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제대로 알아서 성경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 후 주님의 긍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알게 된 것이 큰 틀에서 성경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엡 1:10). 최근에는 읽은 성경 본문을 바로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어려운 난수표와 같은 책이 아닙니다. 대신에 사람이 알아듣도록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제대로만 성경을 읽는다면 그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두 가지가 바른 성경 이해에 다소 걸림돌이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첫째는 성경이 장과 절로 구분되다 보니, 바뀐 장(章)은 특별한 연결점이 없는 한 앞의 내용과는 별개라고 생각하고 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 성경의 장과 절은 16세기에 스테파누스가 인쇄한 성경부터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원래는 없던 장과 절은 참고용일 뿐입니다. 둘째는 번역 과정에서 원문에 있는 접속사 등이 생략되다 보니 문맥을 파악하는 단서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한 예로 아래 본문의 경우 <신약성경 회복역> 외에, 소위 ‘한글성경 16개 역본들’ 모두 ‘gar’(1063, for)라는 매우 중요한 접속사를 생략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다음 사실을 모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제님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갔습니다(고전 10:1).
사도 바울은 위 본문의 바로 앞인 9장 끝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성공적으로 달려야 할 경주’(race) 임을 계시한 후에, 자신도 몸을 쳐서 노예로 삼으면서 이 경주를 하고 있다는 말로 마칩니다(24-27절).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10장 1절을 “왜냐하면”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이 10장이 이스라엘 백성의 예를 들어 앞에서 다룬 내용을 보완하여 설명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마치 어린이용 그림책이 큰 글씨로 쓴 책 내용에 어울리는 삽화를 그려 넣어 아이들의 이해를 돕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관점은 아래에서 보듯이 ‘경주’를 다루는 해당 본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먼저 경주를 말하는 고린도전서 9장 후반부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 네 가지 요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우리의 거듭난 후의 삶은 결승점을 향해 부지런히 달리는 경주와 같다. 2) 이 경주의 목적은 이겨서 상을 받는 것이다. 3) 이기려면 모든 일에 자제해야 하고, 심지어 몸을 쳐서 노예로 삼아야 한다. 4)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포함한 모든 믿는 이들은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버림받을’(disapproved, 실격자가 되거나, 퇴장 명령을 받거나, 거절당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점들은 10장 전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좀 더 자세히 설명됩니다. 즉 1) 홍해에서 침례를 받았고, 영적인 음식(만나)과 반석에서 나온 영적인 물을 마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받은 이들이다. 2) 그런데 그들 대부분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셔서 그들은 광야 여정 중에 “흩뿌려져 사라졌다”(민 14:16, 29 참조). 3) 오늘날 우리도 이렇게 되지 않도록 (1) 우상숭배 하지 말고(7절), (2) 음행을 저지르지 말고(8절), (3)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말고(9절), (4) 불평하지 말고(10절), (5)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12절)고 바울은 경고합니다.
저는 바울이 “우리도 악한 것들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여 이러한 경고의 대상에 자신을 포함시킨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6절). 이러한 묵상과 추구를 통해 다음 세 가지를 제 자신에게 다시 상기시키고 싶어졌습니다.
첫째, 우리는 ‘지금 당장 죽으면 천국에 갈 자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접할 때가 있는데, 대부분은 여기서 의 천국을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간 낙원, 즉 “아브라함의 품”(눅16:22)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낙원은 부활 때까지 머무는 임시 거처일 뿐이고 영원히 살 곳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부활 때는 거기서 나와 죽었던 몸과 결합한 후에, 공중에서 있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반드시 서야 합니다(고후 5:10).
둘째, 빌립보서 3장의 내용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달렸던 경주는 영적인 경주였습니다. 즉 바울의 존재 안에 있는 모든 타고난 것들을 비워 내고(배설물로 여기고) 대신 “그리스도를 얻고” 더 얻어 주님으로 충만한 존재가 되게 하는 경주였습니다(7-8, 12-16절).
셋째, 이 경주를 신실하게 한 사람은 ‘현명한 처녀들’처럼 살아 있는 동안 충분한 기름을 예비하였기에, (주님을 극도로 누리는 영역인) 천년왕국 안에 들어가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 25:10). 그러나 위 바울의 위 경고를 무시하고 느슨하게 산 사람은 비록 지옥에는 가지 않더라도 ‘어리석은 처녀들’처럼 천년왕국 밖의 어둠 속에 (당분간)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깨어 있어야” 합니다(마 25:13).
오 주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를 깨우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경주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