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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0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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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유는 죄에 대한 자유로서 죄로부터 오는 온갖 좋지 못한 부담과 억눌림에서 완전히 해방됨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의 느낌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단 마디로 유쾌함이라고 하였다.(행3:19)
하여 이러한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라고 하였다.(벧전2:16)
이는 범죄 하므로 오는 죄의 부담과 자유가 병행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자유의 침해를 받지 말라는 것으로 혹 죄와 허물이 있다면 철저한 회개로 이로부터 오는 부담을 온전히 떨쳐버리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잘못함으로 오는 이런 부담도 있지만 마귀의 시험으로 오는 이런 부담도 있는 것이다.
죄를 지음으로 오는 근심과 불안스러운 부담 등이 오래도록 머물고 있다는 것은 이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아닌 형식적인 회개로 되어지는 현상인데 이 경우에는 세월에 의하여 이러한 부담이 잊어지므로 해결된 것 같으나 실제는 잠재된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이러한 잠재의 사건들이 겹겹이 쌓이다 보면 양심이 둔해지므로 하여 신앙은 서서히 형식에 자리를 잡게 된다.
우리는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오는 부담이든 자신의 죄와 허물로부터 오는 부담이든 간에 반드시 이를 떨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자유로 죄를 가리는 것과 침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오는 부담은 예수의 이름에 권세로 쫓아낼 수가 있지만 죄와 허물에 의한 것은 이러한 권세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로 쫓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회개는 이러한 부담에 대하여 애통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옮겨가지만 형식적 회개는 세상근심으로 전환되어 잠재의식에 쌓이게 된다.(고후7:10)
문제의 이 형식적인 회개의 유형이 여러 모양이겠지만 가장 문제되는 유형은 자기의 신념으로 믿는 신앙 인들이다.
신념에 의한 믿음의 소유자들은 자기의 신념으로 주를 선택한 믿음이기 때문에 회개에 있어서도 진정한 회개인 듯 하나 실제는 그 모든 것, 다 하나 같이 진정한 회개에 대한 형식인 것이다.
신념에 의한 신앙과 또한 그에 물든 신앙은 성경의 모든 교훈과 가르침은 자신들의 최고의 도덕과 윤리와 선행의 가치관이 되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사고방식에 의한 인간의 비젼에 빠져들고 신앙의 결국은 기복신앙의 형태로 나오게 된다.
물론 이러한 당사자는 기복이 아니라 강복(降福)의 입장이다.
역사이래 참 교회와 함께 하는 이러한 기복교회는 어느 곳에든지 발생하여 참 교회를 훼방하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이러한 기복교회와 신앙의 행패가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이 심각의 피해 정도는 말씀 위에 굳게 서지 못한 신앙 인들은 지도자를 비롯하여 뭇 성도에 이르기까지 심하게 이에 오염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복교회에 대한 경고의 말씀)
"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