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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3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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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돌아가신 리, 께서 임종 직전에 최후로 회개한 말씀은 "자신이 타 기독에 대하여 너무 진리의 극단적인 성향으로 신앙해왔음에 대하여 용서를 바라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유언과 같은 회개라는 점에 지방교인들은 대단한 관심으로 생각해보아야될 사안입니다.
이는 주께서 리,의 신앙을 평생에 받으시면서도 그 극단 성향에 대하여 늘 여러모로 회개할 것을 인도하셨지만, 그는 극단 성향이라는
마귀의 올무를 쉽게 벗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성향은 그의 성경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된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주위를 보편의 입장에서 원만히 돌아볼 시야를 잃고 주요부분적인 주장에 대하여는 강한 편향과 극단으로 대처한 것입니다.
하여, 리의 해석을 존경하는 지방교인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이미 리의 이런 강한 극단에 몰린 해석 부분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신앙심에도 상당한 영향이 미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기회를 틈타 벌써 마귀의 올무가 착착 놓여지고 있었음을 직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지적은 지방교회 자체에서는 받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래서 뜻있는 타 교단의 지체들을 통하여 이러한 권면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지방교회에서는 해석의 더 좋은 면도 늘 아낌없이 타 교단으로 흘러 보내는 주의 수고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깊은 이해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발생하는 주된 공통점은 이러한 이해로 인도한 분을 지나치게 자랑과 존경하여 따름으로 이분을 중심으로 또 한 무리를 형성하는 자체가 교파며 분열인 것입니다.
오늘날 곳곳에서 이러한 (성경해석의 은혜로) 일들이 교계에 흥행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교단의 심한 분열은 해석의 수준 차이 보다는 다른 의미인 곧 개인의 신앙활동에 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 대부분으로 볼수 있습니다.
원인이야 어찌하였든, 이러한 것들이 외관상으로는 분파요 분열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듯이 초교파라는 것은 외적으로는 어느 한 교파에 속한 신앙생활일지라도 각 자의 교단과 교파의 교리와 이념을 절대시 하지 않으며 믿음이 같은 모든 교회를 존중하는 것 입니다.
인간사회는 어디를 가든지 분열과 분파가 형성됩니다. 이는 신앙세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병이 있으면 약도 있듯이 분파가 있으면 초교파도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파를 향하여 신앙에 장, 단점을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수용하는 것이여야 합니다.
진리의 확연한 왜곡 문제는 분명한 지적과 수정을 요구하는 정당한 발언도 있어야 겠지만, 그외 왜곡이 아닌 약간씩의 이해 차로 오는 갭들에 대하여는 상호 수용의 문제이지 결단코 진리의 흑백 논리로 맞서는 것은 서로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지방교우 여러분!
귀 측에서는 해석의 수준에 의한 상호 수용의 문제에서도 극단을 보이는 예가 너무 흔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이에 대하여 진리사수라는 사명감이시겠지만, 객관으로 볼때에는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지도자의 지나친 극단이 여러분에게도 그 영향이 알게 모르게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믿음 안에서 상호 권면의 지적을 귀하게 받고 자신을 언제나 객관의 판단에서 바라보기를 게을리 말아야 합니다.
이에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말씀이며 꼭 이대로 실천해야 하는 말씀을 신약의 우리가 심령에 근본적으로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친히 원수 갚으려 말고 모든 심판은 주께 맡기고 복음을 위한 핍박을 당연히 여기고 이로써 오는 여러 부담을 아무에게도 돌리지 않는 가운데 오히려 부담을 주는 이에게 이해와 사랑을 내세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