이고 그 후에 이0규님이 그 유사
한 일에 연루되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오히려 자신들이 틀린 기준
을 가졌으면서 우리가 틀렸다고 고집합니다. 이런 설득력 없는
비판들이 영향력을 행사할리가 없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그
표현 언어와 영이 합당하지 않아 권고의 무게를 잃어버리기도 합
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이유에건 온유함을 상실 할 때 이미
그의 말은 바람빠진 타이어처럼 되어버린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둘째는 성경을 읽어 그 뜻을 바로 이해한 후에 그것을 삶에
적용하여 바른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성경 많이 읽고
많이 안다는 생각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아는 척하며 이런 저런 말로 남을 참견하고 비판
하는 분들의 말과 삶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의 향기가 흘러
나온다면 그 앞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이 아는 것만 많고 자신을 과신하며 남을 비판하는 일에만
빠르다면 그 말씀이 먼저 자신을 구원해야 할 것입니다.
즉 자신부터 맏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겸손하게 기도하며
말씀 앞에 순종하는 일이 남을 비판함보다 앞서 실행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 그야말로 붓가는 대로 쓴 '성경을 읽은 그 다음엔?'
1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