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11-21 , 조회수
(216) , 추천
(0) , 스크랩
(0)
두 분, 니와 리를 존경하는 귀 측에 입장은 님께서 밝히신 바 대체로 그러함이 공통점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깊이 냉철하게 생각해야할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분명 두 분의 주옥같은 설명에 의한 성경 보는 눈의 각도가 제대로 열림을 부인치 못할 사실이나 그 보다 먼저 성령께서 그 눈을 주심을 아셔야 합니다.
두 분은 단지 이에 매개가 된 것일 뿐입니다. 만약 성령께서 그 눈을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두 분의 설명을 아무리 보아도 은혜로 인도함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제 계시의 눈을 받았으니 스스로 성경을 중심한 개인적인 말씀연구에 박차를 가함이 옳은 것입니다.
성경전체의 해석에 있어서 두 분의 해석에 모든 것을 기대기식의 의존적인 면을 과감히 탈피해야 합니다. 세상에 먼저 나온 모든 해석은 모두에게 은혜 주시기 위한 부분적 방편이므로 참고이상에 존경은 신앙에 무리를 낳게 됩니다.
이런 훌륭한 해석을 주신 이유는 이로 통하여 여러모로 다방면의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각도로 계시가 열리게 하는 원인제공이, 또는 꺼리로 접촉이 되게 한 후, 모두가 개인적으로 더욱 성경에 집중하여 이 보다 더 나은 해석을 또 받기 위한 성스러운 작업으로 나아가 더 좋은 해석의 업그레이드로 지식의 발전적인 것을 후대에 또 남기어 영향을 미치는 업적을 향하라는 하나님의 무언의 지시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매우 유의해야 할 비밀 사항을 알아야할 것은 더 좋은 해석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결과의 최종 발견은 기록된 성경 그대로가 가장 좋은 해석임을 새롭게 발견하고 인정하는 그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눈의 깊이가 없을 때의 본 성경에서 시작하여 여러 훌륭한 해석을 통하여 이해의 눈이 점점 깊어진 이후 최종적인 해석에 임할 때는 역시 처음 본 그때의 그 성경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운동장 한 바퀴를 돌기 위하여 출발한 지점이 결국 운동장 한 바퀴를 다 도는 과정을 마친 후라는 것은 다시 출발지점이 곧 그곳입니다.
하여 우리의 신앙은 이 한 바퀴와도 같은데 그 한바퀴의 과정에 매이거나, 그러한 가운데 매사 주요 자랑삼는 꺼리나 재료가 등장한다는 것은 이것이 곧 신앙의 편협에 시작임을 아셔야 합니다.
본인들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지라도 이미 이러한 자랑이 시작됨은 그것이 그 자체로 이미 그러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자신을 중심적으로 사로잡아 통제하는 과정에 있어서 때로는 그래서 더욱 잘못하게 되는 과정을 밟는 경우도 허다한 것입니다.
즉 성경이해의 수준과 신앙의 수준이 일반에 비하여 아무리 높아도 높다고 비교할 때에 이미 그 높음은 주 앞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높음이 아무리 높아도 주와 비기겠습니까? 그런데 그 주님께서는 가장 천하고 낮은 이 세상에 오셔서 진리의 그 높음을 가장 낮은 세상의 입장에서 이해되는 가장 보편의 말씀으로 대변하였습니다.
우리의 해석에 깊음을 이해하고 자랑삼는 것은 상대적으로 주의 진리가 너무 낮은 세상 식으로 말씀을 대변하였기에 오히려 우리들의 눈에는 그것이 도리어 한없이 높아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그 증거로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해석의 깊이의 최종 결과에 이르면 성경기록그대로가 가장 으뜸인 해석이구나 라고 이해를 하게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는 가장 높고 귀한 진리의 이해를 누구나 진리의 액면 그대로를 가장 쉽게 알면서 동시에 깊이 이해하게 하는 것이 성경이므로 쉽게 전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가장 미련한 방법의 성경 기록임을 아셔야 합니다.
성경의 주신 이러한 참 목적을 바로 이해 못할 시에는 성경해석의 과정을 따라 귀 측과 같이 또 다른 분파적 교회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귀 측은 그러한 분파가 절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일단은 이러한 분파의 발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서로의 신앙과 진리이해의 수준으로 설왕설래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이미 분파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분파의 경지를 면하는 질적인 신앙은 타 교파의 신앙을 최고로 존중하는 신앙의 자세를 바르게 이해할 때에 이미 분파가 아닌 예수그리스도교에 일치하고 있는 수준 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여전히 초보로 보이는 것은 그렇게 보는 자신이 아직은 분파가 아니라고 하는 분파적인 신앙에 걸쳐있기 때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