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마지막 서신이지만,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서신은 아닙니다.
잘 아는 것처럼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밧모섬에 유대되었을 때인 주후 90년경에 쓰였습니다. 요한은 유배지인 밧모섬에서 풀려난 이후에 에베소로 가서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을 썼을 것입니다. 아마 요한복음이 주후 90년경, 요한 서신은 대략 주후 90년에서 95년 사이가 될 것입니다. 교회사에 따르면 이처럼 요한은 말년에 에베소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그는 왜 요한계시록을 쓴 밧모섬에서 풀려난 후 '곧바로' 에베소에 가서 사역을 했을까요? 우리가 그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의 전달자에게 편지한 내용 가운데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언급된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영적으로 매우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일곱 교회 안에 있었던 실지 상황의 기록이지만, 예언의 성격을 띤 표징 또한 나타내기 때문에, 일곱 교회의 상황 역시 예언적으로 일곱 단계에 걸친 교회의 진행 과정을 의미하는 표징들인 것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게 보낸 첫 번째 서신은, 1세기 말엽에 있었던 초대 교회 곧 첫 번째 단계에 있었던 교회의 끝 무렵의 그림을 보여 줍니다. 이후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까지 각각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의 교회 생활을 역사적으로 상세하게 예시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교회의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의미심장합니다.
헬라어 각각의 이름도 정확하게 그 도시에 있는 교회의 영적 상태와 걸맞는데, '에베소' 또한 헬라어로 '바람직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끝 무렵에도 여전히 주님께 바람직했고, 주님은 그 교회에 대해서 매우 기대를 많이 가지셨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그 교회의 일과 수고와 인내 등 많은 항목들을 칭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를 향한 책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가는 사랑"을 버린 것이었습니다(계2:4). 여기에 '첫째가는'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누가복음 15장 22절에서 '제일 좋은'으로 번역된 헬라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첫째가는 사랑은 그분에 대한 제일 좋은 사랑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칭찬들보다 한 마디의 책망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첫째가는 사랑을 잃는 것이 에베소뿐만 아니라 이후 교회들의 하락의 근원이며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일은 있었지만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기는 이들을 부르는 주님의 첫 번째 부름은, 그들이 되돌아와서 그분을 최고도로 사랑하고 그분을 가장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한 첫째가는 사랑이자 가장 좋은 사랑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생명나무를 받아서 먹게 될 것입니다(계2:7)
에베소 교회는 매우 근본적이고 건전하며 성경적이지만, 주님께 대한 첫째가는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다른 것을 다 얻었을지라도 가장 큰 것을 버린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상실될 때 우리가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하든지 결국 생명은 사라집니다.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믿는 것, 곧 믿음을 갖는 것을 필요로 하지만 생명 안에서 성장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생명을 위한 것이고, 사랑은 생명의 성장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유배지에서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에베소로 발길을 향했을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주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그가 보기에는 "가장 긴급한 필요"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가장 긴급한 필요가 되기 원합니다. 요한은 크고 높은 산에 올라 많은 것들을 보았지만, 그 수많은 항목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께 대한 첫째가는 사랑의 회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거기에서 사랑의 사역을 한 것입니다. 요한 서신은 신성한 생명을 말하지만, 사랑이 가득한 서신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말하지만(요일4:15), 또한 형제 사랑이 넘칩니다. 요한은 에베소 교회에 필요한 것이 첫째가는 사랑이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율법학자가 주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 으뜸가는 계명을 물었을 때 그분은,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대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막12:28-31). 주님, 첫째가는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첫째가는 사랑은 최고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단지 예전에 뜨겁게 사랑했었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늘, 그분에 대한 사랑이 이전에 가졌던 사랑보다 제일 좋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언제가부터 제게도 자주 기도로 가져가는 사랑에 대한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가장 극도로 사랑할 때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최고의 사랑 가운데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여섯 번째 서신을 받은 교회인 ‘빌라델비아’는 ‘형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은 주님께 대한 첫째가는 사랑이 회복될 때 이뤄집니다. 우리 스스로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만이 우리로 하여금 형제를 사랑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라델비아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 최고의 교회입니다. 가장 좋은 교회는 은사나 지식이나 능력의 교회가 아니라 형제 사랑의 교회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그때 왜 요한은 에베소로 가야 했을까?|작성자 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