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붙일 자격이 있는 사람.
성경진리토론방
, 2004-12-03 , 조회수 (291) , 추천 (0) , 스크랩 (0)
주인은 자기 물건에 이름을 부여 할 수 있다.

이름은 곧 그 물건의 뜻과 내용을 드러내는 함축된 단어이다.
그리고 이름은 분류 기호다.
그러므로 이름을 붙일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는 곧 주인이다.

사람은 창작내지 발견 또는 생산한 것은 자기의 뜻대로 이름을 지을 수 있다.
가령, 부자가 높은 빌딩을 지으면 자기의 뜻에 맞게 빌딩의 이름을 짓는다. 회사도 설립한자의 의도대로 명칭을 부여한다. 글. 그림. 조각 등외 어떤 물건도 생산자의 뜻대로, 자기의 이름을 따서 혹은 용도에 맞게 혹은 시류에 따라 유행어를 맞추어  물건의 명명이 다르게 붙여진다.
참으로 요즘 세상엔 별의 별 이름이 붙은 각종의 모임도 많다. 이름만 들어도 그 모임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모임도 많다. [000낚시회][000등산회]등등 헤아릴 수없이 많다.

사람이 자녀를 낳으면 아이들의 이름은 부모들의 목이다. 과거에는 가문의 돌림을 바탕에 두고 이름을 작명하는 경우와,
돌림과 관계없이 독득한 사연을 엿볼 수 있는 이름도 있었다.
요즘은 돌림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고 그러므로 부모들의 주도권 행사를 톡톡히 발휘하는 시대라 하겠다.

첫 사람 아담은 에덴동산으로 이끌림을 받아 그곳의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주인의 자격을 부여받아 자기가 자기 뜻대로 부려 쓸 수 있는 모든 생물에 이름을 부여했다. 

우리 주님은
자기의 배필, 즉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암 닭이 병아리를 품으려 하듯 몇 번을 시도 했으나 그들은 끝내 거절하였다.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다운 짐승의 이름을 부여해 주었다.
그러나 정작 주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로 산출해 낸 자신의 몸 된 신부, 즉 교회에게는  그 고상한 문고의 간판하나 지어주시지 않고 그냥 승천 하셨다.

배필과 신부라면,
필자가 어릴 때의 우리나라 신부는, 주님의 몸 된 신부와 비슷한 점이 하나있다.
부모가 여식을 낳으면 어여뿐 이름을 지어 주어 시집가기 전까지 부르다가 그녀가 시집을 오면 그날부터 친정에서 부르던 호칭은 없어지고 다만 그가 거주의 한계를 드러내 듯 
지방입장이 호칭이다.
예를 들면 전라도 광주에서시집을 왔으면 “광주 댁”이라고 칭하며 부산에서 왔으면 [부산 댁]이라한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닮음 꼴은 사람의 신부와 주님의 신부는 살림살이가 참 많은 것이 닮았다. 여자가 시집 올 때는 집만 안 싸가지고 올뿐이지 심지어 소변기 요강가지 싸가지고 온다. 농짝, 각종 옷, 패물, 장신구 등등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재능은 더더욱 큰 보배요 재산이다.

여기서 한번 신부의 호칭을 다른 면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신부의  살림 중에 농짝이 고귀하다고 생각되면 [농짝 부인?]이라 불러 봄이 어떨까. 그러면 패물이 서운하게 생각하겠지? 그러면[패물부인?]이거 어떨까!. 그런데 요강은 참 현실성이다. 허면 [요강부인?]??? 그런데 좀...
어쩌거나 좀 유치한 생각이 든다.
이런 식은 사람을 물질의 가치와 비교 비례되는 기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금동서 이런 이름의 호칭이 없었다.

그러면 수준을 올려 신부의 특징으로 이름을 명명하면 어떨까.
그런데 그때 그 시절 신부들은 왜정시대와 6.25로 피폐해진 나라살림 때문에 너무나도 바쁘고 힘들게 살았다. 그러면, 바쁘게 움직이는 신부를 [발발이 부인?] 이도 아니면 신체의 특징을 살려 어느 부위가 크다고[0소부인?] 아니면[얼 짱?][몸 짱?]?? 아~~이도 저질이다.

이번은 무형 문화제적 수준급으로 가보자.
노래를 잘 부르면[노래방부인?], 그림솜씨 좋은 신부 [환쟁이 부인?], 눈치코치 빨라 시부모 남편 자식 잘 챙기는 신부[재치부인?] 어때 좀 나아 보일까?
아니다 이는 별명이다. 이름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얼짱, 몸짱, 노래, 그림, 재치 이런 자들의 기준이 어디 까지며 또한 그런 자들이 한 둘일까? 당신부인이 문화재적 수준이라면 우리 여보 섭하지 않을까? 

이번은 우리 주님의 신부되시는 교회의 살림살이를 파악해 보자.

교회는(신부) 인간을 구원하는 병정이다. 이를 줄여 이르면========[구세군]이다.
교회는(신부) 직분이, 집사도 있고 목사, 권사?, 교사, 등등========[장로]도 있다
교회는(신부) 세례를 줄때 물속 깊이 쳐 박는다.(실례^^)그러면=====[침례]다
교회는(신부) 모든 것이 성령으로 이다. 이 성령의 시작은=========[오순절]이다.
교회는(신부) 순전한 복음도 있다 이를 줄여 말하면=============[순 복음]이다.
교회는(신부) 영원한 낙이 있다. 이를 줄여 말하면==============[영 낙]이다.
교회는(신부) 거룩한 낙이 있다. 이를 한자로 변환하면===========[성 낙]이다
            그런데 요즘 [樂]자 돌림들의 집안의 위상이 落로???....
교회는(신부) 우주의 주재이신 하나님도 계신다. 이는 한자로는=====[천주]이다
교회는(신부) [성결]하다. [감리]감독도 있다. [예루살렘][사랑][소망]등등.........
어느 곳은 [형제교회]가 있다. 그러면 자매들이 서운~ 하겠다.

이제 따지고 보면 위 두 신부와 교회가 그 명칭이 어디가 다룰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성경속의 교회는 그 특징과 뜻을 따라 고상하게 명칭을 왜 안 부쳤을까?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의]
[버가모 교회의]
[두아디라 교회의]
[고린도 교회]
[예루살렘 교회] 등등이다. 이렇게 교회와 한국 신부들은 자기 지역의 명칭을 사용했을까!
다시 한 번 매듭지어야 할 문제가 있다. 한국 신부나 교회가 광주나 부산에 한 둘일까?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시므로 온 우주를 품으신다.

시안에 동으로 동에서 통. 반으로 세분화 한다. 
교회도 개인 주소를 명칭으로 사용한다.
고로, [아굴라와 부리스가]의 집에 있는 교회 또는 [눔바] 여자의 집에 교회 또는[빌레몬] 집에 있는 교회 등 이렇게 번지까지 분류 할 수 있다.
한국의 신부들도 마찬가지다. 시. 동. 번지에 사는 아무게집 딸, 이라고 하면 궁금함이 끝난다.  그러나 요즘은 부모를 욕 먹이지 않으려고 자기의 고향을 감추는 예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외국 형제를 만나면 굳이 번지까지 댈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냥 나는 한국(형제)교회다. 라고 하면 될 것이다.

사람과 교회는 특징과 뜻이 똑같이 내포 돼 있다. 그래서 구분과 분류는 거주의 지경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교회의 명칭을
특징과 뜻을 따라 명명하지 않는 것은 별도로 우주의 대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곳,
한 몸에 한 머리만 세우듯이(면사포참조)예수와 교회는 한 몸이다.
ㅡ교회는 [한 몸], [한 머리], [한 이름], [한 입장]뿐이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 족하다.
이름 하면 교회이고 교회 하면 이름이어야 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의 육신의신부들도 이를 시행했거늘,
교회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즉 이정도의 상식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이정도의 비밀이 간직 돼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재미있는 말로,
주님이 한국의양(교회)들을 푸른 초장으로 이끌기 위해 그 양(교회)들의 이름을
다 부르다 보면 해가 넘어가 저녁때나 될 것이다. 아~~ 너무나 혼잡하다,

ㅡ나와 교회의 이름은 오직 예수다.

혹자가 사람을 모아놓고 모임의 명명을 [안티오크] 또는 [장로][감리][천주][제 칠일...]
[여호와의...]등등 이라고 명칭을 만들어 부여 해 주면 이는 사도의 직분을 넘어서 주님의 권한에 속하는 것이다. 곳 그 모임에 주인이다.
입으로는 겸손하게 나는 사도가 아니라고 하나 몸은 사도이상의 권한을 행사 하는 것이다,
이단은 성경을 잘 모르고 잘 못 풀기 때문에 이단이 되는 것이다.
주약은 알고 먹으나 모르고 먹으나 효능은 동일하다.

[안티오크]라는 명명을 가지고 주의 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호박에 줄을 긋고 수박으로 우기는 꼴이 된다.
아니라면 이에 더 어떻게 자상히 설명을 하랴

이제 주제넘은 짓들을 그치고 서로 겸손하자.

오늘 이 부르지저는
입체의 주님이요 움직이시는 주님을 다만 정지된 단편만 그렸을 뿐이요, 이것이 사람의 한계다.
고로 나는 내 앞에 형제가 필요 하다. 그는 내 눈의 들보를 보는 기능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워졌기 때문이다.

나도 저 유명한 자들이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난하여 신앙 서적 한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생활 하여 왔다.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이냐
박 만수는 무엇이고 이상수는 무엇이냐
이제 “사도 권”이니 “입장”이니 하며 싸우는 것은 식상하고 유치하다.

우리는 사람에 눌리어 자기의 기능을 상실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그 예로 우리는 일차적으로 목사를 지목하지 않았든가, 그 환경을 벗어나 다시
사람에게 눌린다면....

제일 가까운 형제를 주목하여 섬기자.
십일조, 안식일등 것 들은 내 행위의 자랑이다.
우리 하나님은 한 생명을 자신의 율법보다도 더 사랑하신다. 

ㅡ왕의 법도(율법)를 깨뜨려 날 구원하신 주님, 나는 진정 왕자임을 교회에 선포합니다.

주님은 어찌 나만 생명이며 나만 사랑하랴 그런즉 주님이 아끼시는 생명을 높낮이(사도)의 잣대를 두고 차별을 두지말자.

주님도 우리를 평지에서 맞아 주신다.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눅6:17>
우리도 겸손하고 사람을 우상화 하는 꼴을 비치지 말자. 다 같게 여기자.
주님이 쉬 이르실 것이다. 주의 길을 평탄케 하자.
ㅡ바다는 수면이 낮기 때문에 모든 물을 수용한다.

“주 예수여! 거룩하신 그이름 영광을 받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