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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6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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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우리들에게는 새사람의 마음과 옛사람의 마음이라는 두마음의 실체에 대한 근본을 구체적으로 진솔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새사람의 마음은 말씀에 의하여 형성되어진 인격체임과 동시에 옛사람에 마음이 자라듯 자람에 존재이다.
옛사람의 마음은 철저한 죄 속에서 자라지만, 새사람의 마음은 오직 진리로 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옛사람의 마음에 새사람의 마음이, 새사람의 마음에 옛사람의 마음이 서로 섞여지거나, 섞여질 수도 없는 존재이다.
이래서 이 두마음은 사망과 생명의 입장으로 항상 대치의 상태에 있으면서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삼키기 위한 처절한 싸움에 있다는 것이다.(롬7:22-23)
이 싸움은 평생에 단 한시라도 양보도 휴전도 있을 수 없는 극한 대립의 싸움인 것이다.
하여, 우리는 이러한 짐을 지고 평생에 탄식하면서 이 짐을 벗기 위하여 생명으로 사망을 삼키우고자 하는 것이 우리들의 믿음에 행진인 것이다.(고후5:1-4)
이에 우리가 두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사망을 따라 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곧 사망을 따라 오는 불신의 화살에 눌리고 있음이다.
우리의 때론 이렇게 눌리기도 하지만, 새사람은 결코 이를 환영하지 않고 뒤집기 위하여 결사대항에 이른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는 우리지만, 이미 완전한 승리를 선언한 그 자리에 서게될 궁극적인 사실에 대하여 흔들림 없는 인정함으로 이끄는 것이 새사람의 마음인 것이다.(고전15:54-57)
이러한 우리의 입장을 신앙으로 성경을 이해해야 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광야생활과 7년 대환란이 그것인데,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가나안을 얻기 위한 싸움이었으며 새 마음과 옛 마음의 대 쟁투는 대환란 후, 이르게될 새 하늘 새 땅을 바라봄에 있다는 것이다.
삼 년 반으로 나누인 7년 대환란을 종말의 시기적으로만 이해할 것만 아니라 이미 이 대환란이 절반으로 나뉘어진 상태에서 겪는 전쟁이라는 것이 우리 안에도 이렇게 반쪽으로 나누어진 싸움에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하는 신앙의 종말론적인 것이 우선 필요한 것이다.
나 개개인 안에 새 마음과 옛 마음의 양분된 나 자신의 평생에 이 싸움이 신앙의 7년 대환란이며, 나의 이 싸움이 밖으로 영향을 미칠 때 이웃적이며 지역적이며 사회적이며 세상적이며 나아가 전 세계적인 싸움으로 양분되어 확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에, 7년 대환란을 계시적 소극으로 본다면 역사적으로 있게될 최후 대환란에 있지만, 이미 에덴에서 출발한 이 환란은 인류 최후 대환란을 향한 시발점인 것이며 그 종착점에 도착되기 전까지 신앙의 우리 모든 개개인에게로부터 연속되어진 대환란인 것이다.
따라서 7년 대환란의 역사적 계시가 성취될 날이 임박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지만, 그 날이 현실이 되기 전까지는 먼저 내 안에 7년 대환란을 충분히 이해하는 신앙으로 기독교 종말 세계관으로 접근함이 가장 건전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