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성경을 왜곡하는군요.
성경진리토론방
, 2004-11-28 , 조회수 (331) , 추천 (0) , 스크랩 (0)
한나님은 살전1:1 2:6. 고전12:28, 엡4:11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계2:2는 빼셨군요. 참고 구절을 고전9:2로 들었고요.

위의 근거 구절에 의해서 사도는 교회에 전승되었으며  성경에 나오는 사도와 전승된 사도와는 같지 않고 후차적인 사도는 전자 사도의 계시를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전적으로 이 후차적인 사도들의 통제아래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잘못이해 했는가요?

성경에서 사도라는 의미는, 오순절날 탄생한 신약교회 이후 탄생한 사도들이나  그 사도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 중에 빌립과 스데반이 있고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에 의해서 디모데와 실라가 보냄을 받았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시대가 마감되고 성경이 완성되고 난후는 어떤 사도나 그 비슷한 것, 대언자 계시, 이적, 기적은 없습니다. 성경이, 교회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살전 1:1 2:6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님과 같이 이 구절을 고전12:28, 엡4:11과 연관시켜 교회에 사도가 있다는 주장은 미리 말씀드렸듯이 카톨릭, 오순절 파 등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교묘하게 위장하여 계시와 사도의 연속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전 12:28 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대언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기적이요, 병 고치는 은사와,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다양한 언어들이느라.>

질문입니다. 교회에 사도가 있어 왔다면 대언자와  기적, 병고치는 은사, 다양한 언어는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의 사도와 기적 병고치는 은사 다양한 언어들과의 관계는 별개의 것입니까? 사도적 정신이 계승됐다면, 기적의 정신 병고침의 정신 다양한 언어들의 정신만 계승 됐다는 말인가요?  즉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런 기적은 현재 교회에 있어서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에서 사도는 님이 주장하는 후천적 사도가 아닙니다. 문맥은 분명히 대언자, 병고치는 것, 다양한 언어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기적들임을 나타냅니다. 님은 이 사도가 교회에서 자리를 차지한다는 주장을 하였는데 이 사도는 행전에서 기적과 이적을 동반하는 사도이고 구절자체가 기적과 병고침 다양한 언어들을 동반한 사도임이 명백합니다. 사도따로 병고침따로 기적따로로 이구절을 읽어야 합니까?

님은 교회에 이러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방교회에 이러한 기적이 있습니까? 고전 12:28의 교회에는 사도와 대언자, 기적, 병고치는 은사, 다양한 언어들이 있는데 지방교회에는 이런 기적이 왜 없는지요?  지방교회와 고전12:28의 교회와는 틀린 교회입니까?
사도는 있는 교회인데 기적이 없다면 고전12:28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성경구절을 있는 그대로 읽고 있습니다.여기서의 사도는 님들의 주장처럼 후천적인 사도가 아닙니다. 님의 주장대로 후천적인 사도쉽이나 사도적 권위 사도정신이 교회에 있어왔다면 병고침이나 기적, 다양한 언어들도 ~쉽이나 권위, 정신만 계승되어 왔습니까?

고전 14:26엔 모일 때에 각 사람에게 시, 교리, 타언어, 계시, 통역등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교리, 타언어, 계시, 통역이 지방교회에 있습니까? 사도정신은 계승된다고 하셨는데 이들 정신의 계승은 무엇입니까? 전 지금 님이 왜 이구절을 들먹이는지 조차 이해를 할수가 없습니다.

몇번 말씀드리지만 이 구절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과 그에 동반되는 기적들입니다. 왜 이구절이 님의 주장에 도용됩니까? 
님이 주장하는 후천적 사도가 아니고 진짜 참 사도입니다. 그 참사도와 병고침과 기적과 타언어가 그 시대 그 교회들에 있다 이런 뜻입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사도가 교회에 있다고 한다면 계2:2와 마찬가지로 모순이 일어 납니다. 계2:2의 말씀 논리를 여기에 대입해 보면 똑 같은 결과입니다.

즉 이 구절은 님이 주장하는 바를 전혀 지지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님은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 정확히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격입니다.

고린도 전서가 기록된 시기는 차이가 있지만 AD55년에서 59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행전 19장과 20:1 사이에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더군요.) 이시기는 성경이 완성되기 전이고 사도들의 이적과 기적이 일어나고 있던 때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위의 구절을 이해해야 합니다.

살전 1:1, 2:6의 배경은 행전 16장에서 바울과 실라는 디모데를 만나고 17장에서 데살로니카에 도착합니다. 갖은 박해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이 곳 데살로니카에서 교회를 개척합니다. 세사람(바울, 실라, 디모데)이 세운 교회입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살전,후서를 읽어야, 1:1 2:6의 의미를 잘 이해 할 수가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엡4:11입니다.
<그분께서 몇몇은 사도로, 몇몇은 대언자로, 몇몇은 복음 전도자로, 몇몇은 목양자와 교사로 주셨으니,>
여기의 사도, 대언자가 현재 교회에 있지도 않은 사도, 대언자를 가르키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도행전의 사도와 대언자를 가르키고 있습니까? 이 구절 역시 현대교회에 사도나 그 비슷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요? 사도행전의 사도를 가르키고 있음을 누구라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위에서 길게 말씀드렸으므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님의 주장은 성경구절을 교묘하게 왜곡하여 지방교회의 입장을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카톨릭은 아예 대놓고 자기네가 사도권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고, 오순절 파는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다>는 구절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오늘날에도 사도행전의 이적을 재현하려는 해괴한 짓거리를 하고 있어  눈에 확 뛰는데 반해, 지방교회는 교묘하게 성경을 왜곡하여 성경의 사도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다 사도나 선견자가 될 수있다, 빛을 봐야 한다는 식으로 은연중에 계시와 사도권을 이어 받은 모양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명확하게 위치만 니가 사도가 아니다라고 말은 안하지만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그에 버금가는 권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의 내용 중에서 위치만 니/위트니스 리의 글이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점이 보이길래 사도성이(혹은 사도 비슷한 그 무엇이던지 간에) 계승되어 왔다는 님의 주장이 카톨릭이나 오순절 파와의 이면적 주장과 틀린 점이 무엇이냐를 질문 한겁니다. 이면적으로는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한나님이 주장하신 성경 구절은 님의 주장을 전혀 뒷받침하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에 나와있는 그대로의 사도를 말씀드리는 것이며 성경적 용례를 뛰어 넘어 사도란 말을 남발하는 님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 입니다. 걸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