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림글 388회 - 바라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시며
누림글
청지기 , 2024-06-17 , 조회수 (374) , 추천 (0) , 스크랩 (0)


마가복음 10장에는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여쭙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겠습니까?"(17절).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고 하시면서, 계명들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선생님, 이 모든 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지켜 왔습니다"(20절)라고 대답하였고, 그때 예수님은 그가 모든 계명들을 다 지켰을지라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막9:17-21). 잘 아는 바와 같이 그는 근심하며 떠났는데,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22절).


그런데 이 대화 가운데 너무도 귀하고 사랑스러운 말씀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어려서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대답할 때, 예수님께서 그를 대하는 장면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바라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시며>(Jesus, looking upon him, was moved with love for him)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가서, 그대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십시오'(20절)


여기 그 사람은 마태복음에 따르면, 젊은 사람 즉 청년이었습니다(19:20). 주 예수님은 그 청년의 상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계셨을 것이고, 또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혀 그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실패가 그분의 사랑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다만 "그를 바라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청년과 아주 부드럽게 눈 맞추며, 그를 아주 사랑스럽게 여기시며 말씀하셨을 겁니다.


머리 속에 이 그림을 생각해 보며 이 말씀을 읽을 때, 너무도 달콤해서 여러 번 읽었습니다. 아, 우리 주님의 인성은 얼마나 아름다우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구절은 재물에 대한 경고와 그가 할 수 없는 것 '한 가지' 즉 하나님께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그것에 대해 말씀하시기 위한 것 등 많은 가르침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이 예수님 앞으로 질문하기 위해 "달려 왔을 때"(17절), 그리고 그 청년의 대답을 들었을 때(19절), 엄한 모습으로 그의 부족을 깨우치고 계셨을 것이란 저의 상상과는 달리, 주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게 그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를 바라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시며.... >


이처럼 귀한 말씀 구절이 어떻게 이런 구절 가운데 숨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청년이 보았던 예수님의 눈과 사랑스런 표정은 어떤 모습이셨을까. 감히 추측하건대, 그 청년은 예수님의 그 눈동자와 표정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록 그 당시에는 근심하며 떠나 갔을지라도...


아, 그분은 어떤 눈을 가지고 계실까. 아가서 5장 12절에서는 그분을 말할 때, "그분의 눈은 시냇가 비둘기 같아 젖으로 목욕하고 알맞게 자리 잡고 있답니다"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그분의 사랑의 표현, 즉 정서의 표현은 비둘기처럼 단일하고 순수하며, 시냇가처럼 생명의 강으로 흐르고, 젖으로 목욕한 것처럼 분명하고 투명하며, 알맞게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합당한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 청년이 마주하여 본 예수님의 눈은, 생각만 해도 강력한 사랑의 전율이 있습니다. 그분의 눈을 마주한 사람치고 온 마음이 녹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눈을 매순간 바라보고 살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0절에는 바울이 누군가를 용서할 때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용서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때 '인격'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눈 언저리 곧 감추어진 생각과 느낌을 보여 주는 표정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사람의 인격 전체를 보여 주고 나타내는 곳입니다. 바울은 누군가를 용서할 때도 그분의 눈(언저리)을 주목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라고도 말할 때 사용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임재, 눈언저리 주변에 살 때 그분을 참되게 보배로 여길 수 있게 됩니다(고후4:4,7). 즉 바울은 늘 주님의 임재 안에 살며 그분의 눈을 주목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당시 그 청년은 육체를 가지신 그분의 눈을 보았지만, 오늘 우리는 바울과 같이 영 안에서 그분의 눈을 주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눈이 비둘기 같다고 하시고(아1:15, 4:1), 우리의 단 한번의 눈길이 그분의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4:9). 심지어 그분은 우리의 눈이 그분을 뒤흔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6:5).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눈을 보길 원하는 것처럼, 그분 또한 우리의 눈이 그분을 보길 간절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세상에 강요해서 얻을 수 없는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사랑이고, 둘째는 존경이랍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게 있는데, 그것은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것'이랍니다. 주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 예수님, 존귀하고 귀히 여깁니다. 늘 주님과 눈 맞춤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눈언저리를 주목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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