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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9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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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티스트들과 노바티안에 대한 당시의 반응들에 대해 서술된 부분을 읽었는데요,
(내용인즉)
콘스탄틴이 국가가 억류하고 몰수했던 교회재산과 막대한 금품을 교회에 선물하고자 했을때 북아프리카 지방에서 서로가 보편교회를 대표하며 이 재산과 피해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두 집단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때 이것을 조사해보기 위해서 컨스탄틴은 카르타고 감독 카에실리안을 책임자로 세웠는데 이것을 반대하고 나선 쪽이 도나투스다.
이들은 일찌기 디오클레안 황제 박해때 생겨난 무리들로서, 누구든지 박해 아래서 그 신앙을 타협한 것처럼 보이는 자들, 특히 성경사본을 경찰들에게 넘겨준 자들을 심히 배척하였는데, 이번에 조사 책임자가 된 카에실리안이야말로 성경사본을 넘겨준 자로서 의심받고 있던 인물이 임명해서 세운 감독이였다.
도나투스주의자들은 카에실리안의 이러한 직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콘스탄틴에게 그의 성직임명을 번복시켜 줄것을 항소하였다.
이에 콘스탄틴은 로마감독과 세명의 고올지방 감독들을 진상조사 위원회로 구성하고 조사에 들어갔으며, 의장은 15명의 아탈리아 감독들을 더 임명하여 수사했다.
그러나 도나투스주의자들에게 만족할만한 결론이 나지 않자 그들은 다시 한번 황제에게 항소하였고, 콘스탄틴은 다시 314년 8월에 아를르(고올)에서 재차 회의를 소집하였으니, 서방감독들이 23명 출석에 브리튼(영국)에서 3명의 감독이 참석하는 회의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별다른 혐의를 발견치 못하고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도나투스주의자들은 카에실리안과 교제를 끊고 315년에 자기들의 지도자 도나투스를 카르타고 감독으로 임명하였으며, 카에실리안뿐 아니라 그와 교제하였던 동서방의 모든 교회를(모든 기독교권)을 파문시켰다.
316년에 도나투스는 다시한번 황제에게 항소하였고 이때는 황제가 공식적으로 카에실리안의 무죄를 선포했으며, 누구를 막론하고 이 결정에 순응하도록 명령하기에 이른다.
자기들의 입장을 인정하지 않는 황제에게 실망한 이들은 영적 자유를 고창하게 되었다.
이들의 슬로건인 "황제와 교회가 무슨 상관이 있느뇨?"는 그 자체로서는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자기들의 주장을 성취하기 위해 먼저 황제에게 호소했던 자들임을 생각할때 실소를 금할수 없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또한 노바티안에 대한 기원도 역시 교회에 가해졌던 혹독한 박해에서 그 신앙을 타협한 자들을 어떻게 대할것이냐는 문제를 결정하는교회 지도자들간의 이견에서 출발한 것으로 나옵니다.
(내용)
251년 데시우스 박해가 끝난직후, 박해 도중 시련에 못이겨 신앙을 배반했다가 후에 다시 회개한 약한 형제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교회안에 의견이 갈라졌다.
바로 이러한 논란 가운데 노바티안 분파가 발생하게 되었다.
로마 감독 시프리안과 및 다른 감독들이 의견을 같이하여 변절자들 역시 엄격한 회개기간을 거쳐 다시 기독교 신도들의 교제에 참여할수 있다고 판정하자 당시 로마교회의 장로 노바티안이 이끄는 엄수파들은 로마교회를 결별하고 또다른 공동체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노바티안을 자기들의 감독으로 임명하였으며 노바티안 주의자들은 로마교회와 카르타고로부터 스페인 나아가서는 소아시아 지방에 이르기까지 널리퍼진 분파를 이루게 된다.
물론 이들은 스스로를 노바티안 주의자들이라 부르지는 않앗으며
자칭 퓨리탄, 즉 카타로이(카타리)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즉 자기들은 큰 죄를 지은 기독교인들이 다시 교회내의 순수한 교제에 참여할수 없다는 중요한 교리에 있어서 성결을 지킨 자들이라는 의미였던 것으로 보인다.교리적으로볼때 이들은 엄격하게 정통을 지키고 있었다. 여기에 시프리안은 그들이 아무리 순수하고 정통을 지키고 있다 하더라도 보편교회와 단절하고(한 몸에서 갈라져나간)이탈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다른 좋은 점들을 무의미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중략)
저는 상당히 당황스럽습니다.
이 기록의 객관성도 물론 살펴야 겠지만 노바티안 분파나 도나투스분파의 기원이 생각햇던 것보다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 옮기지 못했으나 다른 독립교회 사이트에 소개된 도나투스와 노바티안의 설명보다는 많은 부분이 자세히 기록되어잇고, 교회사를 통괄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흐름도 파악하기 쉬운 책입니다.
무조건 보편교회(카톨릭)과 분별됐다는 점만 흥분된 어조로 씌어잇을뿐 당시 경위나 상황과 기원이 거의 언급되지 않은 재침례성도역사는 저와 같은 작은지체에게 오늘날의 킹제임스 성경진영과 독립교회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감상적인 효과만 줄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는 당시 안티옥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들과 사상도 소개가 되고 있고, 간략하나마 시리아 사본들에 대한 흐름도 조금씩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초기 이단들로 인해서 보편교회가 함께 세워나가야 할 주요교리들에 대한 공회가 열리는 당위성도 이해가 잘 되는 편입니다.
반발과 저항과 이견속에서도 교회가 몸살을 겪으며 기초교리들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과정이 제가 보기에도 만만해뵈지 않습니다.
이런 과정들에서 육신적인 지도자들의 정치음모와 권력투쟁들을 보여주고 교회에 끼친 부작용과 영향력등을 잊지않고 언급합니다. 오늘날도 이런 모습들을 많이 보지요.
저는 이 책에서 소개한 도나투스와 노바티안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노바티안분파의 기원은 베드로의 선례를 망각한 행동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저와같이 작은 지체가 분별할수없는 내용이기에 신중하고 사려깊은 형제님들의 도움을 받아볼까 합니다.
제가 살펴봐야할 서적들이 있으면 소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참! 노바티안과 시프리안의 때는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하기 전의 일이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