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님 고후 3:6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진리토론방
, 2004-12-01 , 조회수 (301) , 추천 (0) , 스크랩 (0)
먼저 말씀드릴 것은 저는 이런 교리적 토론에 있어서 많이 부족합니다.
추동훈님과의 연결된 토론으로 "형제"님과 이런 논쟁을 벌이는 것이 좀 떨립니다. 추동훈 님같은 경우는 얼굴은 한번도 안봤지만 그나마 미운정(?)이 들었는지 어떤 실수를 해도 문맥의 이해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님은 사실 부담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족한 제가 반론을 하겠습니다. 혹여 잘못된 것이 있으면 안티오크와는 무관함을 말씀드립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임을 말씀드립니다.

계:2:2에 관해서는 성경과 교회 역사가 사도의 단절을 증거하고 있고 신학자들의 의견이 일치가 된 상태이기도 합니다. 사도의 전승을 주장하는 카톨릭이나 같은 맥락의 은사주의자 들을 제외하곤 사도의 연속이나 계시, 이적들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은 거듭 말씀 드리지만 믿음의 문제이지 양심의 문제는 아닙니다. 님들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하면 논리적으로 너무나 많은 문제점이 생기기도 합니다. 기분이 나쁘셨겠지만 제 친구의 예를 들어 사도라 주장해도 반박할 근거를 잃고 말기 때문입니다. 

고후3:6입니다.
혹시나 제가 잘못이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님이 쓰신 글을 찬찬히 비교하고 읽어보았습니다. 참고 성경은 권위역 한영판, TR, 넷슬 알란드판, 흠정역, 한킹 영문판, 톰슨 한영대역 영문판, NIV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이게 전부입니다. 회복역은 미처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권위역 한영판을 기준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님은 3,17,18절을 근거로 the Spirit을 말씀 하셨는데, 전체 문맥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3절 : Forasmuch as ye are manifestly declared to be the epistle of Christ ministered by us, written not with ink, but 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in tables of stone, but in fleshely tables of  the heart.
너희는 우리의 사역(ministered by us)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의 서신임이 분명히 드러났으니. 이는 잉크로 쓴 것이 아니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체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1.여기서 written의 의미상의 주어 중 주안점은 앞 절의 <우리사역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서신인 너희>일겁니다. <(우리의)사역>으로 인한 <너희>는 잉크로 쓰여진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쓰여진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성령의 사역이 아니고 우리의 사역으로 인한 너희입니다. 3절에서는 문장 구조상 성령의 사역을 지지해주진 않습니다. 

2. 4절의 <이 같은 확신(such trust)>은 3절의 <우리사역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서신인 너희> 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판에 기록되었다는 <확신>입니다.
 
2. 5절 우리의 자격이 하나님에게서 남이라. (our sufficiency is of God)
우리의 사역(ministered of us, 3절), 이 같은 확신(4절), 우리의 자격(our sufficiency.5절)은 동일한 선상에 놓여있고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라고 이해가 됩니다.  성령의 사역은 아닙니다.

**3절은 문장 구조상 6절의 영의 사역자에 대한 the Spirit과는 별개의 문제인 동시에 오히려 사역의 자격이 성령의 사역이 아니란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에게서 온 자격과 성령의 사역은 틀립니다. 만약 여기서 3절에 <우리의 사역>대신에 <성령의 사역(ministered by the Spirit)>으로 뜻이 바뀐다면 이어지는 4절, 5절의 문장은 이해 할 수 없게 됩니다. 성령의 사역에 확신이 왜 필요하며, 성령님(자신)의 사역이 왜 스스로 자격이 있는가를 말하는 괴상한 모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3. 6절입니다.
Who also hath made us able ministers of the new testament ; not of the letter, but of the spirit : for the letter killeth, but the spirit giveth life.

두 개(율법과 영)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문장 구조상 앞의 spirit와 뒤의 spirit는 둘다 대문자이거나 소문자 스피릿으로 되어야 합니다.  not of the letter =  for the letter killeth,
but of the spirit = but the spirit giveth life란 구조로 명확히 되어있기 때문에 하나는 소문자 하나는 대문자라는 논리는 될 수가 없습니다. (the ministers) of the spirit이 대문자 the Spirit이면 다음에서 같은 스피릿을 설명하면서 소문자 the spirit이 생명을 준다는 말은 성립이 될 수가 없습니다. 논리상 말 자체가 안됩니다. 다 대문자이거나 소문자로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1)율법조문의 사역자가 아닌 성령(the Sprit)의 사역자이고 성령(the Spirit)은 생명을 준다.
(성령의 사역자라는 말이 성경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좀 어색한 감을 느낍니다.)

2)율법조문의 사역가 아닌 영(the spirit)의 사역자이고 영(the spirit)은 생명을 준다.
이런 프레임에서 다음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3,4,5절의 우리의 사역(~ministered by us)에 이어서 역시 사도바울과 디모데에게 able ministers of the new testamant = (ministers) of the spirit를 주셨습니다.그 직무의 설명을  7절 - 18절에서 하고있습니다.

** 6절 able ministers of the new testamant = (ministers) of the spirit
** 8절 the ministration of the spirit(영의 직무)는 더 영광스럽다 했는데, 3절부터 8절까지 평이하게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등식이 성립됩니다.

able ministers of the new testament, (ministers) of the spirit, but the spirit giveth life(6절) = the ministration of the spirit(8절),

설마 여기서 6절의 스피릿이 대문자이던 소문자이던 8절의 spirit과는 틀리다고는 안하겠죠? 같은 스피릿입니다.
**9절의 의의 직무(the ministration of righteousness)역시 동일한 직무입니다.

10,11절은 영광되었던 것과 더 뛰어난 영광, 없어지는 것이 영광 스러울진데 남아 있는 것이 훨씬 더 영광스럽다라고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6절이 스피릿이 대문자 Spirit(성령)이면 남아 있는 것이 훨씬 더 영광스럽다고 표현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남아있는 성령께서 더 영광 스럽게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6절 7절은 모세의 사역과 바울의 사역을 비교해 주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모세의 사역보다 성령의 사역이 더 영광스럽다는 도식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12절입니다.
Seeing then that we have such hope, we use great plainness of speech.
우리에게 이 같은 소망 (such hope)이 있으므로, 우리가 매우 분명한 말로하고,

이 같은 소망은 6절부터 11절에 기록된 유능한 사역자, 영의 직무, 의의 직무가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입니다. 6절의 스피릿을 대문자 Spirit으로 한다면 성령의 사역자, 성령의 직무, 의의 직무 대신에 또 성령의 직무가 되는데 이해가 안될 뿐더러, 성령의 직무에 대해서 이 같은 소망이 있고 또 분명한 말로 한다는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18절입니다. <우리 모두(we all)>는 일단 위의 영광의 직무가 포함되는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6절에서 17절까지 설명된 내용을 포함한다고 이해합니다.(이 부분은 저의 논조와는 틀리게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6절의 스피릿을 성령으로 의미한다고 볼 때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른다는 말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는다고 하는 말과 충돌이 일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주님의 영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른다는 건 말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결론입니다.
고후4장 1절에서 우리가 <그러므로 긍휼을 얻어 이 사역을 맡았다>고 했는데 <이 사역>은 3장 6절의 사역입니다. 4장 1절은 3장18절을 Therefore(그러므로)란 접속사로 이어서 받아주고 있습니다. 이 접속사를 매개로 4장 1절을 보면 18절의 영광에서 영광으로는 성령을 의미하는게 아니고 우리(바울과 디모데)의 사역에 포함된 영의 사역이 주님의 영으로 인하여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른다고 결론을 내릴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같이 성령께서 주님의 영으로 인하여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른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4장의 내용(우리의 사역)은 3장 6절의 spirit를 지지하지 the Spirit를 결코 설명하지 않습니다.  4장을 읽으면서 이장을 성령의 사역으로 받아들여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의 사역자(6절), 영의 직무(8절), 의의 직무(9절), 더 영광스럽게 남는 것(12절)은 전부 같은 것을 말하고 모세의 사역에 대비되는 사도바울의 사역을 말하고 있는데, 6절에서 스피릿을 대문자로 가정한다면 4장에서 바울의 <긍휼을 얻은 이 사역>을 성령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참고로, 전도서 7장 12절은 지혜가 생명을 준다고 나와있습니다. 영어도 똑같이 wisdom giveth life로 되어있습니다.(NIV는 preserve 로 되어있더군요.) 이 경우도 wisdom을 the Spirit로 바꿔야 합니까? 지혜의 효능 내지 기능을 뜻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개인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아니고 성경(킹제임스 성경)을 읽었을 때 보는 저의 관점입니다. 이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객관적으로 볼려고는 했습니다.
6절에서 흠정역, 한킹, 개역성경, 스코필드, 톰슨 한영대역은 전부 영(spirit)으로 번역을 했고, NIV는 스피릿을 둘다 대문자 Spirit으로 번역해 놓았더군요.

무조건 성령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니 the Spirit으로 해야 한다고 할게 아니라 문맥에 따른 님의 반론을 기대합니다.  결코 제가 옳다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추동훈님 의견은 어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