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덴시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사도 관련
성경진리토론방
, 2004-12-23 , 조회수 (311) , 추천 (0) , 스크랩 (0)

제가 아래 글들을 이곳에 소개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다시 짚어보기 위함입니다.

1. 왈도파 내에 있던 '사도들'의 실행은 박만수 님의 주장처럼
로마 천주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가?

  이 사도성-사도가 지금도 존재하는가?-에 대한 토론은 아직
결론이 난 사안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이 주제를 다시
토론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래와 같은 두 엇갈린 주장 중
어느 것이 <역사적 사실>에 근접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
입니다.

아래 글을 쓴 E. H. 브로우드벤트 는 <왈도파의 교리와 실행은
카톨릭 교회나 희랍 정교회로부터 영향 받은 흔적이 전혀 없다>
고 주장하고, 안티오크 박만수 님은 이들이 사도를 두어 실행한
것은 로마카톨릭의 사도직 승계 실행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라고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http://www.antioch.co.kr/Antioch/Qna01/View.aspx?QnaID=833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  둘 중 하나는 거짓입니다.


2. 두번째 자료글에서 보듯이 만일 왈덴시안들이 소위 성경신자
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카톨릭의 영향을 받아 그 당시 사도 실행을
허용했다면, 지금도 아무리 성경신자들이라고 해도 여전히 카톨
릭의 영향 아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도 좋은가? (만일 그
렇다면 성경신자가 더 나은 점이 무엇인가?)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 정황을 볼 때 박만수님의 주장보다도 아래
글 내용이 더 객관적인 것 같습니다. 만일 박만수님의 주장을 옳
다고 여긴다면 안티오크 측이 성경신자, 성경교회 모델로 삼아
추구하는 재침례교도 내지는 왈덴시안도 아무리 성경신자라고
해도 여전히 로마천주교의 영향력 아래 있는 오류를 범한 사람들
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박만수님의 주장에 의하면
그들이 성경신자라고 하면서도 정작 성경에서는 이미 계시록을
끝으로 끝났다는 사도직을 로마카톨릭의 영향을 받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자료1)

http://biblechurch.or.kr
(아래 글은 위 홈에서 '순례하는 교회, 왈도파의 교리와 삶'
중 일부를 인용한 것입니다.)



왈도파의 가르침

왈도파 또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진 이들 형제들의 교리와 실행은 성격상 카톨릭 교회나 희랍 정교회를 개혁하려는 노력의 열매가 아니라, 보다 성경적인 방법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의 열매였음에 분명하다.


(바로 이부분을 주목-필자주) "그들의 교리와 실행은 이들 교회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전혀 다른 근원 - 성경의 가르침과 초대 교회의 실행-으로부터 전수되어온 오랜 전통의 존속임을 보여 준다. 그들의 존재는 교회 안에 사도 시대의 것과 유사한 전통을 유지하고 지배적인 교회들이 발전시킨 전통과는 멀리 떨어져 있던 믿음의 사람들과 영적 권능과 지각의 사람들이 항상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들은 성경과 별개의 어떤 특별한 신앙 고백이나 규칙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성경의 권위를 제쳐놓는 인간의 권위는 일체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세기를 거쳐 모든 나라에서 그들은 동일한 진리를 고백했고 동일한 실행을 가졌다. 그들은 복음서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들을 가장 높은 계시로 여겼으며, 그분의 말씀과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일치시킬 수 없을 때에는 그것들을 모두 받아들이되 복음서의 분명한 의미로 여겨지는 것들을 따라 행동했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며, 그분을 본받는 것이 그들의 주요 주제였으며 목적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은 누구에게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참된 추종자들을 따르는 자의 기준으로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분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시다. 누구든지 그분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지킬 것이다.  또한 몇 가지 중대한 진리는 교제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의문이나 견해의 차이가 남아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자유가 허용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내주하는 영의 내적 증거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가장 높은 진리는 가슴으로부터 마음으로 오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계시가 주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보다 분명한 깨달음이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가장 강조된 부분은 산상수훈으로서, 그들은 산상수훈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삶의 규칙으로 여겼다. 형제들은 유혈(流血), 사형, 신앙 문제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 자신들에게 해를 끼친 이들에 대해 소송을 거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자기 방어와 심지어 무기도 허용하였다. 따라서 계곡의 거주자들은 그들 자신과 가족들이 공격을 받을 때 방어를 취했다. 비록 어떠한 경우에는 부득불 맹세를 했을는지 모르나, 그들은 쉽게 맹세를 하거나 하나님 혹은 신성한 것들의 이름을 경솔하게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을 카톨릭 교회가 구원의 문을 열거나 닫는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구원은 어떠한 성례전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으며, 사랑의 행위에 의해 보여진다고 믿었다. 그들은 인간의 자유 의지 교리와 함께 선택에서 하나님의 주권 교리를 신봉했다.

그들은 모든 시대에 모든 형태의 교회에 하나님의 뛰어난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암브로우스, 어거스틴, 크리소스톰, 끌레르보의 버나드, 기타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사용하였으나, 이들을 전부 받아들인 것은 아니며, 보다 오래되고 보다 순수한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만 받아들였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 중에는 신학적 토론과 소책자 논쟁을 좋아하는 성향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렸으며, 실제적인 경건의 가치를 크게 강조하였고, 묵묵히 하나님을 섬기며 선을 행하기를 원했다.

교회의 질서


(바로 이 부분을 주목-필자주)"교회의 질서에 있어서 그들은 단순함을 실천했다. 그들 가운데에 로마 교회(역자주: 로마 카톨릭교회) 안에서 발생한 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교회와 장로들은 매우 진지하게 그들의 책무를 받아들였다. 징계, 장로들의 임명과 기타 여러 가지 행함의 문제에 있어서 장로들과 함께 온 교회가 참여했다.


주님의 만찬은 모든 믿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을 위하여 드려진 주님의 몸을 기념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동시에 주님을 위해 부서지고 부어지도록 자신들을 포기하라는 강한 권면으로 간주되었다. 반대자 레이머는 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1260). "밥티슴(침례)에 대해, 어린아이들은 침례에 의해 구원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오류가 있다. 그들은 주님께서 '믿고 밥티슴을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요'(막 16:16)라고 말씀하셨지만 어린아이는 아직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들은 진실로 이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부름 받은 자들에게 안수를 통한 사도적 계승을 믿었다. 그들은 교황 실베스터가 교회와 국가의 연합을 받아들일 때 카톨릭 교회는 사도적 계승을 잃어버렸으나, 그것이 그들 가운데서 남아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환경에 의해 그 적용이 불가능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 없이도 필요한 은혜를 내리셨을 것이다.

그들이 "사도들"이라고 부른 자들은 그들의 증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장로들과 감독들이 가정과 교회에 머물러 있었던 반면에 "사도들"은 계속적으로 순회하며 교회를 방문하였다. 왈도파 사도들은 재산이나 재물, 집이나 가족을 갖지 않았다. 설령 그것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버렸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자기부정, 고난, 위험의 삶이었다. 그들은 돈도 없고 두 벌 옷도 없이, 최대한 간소하게 순회를 했으며, 그들의 필요는 그들이 말씀으로 섬긴 자들 가운데 있는 믿는 이들이 공급하였다.

그들은 항상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이 짝을 지어 다녔는데, 젊은 사람이 나이든 동료를 시중들었다. 그들의 방문은 대단한 존경을 받았으며 사람들은 모든 경의와 애정을 표하며 그들을 대접했다. 그 시대의 위험 때문에 그들은 대개 상인들처럼 여행하였으며, 자주 젊은 사람들은 칼이나 바늘 등과 같은 가벼운 세공품들을 팔기 위해 가지고 다녔다. 그들은 결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나는 사람의 몸을 보살필 수 있도록 의학을 공부했다. 종종 그들에게 "하나님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러한 섬김을 맡을 사람들을 추천할 때 그들은 매우 신중한 주의를 기울였다. 왜냐하면 헌신된 한 사람이 이러한 사역에로의 부르심에 대하여 덜 분명한 백 명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가난을 택하였지만 다른 점에서는 교회의 가난한 지체들을 돕는 것이 각 교회의 주요 임무였다. 때때로 개인 집들이 부족하거나 간소한 집회 장소를 지을 경우, 교회의 가난한 지체나 연로(年老)한 지체들이 살고 보호받을 수 있는 집이 부설되었다.

규칙적인 개인 성경 읽기, 규칙적인 매일 가정 예배, 그리고 자주 열리는 집회는 영적 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이들 성도들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도들이 가끔 법정에 섰다고 말했으나, 그들이 재판관으로 앉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들은 영성 뿐만 아니라 교육도 중요하게 여겼다. 교황 인노센트 3세는 왈도파에 대하여 두 가지 증거를 하기를 "왈도파들은 그들 가운데 교육받은 평신도가 설교자의 기능을 담당했으며, 또 그 안에 하나님을 소유한 자에게서만 설교를 들었다"고 했다 (후략)


(자료2)

http://www.thefaith1611.org/zeroboard/view.php?id=board&no=16

이 름    박석홍

Homepage    http://daegyung.org

제 목    킹제임스 성경신자의 발자취와 사명에 대하여

킹제임스 성경신자의 발자취와 사명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교회 밖에서 다른 교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논쟁에 휘말려 든다. 심지어 킹제임스 성경을 보고 사용한다는 이유로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것이 한국교계의 현주소이다. 알고 보면 킹제임스 성경은 세계적인 성경이며 전혀 꿀릴 필요가 없는데 어려움을 당한다. 이에  킹제임스 성경 신자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신자의 발자취를 알아보고 그 다음에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언급하고자 한다.

교회사는 논쟁의 역사였다. 초대교회 때에는 A.D. 325년에 삼위일체 논쟁이 있었다. 그 이후 A.D. 451년에는 그리스도 신인성 논쟁이 있었다. 그 이후 종교개혁 시대에는 칭의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와 같은 논쟁에서 이단정죄가 있었으며 피비린내 나는 핍박이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논쟁은 무엇인가? 생각하건대 성경권위에 대한 논쟁이라고 본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킹제임스 성경이슈이다. 교회사를 거슬러 보면 성경신자들이 걸어왔던 길이 있다. 곧 오늘날의 성경이슈는 이 시대에 성경신자들이 걸어가야 할 발자취를 보는 것이 될 것이다.

A.D. 400년 경에 도나티스트들이 있었다. 이들은 참 회개와 믿음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교회의 회원자격으로 보았다. 이에 이방종교에서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성직제도와 교권화된 로마 카톨릭은 이들을 정죄하며 핍박하기 시작했다. 이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어거스틴이었다. 반카롤릭 교회사 입장에서 볼때 어거스틴은 오늘날 로마 카톨릭의 제도를 확립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후에 제롬의 라틴벌게이트가 제롬이 베들레헴에 머물면서 36년간의 작업 끝에 나왔다. 이 제롬의 번역본이 로마 카톨릭의 공식 성경이 되었다. 이것은 순수한 성경신자들의 손에 있었던 성경인 구 라틴 벌게이트를 모방하여 변개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카롤릭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정죄할 수 있는 수단이 된 것이다.

A.D. 600년 경에는 바울파가 있었다. 그들은 사복음서와 바울서신서 14권을 전수 받았으며 이 성경들을 보급하고 그 말씀에 의해 가르치자 영향력이 나타났다. 위협을 느낀 로마 카톨릭은 오직 사제들만 가르칠 수 있다 하여 그들을 핍박하였다.


(바로 이 부분을 주목-필자주)"A.D 1000년경부터 -1600년경 후반까지 왈덴시안들이 있었다. 이들은 프랑스 지역에 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이었으며 구 라틴 벌게이트에 영향을 받아 성경을 번역하고 보급하여 성경대로 가르쳤던 사람들이었다. 이에 로마 카톨릭은 이들을 잔인하게 핍박했다. 이에 이들은 유럽 전역으로 흩어 졌으며 그들의 공동생활은 종교개혁이후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이 성경신자들이 걸어간 길은 핍박의 길이었으며 "



순교의 제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순수한 말씀에 의해 로마 카톨릭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자유 독립교회로서 존재 했으며 오직 성경말씀에 따라 가르치고 살았던 거룩한 무리들이었다. 그렇다 킹제임스 성경신자들은 로마 카톨릭의 마수를 알고 있다. 그리고 교단이나 교파에 속할 수 없는 독립교회로서의 발자취를 택할 수 밖에 없다. 오직 성경말씀을 최종권위로 삼아 가르치고 살아갈 뿐이다. 

오늘날 킹제임스 성경신자들에게도 동일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킹제임스 성경을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이라고 하는 무리들에 대한 교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이에 우리는 성경보존에 관련된 기본적인 법칙을 꼭 갖고 있어야 한다. 킹제임스 성경을 훌륭하게 변호하고 있는 사무엘 깁 박사는 성경보존에 대한 2가지 법칙을 소개하고 있다.

제1 법칙: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성경을 기록하셨으며, 초자역적인 능력으로 그 책을 보존하신다.

제2 법칙: 마귀는 모방의 명수로서 성경을 모방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깨뜨리고, 결국 자기 역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거나 대체시키려고 한다.

결국, 오늘날 성경논쟁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므로 말씀을 보존하신다는 신앙고백을 가진 자들과 학문과 이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자들과의 논쟁이다.

사실, 하나님의 성경은 참 교회와 참 신자들를 통해 주님의 교회와 함께 했다. 로마 카톨릭의 도서관이나 수도원에서 발견된 사본에 있지 않았다. 그 도서관과 사본들은 성경 변개에 사용되거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지킨다는 순수한 믿음을 고수하는 성경신자들일 따름이다. 우리의 신앙은 오직 말씀의 권위에 세워져야 하고 그 말씀 때문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켜야 한다. 그러면 그 영생의 말씀이 우리를 책임질 것이다.

오늘날 KJB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이 킹제임스 성경계열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킹제임스 성경을 보아야 구원받는가? 다른 성경에는 구원이 없는가?”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질문이 나오게 된 것은 한국교회에 킹제임스 성경이 소개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당시에 한국에는 킹제임스 성경에 근거해서 번역된 성경이 없는 상태였고 그 성경에 근거한 교회가 있지 않았다. 이에 킹제임스 성경을 기준성경이라고 주장하다보니 개역성경에 대한 공격으로 교계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심지어 참 성경이 없는 교회에 구원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말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이 불을 끄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측은 개역성경을 읽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다소 포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구원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좋은 성경을 보는 것은 딤후3:16절에 사도 바울이 말한바와 같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바르게 갖느냐는 것에 상관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구원의 복음을 들어 믿은 사람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는데 필수적인 안내서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안내서를 갖고서는 “구원받은 사람이 바르게 성장하며 마귀를 대적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에 동조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슈는 거시적인 입장에서 보면 구원문제 뿐만 아니라 참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하나님을 경험하느냐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서론 부분에 말한바  325년과 451년에 있었던 논쟁은 하나님의 아들과 그분의 신인성에 대한 신비였다. 곧 성경이 변개된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들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분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풍성한 메시지를 받고 그분 안에 들어가는 경험에 들어간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바로 그런 풍성한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과 경험에 이른 분들이 있다. 그분들이 바로 청교도들이다. 이분들을 KJB 성경이 나오게 한 주인공들이며 그 성경의 영감을 받아 당대에 국교회의 핍박을 받았으며 좁은 길을 걸어갔던 인물들이다. 그분들의 저작들을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토마스 굿윈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을 읽어보라. 존 오웬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라. 아직 한국에 번역되지 않는 책이 더 많다. 스펼젼의 서가에는 7000권의 청교도의 저작들이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바로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주인공 크리스찬이 멸망의 도시를 빠져나올 때부터 그의 손에 있었으며 천성문에 이르기까지 크리스찬을 인도했던 성경은 바로 킹제임스 성경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 현대의 성경신자의 걸아가야 하는 길은 풍성한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다. 그 생명력이 거룩하고 좁은 길을 걷게 할 것이다. 오직 이 생명 안에서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