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없는 은혜와 값싼 은혜
성경진리토론방
, 2004-11-16 , 조회수 (203) , 추천 (0) , 스크랩 (0)
구원에 있어서 값없는 은혜란 우리의 입장에서 구원에 이를만한 공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도를 값으로 지불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값으로 하나님께 팔린바 된 것이다.(고전6:20)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값을 지불하고 살 사람을 산다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고유권한에 있는 것이다.(계17:14)

여기에 택함을 받으므로 해서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믿음마저 하나님의 선물이지 내가 택하여 주를 믿게된 그런 믿음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은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자 값없는 은혜가 되어지는 것이다.(출33:19)
그러면 누가 이러한 택함을 받게 되는 것인가!
이 택함은 십자가의 복음 앞에 자신이 철저한 죄인이며 자신이 그 십자가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음을 뼈가 상하는 심령으로 주 앞에 고백하는 자신의 간증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일도 못하는 무능력함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함의 온전을 살피신 하나님의 택하신 은혜의 결과로 인하여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되고 이 믿음으로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세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의 수순이 되는 이러한 과정을 밟지 않고 이와 매우 유사한 방법에 의하여 믿음을 가진 자는 값싼 은혜를 받은 자들인 것이다.
즉 십자가의 복음 앞에 우리가 죄인임과 동시에 이 복음을 믿음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인간의 강조에 의하여 믿음을 소유한다는 것은 내 자신이 스스로 주를 믿겠다는 것이며 이때의 믿음은 믿는 마음을 가져 보겠다는 선택이라는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발생된 선물로서 인간의 입장에서는 가장 최소한의 선택에 공로라는 자신의 의지가 개입된 믿음이기 때문에 이 믿음이 곧 값싼 믿음이 되어지는 것이다.

하여 값없는 은혜의 소유자와 값싼 은혜의 소유자가 얼마나 흡사한지 그 시작은 인간의 눈에는 절대로 분별이 되어지지 않는 가라지이다.
때론 자신이 이러한 가라지 인줄도 미처 모르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하면서 신앙을 하다가 나중에서야 값없는 은혜의 비밀을 알고 애통과 함께 진정 거듭나는 신앙인 가운데는 목사 장로 집사의 직분자들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기복의 지도자, 성도, 교회는 다 이러한 값싼 은혜의 믿음에 의한 것이며 자신들도 이 믿음이 실제 값싼 믿음인줄이야 절대로 모르고 있다가 주의 심판대에서 이것이 발각되니 너무 너무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하나 주님은 이들의 억울함에 대하여 아주 냉엄하게 꾸짖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를 못한다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라가라고 엄명하신다.(마7:23)
가라지들이 지상교회에서는 자신이 가라지 인줄도 미처 모르기 때문에 본의가 아닌 것처럼 성도를 철저히 속이고 제 마음껏 유린할 수도 있지만 주의 심판대에서까지 이를 숨기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한국교회에 양적인 부흥이 어디에서 왔는지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대체로 값싼 은혜로 기복 지도자, 성도, 교회로 크고 작은 부흥의 큰 꼴을 이루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에 지금의 의식 있는 성도들의 입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함성이 교계 전반에 걸쳐 외치는 것은 값싼 은혜자들의 부패한 열매에 대한 일시적인 항거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개혁의 항거하는 함성에 의하여 이들이 개혁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값없는 은혜의 중심에 굳게 서서 값싼 은혜자들의 모든 것에 미혹되지 않는 신앙의 정절과 어떠한 경우에라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성경중심을 벗어나지 않음을 더욱 고수하는 이것이 진정 소리 없는 개혁의 능력이며 값없는 은혜의 교회를 이루고 있는 무리들의 뇌성벽력과 같은 영음의 개혁에 목소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