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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2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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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 판 오 난 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이 소리는 하나님의 지상 최대의 명령이시다.
고로 우리에게는 절대적 과제다.
요즘시세로 예를 들자면,
혹이 결혼청첩장을 돌렸는데 식장에 하객이 없다면 이는 실로 황당함을 맛볼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온 우주 만물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시며 생육과 번성을 부탁하셨다. 그러므로 온 우주를 우리의 생산의 자녀로 가득 채워야한다.
이제 생육과 번성은 우리의 몫이다.
생육을 위해서는 남녀 간의 신체연합이 반드시 있어야 씨를 이을 수 있고 더불어 번성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씨 내림이 제일 중요하며 그다음 버금가는 것이 종이다.
성경에는 잡종과 변종을 막기 위해 딸이 아비와 합방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은 첫 소산 첫 열매 맏아들 장자를 즐겨 받으신다.
오늘 소개 하는 사건은, 씨의 중요성을 피차 깨닫기 위함이다.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
오난이는 맏형의 대를 잇기가 싫어(고의적으로 끊기 위해: 필자 주)형수와의 정상 행위를 거부하고 땅에다 설정하므로 하나님이 그를 죽이셨다.
여기서 역지사지로 오난의 마음을 읽어보면 필자도 거부했으리라.
성경의 큰 사건들의 주인공들은 나만 못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는 줄 알지만 우리도 그 상황에 있으면 그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아담. 가룟 유다. 주를 저주한 베드로 이 모두다 이성이 우리보다 앞선 사람이다.
사람은 물질의 가치를 때론 생명이상으로 바꿔놓을 때가 많다. 이점은 고금동서 할 것 없이 똑같다. 오늘날 이 물질 때문에 집안이 박살나고 심지어 사람의 목숨도 빼앗아버린다.
이제 오난의 입장으로 형수의 문제를 놓고 생각 아닌 계산을 해 보자.
자기의 맏형이요 유다의 장자 엘의 재산이 지금 오난의 이 한밤 형수와의 잠자리에서 판도가 뒤바꿀 찰나다. 형수와의 정상행위를 버리고 땅에 설정하면 그 형님의 대가 끊기어 재산이 언젠가는 자기의 자식들에게로 돌아올 것이 자명한 사실이 아니던가.
이런 방법으로 형의 재산을 내게 돌리는 것은 거의 합법에 가깝다. 이웃도 부모도 누가 알랴,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피하여 갈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다.
이는 물질을 떠나서 하나님 목전에 악을 행함이다. 오늘날 이 씨의 비밀은 묻어 둔 채 오난의 비정상 성행위의 겉 행태만 가지고 자위행이의 원조라는 둥 말장난 만 하고 있다.
이제 우리를 둘러보고 우리는 지금 오난이와 멀리 떨어져 있나를 살펴볼 때이다.
위 본문 첫머리에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라며 시작되는 엘은, 오늘의 주인공 오난의 맏형이요 유다의 장자다. 이에 성경의 장자는 우리의 맏형이신 예수의 모형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맏아들이시오 우리의 맏형이시다. 그리고 교회는 그의 신부다. 고로 교회는 우리의 형수이시다.
이제는 위 논리로 비추어 보면 우리가 교회(형수)와 연합하여 우리의 주 예수(맏형)의 자녀를 낳아 드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면 오늘날 교회들이 과연 하나님의 자녀들을 바르게 배출해 내고 있는 것일까? 이에 우리는 바로 진단을 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먼저 성경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바르게 출산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으로나 육체적 욕망이나 사람의 계획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이름 외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비결이 없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1~13>
본문대로 주의 이름 예수,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요 곧 이들이 주 예수를 영접한 자다. 또한 이것이 다말이 시아버지를 직접 상대 하듯 우리도 하나님에게 직통으로 난자들이다.
예수 이름은 말씀이요 말씀은 씨요 참종(種)이다.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19:13>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눅8:11>
오직 주의 이름만이 말씀이요 그 이름만이 참씨참종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만 의지하고 그 이름만 높이자.
이제는 주의 이름을 믿는 방법을 알아보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3,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이 말씀을 다시 새김하면, 믿는다는 것은 부르는 것이요 부르는 것은 믿는다는 말씀이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것이 즉 열린 비밀이다.
“주 예수여!” 라고 부르는 이 행위가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요 인침 받은 증거요 거듭났다는 증거요 죄 사함 받았다는 증거요 주의 생명을 받았다는 증거요 휴거를 보장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위 증거들에 대하여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또박 또박 대조해 풀어줄 근거가 있다.
폐일언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성교회들은 장. 감. 성이라는 칭호를 붙잡고 이를 이단의 잣대로 삼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알아보지 못 한 채 오직 장감성이다. 그리고 다음은 주의 이름보다는 목사들의 이름을 굳세게 잡고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나오나 진리는 없고 오직 자기 교회로 끌어가는 견인 역할만 한다. 그들의 전도지와 서적과 현수막은 자기 담임목사 이름이 눈에 잘 띄게 앞세워 나온다.
신흥 교회는 더욱 가관이다.
이 들은 온전히 주님의 이름이 아닌 사람의 이름을 믿고 선전한다. 여하튼 신흥교단에 가서 그 교주의 이름을 들먹이면 새우젓 국물은 고사하고 안 내쫒기면 다행이다.
그 대표로 [하나님의 교회 안 상홍], [신천지교회 이 만희], 기타 등등 바이올린 땡땡^^ 참아...
누구의 이름을 믿느냐에 따라서 그 이름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지금 모든 무리들이 주님의 자녀가 아닌 자기새끼를 까서 품고 있는 꼴이다.
즉 다시 말하면 예수의 이름 내려놓고 사람의 이름을 잡고 나가는 자들이 사람의 자녀다.
왜 당신은 말끝마다 사람의 이름을 들먹이며 높이려 하나.
왜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사람의 이름을 심어 주려고 애를 쓰는가.
왜 당신은 사람의 이름을 앞세워 물질과 시간을 교묘히 가로채며 당을 짓는가.
이런 자들이 우리의 맏형의 대를 이어주지도 않고 재물만 가로 채는 자들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 사람의 이름을 앞세우는 이것이 현대판 오난이다.
이것이 말세의 징조요 이것이 바벨탑의 주범이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바벨탑을 허신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리고 사람의 이름을 높임에 있었다.
이제 사람의 이름을 접고 예수의 이름을 높이 게양하며나가자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고전3:5>
안상홍은 무엇이며 이만희 는 무엇이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전3:21>
“왕 중의 왕이신 예수여 ! 오늘도 그 이름, 높임을 받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