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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8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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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아 의 장 막
“노 아” 하면,
의인이요 그의 업적이 너무나 유명하여 방주가 뇌리에 꽉~ 차게 떠오른다. 필자의 제목이 [노아의 방주]를[장막]으로 잘 못 친 오타로 연상할 만큼 노아 방주의 업적은 위대했다. 또 보는 관점도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방주사건이 끝나자마자 당세의 의인 노아가 장막에서 만취와 전라의 모습을 보고는 전과는 달리 독자들의 반응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추태...노망...치매 등등.
어떤 필력 가 한사람은, 노아의 포도주만취사건 까지는 아주 은혜 스럽게 까지 표현하고는 그 후 결론이 가관이었다. 그런데 그의 필력에 말려들어 여러 사람이 그를 추종하는 무리까지 형성됐다. 그 내용인즉
노아의 하체를 모친상간으로 치부하고, 만취를 긴~ 입산수도로 표현하였다. 그가 말하는 입산수도 즉 장막에서의 취중에 있을 때 노아의 가운데 아들 “함”이 자기의 친모를 범하여 가나안을 출산하였기에 이 불륜아를 저주 했다는 낮 뜨거운 소리다. 이는 크게 오각 하여 중한 죄를 범했다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에 필자의 반론은
첫째, 노아의 취기가 오래토록 갔다손 치더라도 사나흘정도로 보며,
둘째, 노아가 술 취하기전 가나안은 이미 출생된 상태였다.
셋째, 노아가 주정뱅이, 치매라면 장막사건이후 몇 년을 더 사셨을까?
넷째, 주정배이 손에서 축복과 저주가 나올 수 있을까?
이제 필자도 독자들에게 심판을 맡기고 담대히 은혜를 선포 하겠다.
본문<창9:20~25>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누구든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라고 하는 이 사건의 내용은 성경을 통해서 또는 설교나 종교 서적을 통해서 알고 있고 이 사건에 대하여 나름대로 인상 깊게 또는 피상적, 내지 스치듯, 여러모로 각인돼있다. 그로인해 낮 을 붉히는가 하면 이에 반해 어떤 자는 주정과 치매로 측은이, 또는 재미있다는 듯이 등등 독자들의 생각이 엇갈려 있다. 그러면서 부모의 허물을 보면 안 된다는 지극히 윤리적인 결론으로 답을 끝낸다.
왜 추태는 아버지가 먼저 부리고 저주는 알지도 못하는 손자가 받아야 되나,
그리고 아버지의 하체는 공중탕에서도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이유 불문하고 가운데 아들 함은 다른 형제에게 고하매 자식이 저주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도 이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련의 사건들이 시사 하는바는 무엇일까?
어린양의 선지는 그 세월이 2000년이 넘게 흐른 이 시각에도 조금도 퇴색됨이 전혀 없이 우리눈앞에 선명하며 지금도 죄인들의 보혈로 허다한 무리를 구원하고 있거늘 어찌 동일한 말씀인 노아의 사건이랴. 선명한 주님의 보혈처럼 오늘도 노아는 이 시각 내 눈앞에서 포도주로 크게 취하여 나신으로 누우신 채 나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오늘도 그분은 우리에게 “너도 나처럼~!” 이다.
십자가를 수치 또는 실패로 생각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듯이
노아의 대취 전라(大醉 全裸)를 보고 추태. 치매. 등 그 외에 수치스럽게 간증 하는 자들은 함의 반열에 들어 선 자들이다.
행여 그런 사실이 있다손 치더라도 큰 걱정은 없다. 다시 돌아서면 그만이다.
이제 이번기회를 통하여 양단 가부를 내어 확실한 축복의 반열에 들어서자.
세상 상식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이 사건이 주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고자하는 시사점이 무엇인가 지금부터 주도면밀히 사경해 나가자.
먼저 본문에는
+방주에서 나온......중간 생략...........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그때 홍수는 위아래 에서 물이 40일 동안 밤낮으로 쏟아졌다.
오늘날 비가 40주야는 그만두고 4일 동안만 주야로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면 농기계가 없는 시절에는 다음해에도 농사짓기가 어렵다. 그러면 노아가 포도주를 먹기 까지는 오랜 세월과 여러 정황들이 있으련만 하나님은 물로 세상을 뒤엎고 왜 제일먼저 포도밭과 포도주를 거론하셨을까?
그 이유는 이 대취나신 사건은 십자가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뒤엎고 제일먼저 포도밭과 포도주를 보여주시는 것은 이는 곧 묵은 세상을 끝내고 포도주와 같이 달콤한 감미로운 신천지를 약속하시는 모형이다. 이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를 다시 재현해 주시어 우리에게 확신을 갖게 해주셨다.
요한복음 2장에 가나에서의 혼인 잔치가 나오고 끝에 가서 하시는 그 끝말을 주의 하자.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2:10,11>
나는 한때 어리석게 이 구절을 오해를 했었다. 왜 하필이면 양조주 일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 포도주의 처음 표적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비의의 사업이다.
우리주님은 세례 받으신 직후 성령의 이끌림으로 광야로 가셔서 사경을 뚫고 지금까지 세상의 주권자 사탄을 만나 세 번의 결합 끝에 사단을 물리치시고 다윗의 왕좌를 회복 하셨다. 사단을 밀어낸 것은 한 세대가 교체 내지 전복됐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그동안 마귀는 율법을 권세로 우리를 무참히 짓밟아 사망으로 몰아넣었다.
죄의 권세 권능은 율법이었다. (고전15;56하 참조)
그러나 묵시적 새 세상(영적세계)의 새 주인 창조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는 승전의 축배를 가나의 잔치에서 신비의 [물]포도주로 잔을 채워주시고 그는 곧바로 주인답게 전국 순회 하시며 가난한자, 병든 자, 포로들과 죽은 자들까지도 회복해 놓으셨다.
이는 율법을 앞세워 사단이 저질러놓은 멸망의 현장이었다.
또 한 이 혼인잔치의 예표는 여러 모형이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로 아래와 같이 생각한다.
폭군의 전남편인 율법에게 치사당한 우리를 살려 놓으시고 새 남편과 혼인 잔치를 벌여 주신 것을 예표로 보여주심이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은 잔치의 분이기다. 고로 신랑이신 주님과 신부된 교회는
자시고 마셔야한다. 즐기셔야한다. 흠뻑 취하셔야한다.
여기는 초상집이 아니다.
전날에는 사망의 직분아래 초상집의 환경이라 음식과 날들에서 부정을 가려야하며 매사에 부정 타지 않으려고 얼마나 눌리어 살아야 했으며 얼마나 부자연스러웠든가. 이제는 그 곳과 판이하게 다른 이곳은 자유요 기쁨이 가득한 잔치집이다.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희열을 누리며 환희를 만끽하자.
이제 여기서 잠깐 한 단을 묶고 가자.
ㅡ노아 때는 죄로 관영된 옛 세상을 물로 끝내시고 새 하늘 새 땅을 포도 주로시작하심과 같이
ㅡ우리 주님도 죄의 원조 사단을 밀뜨려 내시고 감미로운 포도주로 첫 사역 을 시작 하셨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15:1,2>
노아는 신천지에서 제 [1호]로, 포도농사를 대성하신 포도농사의 대가요 원조이시다. 이와 같이 우리주님은 하늘나라를 이 땅에 펴시고 하늘의 포도주를 베푸셨다.
그 포도주는 노아의 포도주에 비하면 품질과 양이 천양지차다. 물만 부우면 계속 나오는 질 좋고 맛 좋은 포도주다. 그리고 노아의 포도주는 내 수고가 포함된 값비싼 술이다. 그러나 하늘이 빚은 술은 너무나 고가라서 주님의 은혜로 값없이 무가로 내려 베푸셨다.
이제 포도농사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짖고 이제는 포도주의 의미를 다소라도 음미해 보고가자.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1) 우리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포도주를 저변의 무리들과 참 많이도 자셨다. 노아처럼 즐겨 자셨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11:18,19>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2) 포도주는 주님의 보혈의 상징이다. 피는 생명이므로 주님의 피를 마시는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뿐더러 이 주님의 생명은 포도주처럼 달콤하고 향기로운 생명이다. 또 포도주처럼 즐거운 생명이다. 할렐루야!~~
허나 우리들의 이 향기가 사망의 자녀들에게는 악취일 뿐이다.
주님의 생명이 내 생명과 교체되니 이 생명은 기쁨의 생명이요, 기도의 생명이요, 감사의 생명이다.
3) 포도주는 술이라 취하면 성령의 역사와 외형은 똑같다.
ㅡ흥이 돋아나면 음치도 노래(찬송가)도 잘한다.
ㅡ혀가 꼬부라진다.(새 방언)
ㅡ겁도 없이 아무나 시비(전도)를 잘 걸고 피가 터지게 싸운다.(군병)
ㅡ취중 절정의 상태는 아무데서나 하의를 까고 방뇨를 한다. 이에 좀 더 과하다 하면 길바닥 이고 어디고 드러누우며 상. 하의도 구분 없이 벗어 던진다. 때로는 그 상태에서그대로 죽는(순교) 예도 다반사다. 이 정도는 마셔야 진(실)정 한술 꾼이다.
이는 즉 성령의 역사처럼 죄의 개념이 무너지는 것이요 더 나아가 나를 완전히 잃어버려 입신경지에 도달 한 것이다.(고후12:1~4참조)
그렇다! 우리도 죄의 장벽이 무너지고 죄의 족쇄가 풀리지 않았던가.
이제 나도 나를 찾지 말자. 저 주정뱅이처럼 이미 우리는 옛사람이 죽지 않았던가.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의인의 장막은 차후 하나님이 거하시는 의의장막 즉 성막의 예표다.
그렇다. 의인노아는 성막(지성소) 안에서 그리고 포도주(보혈)로 가식을 벗고 의의세계로 들어간 예표를 우리에게 보여 주심이다.
포도주가 노아를 기쁨과 환희와 희열로 이끌어 가셨다.
그리고 그 포도주는 의인 노아의 낡은 옷을 벗기어 내었다.
그 옷은 죄가 관영하던 홍수 이전의 때가 뭍은 낡은 헌옷이 아니었던가.
어떻게 그 헌옷을 입고 주님의 장막에 들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 헌옷을 입고 도래할 신천지를 활보 할 수 있더란 말인가.
이는 또한 하나님 존전에서는 숨김없이 다 드러남의 모형이다.
그다음 여기! 또 의인 노아처럼 벌거벗고도
하나님 앞에서 추태가 아닌 은혜로 여김을 받은 자들이 있다.
제(1)호가 아담과 이브다.
이 부부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로 에덴동산을 활보하였다. 에덴동산의 아름다움과 황홀경의 그림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린다.
노아와 아담이 일맥상통 한 두 가지.
1) 벌거벗은 점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2:28>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창9:21>
2) 한 세계의 주역이라는 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창1:28>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창9:1>
아담은 에덴동산의 주역이요, 노아는1차 천지개벽 후의 새 세계의 주역이 같은 맥락이다.
제(2)호는 사울 왕이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삼상19:23,24>
영(신)은 사울을 벌거벗겨 예언으로 이끌어 내어 악인의 도모를 무산시켰다.
이 내용의 전말은,
다윗을 잡으려 사울이 보낸 졸개가 왔으나 영(신)이 위 사울처럼 그 졸개들에게 임하니 그들이 예언을 하는 바람에, 강원도 포수여 함흥차사 꼴이라서 급기야 사울 왕 자신이 손수 나서다가 자기도 그와 같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다윗이 친히 원수를 갚지 않고 사무엘을 앞세워 놓은 것은, 사무엘은 하나님을 대변하는 대언의 선지자이기 때문이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뒤로 숨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묘한 모사를 엿볼 수 있다.
사울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세운 왕이기 때문에 사울에게 자비를 베푸셨고, 다윗은 사망의 골짜기를 헤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지혜를 맛볼 수 있다.
제(3)호는 다윗 왕이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생략........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 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생략....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산하6:16:23>
즉 이스라엘의 임금이 체통머리 없고 꼴사나운 건달처럼 신하들의 여편네들 보는 앞에서 몸을 온통 드러내고 춤을 추었다. 이 광경을 목도한 부인은 다윗을 업신여겼고 그로인해 종신토록 무자 했다는 내용이다.
제(4)호는 나사렛 예수이시다.
마지막으로 벌거벗은 자는 포도주를 즐기시던 우리의 구세주이신 나사렛 예수였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11:23~25>
ㅡ 잡히시는 그 시각까지 떡과 잔을 드시고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요19:23>
ㅡ 속옷까지 벗어 알몸을 드리우시며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 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 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19:28~30>
ㅡ최종까지 신포도주로 한 시대를 마감 하시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시니라+<눅23:42.43>
ㅡ낙원에 입성순회 하셨다.
ㅡ집약도표 : 포도주==>벌거벗음==>낙원 순회(천: 낙원. 하: 음부)
주님은 채찍으로 갈기갈기 살을 찢어서 독수리 어미가 새끼를 나눠 먹이듯 우리에게 살을 주사 체질을 바꿔놓으시고 물과 피를 쏟아 마시게 하여 우리의 혈액형 까지도 바꿔주셨다. 우리는 말씀으로 인한 믿음으로의 피 가름이어야 한다.
이제 보라! 그 속옷까지 벗어 나를 덮어 입히셨다. 야곱은 맏형 에서의 겉만 바꾸고 속은 못 바꾸었으나 우리는 속까지 완전이 다 바꾸었다. 필자는 예수의 이름으로 바꾼 지가 벌써 23여년이나 된다. 그리고 야곱은 음성변조를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음성도 바꾸기 바란다. 내 음성으로는 그리스도의 형상까지 다다를 수가 없다.<갈4:19.20> 이제 세상과 나는 간곳이 없다. 이제는 나도 나에게서 나를 찾지 않아야 되겠다.
노아는 아담과 예수처럼 한 세상의 시조였다. 그리고 노아는 왕이다.
죄악세상을 물로 뒤엎고 새로 시작하는 마당에 하나님이 주정뱅이를 시조로 세우랴. 이는 우리의 오각이요 망령됨이다.
이제는 왜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이 죄가 되는가. 이는 오늘 우리의 귀감이다.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두 형제에게 [고하매]........
둘째 함은 자기 아버지의 나신을 보는 순간 수치와 더불어 업신여겨 보았을 것이다. 즉 다윗의 아내 미갈은 하나님 앞에서 순진무구하게 춤을 추는 남편 다윗을 업신여긴 죄로 죽도록 무자했다. 이것은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으며 일생 수치를 느끼며 살아야 하는 신세다. 예나 지금이나 씨는 하나님 앞에 중요한 사안이다.
미갈이 다윗의 행위를 보았을지라도 그에게 수치를 느끼도록 고하지는 말았어야한다. 그러므로 함도 미갈처럼 그 형제들에게 [고하매] 있었다.
여기!
함의 사건을 다른 본문을 통해 비춰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창3:9~12>
聖낙원에서 거룩을 누리는 성남성녀를 누가 부끄럽게 만들었나.
그렇다! 이것들은 다 [고지죄]에 해당하는 범죄의 유형이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십자가에서 남김없이 흩뿌려 나눠주신 주님을 같이 보고도 누구는 직계가족 장사하듯 새 무덤을 기꺼이 헌납했거늘 누구는 턱밑에서 고개를 저으며 조롱을 할까!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찌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마27:39~45>
ㅡ함이 지은 죄명은 [성령 모독죄]이다.
그러면 왜 자기의 죄가 본인에게서 부터가 아니고 후손으로 시작되나?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 때문일 것이다. 그 내력은, 함은 부친 노아의 방주를 짓는 동안 그 노력의 공로가 공의의 법칙에 적용되었으리라. 그리고 의인노아의 생애에 험한 꼴을 피해주시는 배려일 것이다.
그와 유사한 사례는 다음에서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열상11:11~13>
솔로몬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이방여자를 끌어들여 타 신을 섬기는 죄를 범하므로 상기와 같이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으나 본문처럼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 이와 같이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덕을 힘입어 자기 당대에 험한 꼴을 피함같이, 마찬가지로 함도 그 아비 노아의 덕을 힘입어 자기당대에 험한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ㅡ함이 아비의 성업을 깨닫지 못하여 우를 범함 같이 우리도 깨어 서로를 세워주자. 식구들의 허물을 발설하지 말고 가만히 다가가 닦아주자.
ㅡ노아는 땅의 포도주를 먹고도 나를 완전히 잃어 저 화염검을 지나 에덴의 동산을 거닐어 노닐거늘, 우리는 하늘의 포도주를 먹고도 왜 내가 나를 자책하며 황홀경으로 진입을 않할까!
ㅡ이제 온전히 나를 잃어, 나도 나에게서 나를 찾지 말며 내 안에서 내가 원하는바가 나 아닌 나로서 볼 수 있도록 포도주를 통과하자.
ㅡ“나도 나를 판단 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주 예수여! 나도 나를 잃어 그들에게 쏟아 붓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