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림글 391회 - '희생 제물'에 더해진 '희생 전제물'
누림글
청지기 , 2024-07-08 , 조회수 (343) , 추천 (0) , 스크랩 (0)


전제물(drink offering)은 기본 제물들 위에 부어져 더해진 제물이었습니다(민15:1-10, 28:7-10). 그러므로 바울은 "그러나 여러분의 믿음의 희생 제물과 믿음의 봉사 위에 내가 전제물로 부어질지라도, 나는 기뻐하며,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합니다"(빌2:17)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먼저 전제물은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참포도주로 쏟아 부어진 그리스도를 말합니다(출29:40-41). 그 다음은 그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하나님의 누림과 만족을 위해 또한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쏟아부어질 때까지, 하늘에 속한 포도주이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적시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이기도 합니다(마9:17, 빌2:17, 딤후4:6).


이 포도주로 적셔질 때 우리는 뛸 듯이 기쁘고, 이 포도주로 충만해질 때 우리는 심지어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전제물이 될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건축물 위에 부어지는 포도주는 포도즙 틀에서 직접 나온 것이 아니라, 포도주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적셔진 사람들에게 나온 '간접적인' 포도주인 것입니다. 벧엘인 하나님의 집,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전제물로 부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은 나의 소유물을 더더욱 기쁘게 소비하고, 나 자신까지도 다 소비할 것입니다"(고후12:15)


바울은 믿는 이들의 믿음의 희생 제물과 믿음의 봉사를, 자신을 전제물로 부을 수 있는 기본 제물로 여겼습니다(빌2:17). 여기서 믿음은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체험하고 누린 모든 것을 포함하며, 궁극적으로 믿는 이들 자신의 어떠함을 포함합니다. 믿는 이들의 '희생 제물' 위에 '희생의 전제물'이 부어진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기둥을 두 번 세웠습니다(창28:18, 35:14). 처음에 그는 그 기둥 위에 전제물을 붓지 않았었습니다. 그는 단지 그 위에 기름을 부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십 여년 후에 그가 다시 벧엘에 왔을 때는 전제물을 먼저 붓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것은 전제물이 체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기둥 위에 부을 포도주가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를 참포도주로 체험한다면, 우리는 더 '제정신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격동하는 요소가 되어 우리를 뛸 듯이 기뻐하게 합니다. 전제물은 단지 그리스도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가 포도주가 되기까지 우리를 적시신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이 그 생애 마지막 즈음에 "나는 이제 전제물로 부어지고 있으며(딤후4:6, 원문 참조)라고 말한 것은 바울을 적신 그 포도주인 그리스도입니다(마9:17). 그는 계속해서 적셔졌고 계속해서 부어졌으며, 이제 그 절정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 같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하늘의 포도주로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요! 그러나 우리는 지극히 이기적이어서 조금도 희생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내어 참포도주인 주님으로 적셔져야 희생하는 생명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희생할 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이 타고난 생명, 이기적인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자신을 쓸만하다고 생각하니까, 아깝다고 생각하니까 희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업적과 경험, 심지어 자신 안에 조성된 것이 아쉽다고 생각하니까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주가 되기 위해 짓눌린 포도는 성숙된 포도들입니다. 심지어 썩음썩음할 정도로 성숙된 것이 진한 포도주를 생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그분 존재를 하나님께 부으셨습니다(사5312). 그분은 자신을 포도주로 부으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만이 희생하는 생명입니다. 이 그리스도를 누리고 적셔질 때만 우리도 희생하는 생명을 살 수 있습니다. 기본 제물도 '희생 제물'이고, 그 위에 더해진 것도 '희생 전제물'입니다. 희생 위에 희생이 부어진 것입니다. 부어진 대상과 부어짐이 모두 하나님의 집의 건축입니다. 분명 순교할 것을 알았지만 믿음을 위해 공산 대륙으로 돌아간 형제님은, 전제물로써 부어졌고 여전히 부어지고 있습니다(딤후 4:6 참조).


이러한 희생만이 가치가 있고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희생이지만 행복하고, 희생이지만 기뻐합니다. 순교를 앞둔 전제물인 사도가 기뻐하고, 희생 제물인 믿는 이들의 믿음으로 함께 기뻐합니다. 혼자 기뻐하고 함께 기뻐합니다. 먼저 기뻐하고 나중에도 기뻐합니다. 결국 우리는 행복으로 취하여 가장 이타적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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