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림글 382회 - 최고의 사랑과 최상의 누림
누림글
청지기 , 2024-05-06 , 조회수 (485) , 추천 (0) , 스크랩 (0)


아가서 2장에 따르면, 연인이 연회장, 즉 포도주의 집으로 이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4절). 그녀의 단체적인 누림인 교회 생활 안에서, 그녀 위에 사랑의 깃발인 승리의 깃발이 나부낍니다. 사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연인이 누린 처음 결과도 잔치이었지만(아1:12), 그 나중 결과도 포도주의 집인 교회 생활 안에서 잔치의 생활인 것입니다. 추구하고 발견하고 감상하며 풍성한 누림을 갖게 됩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그분을 누릴 뿐 아니라 잔짓칩으로 인도받고, 그때 그녀 위에 그분의 사랑이 깃발이 됩니다. 왕의 마음도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땅은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식물과 동물의 소산물을 포함한 좋은 땅의 소산물은 그리스도의 풍성의 예표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 것입니다. 예표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 방식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으로서,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날마다 좋은 땅의 소산물을 누릴 수 있었던 것과 똑같습니다. 집에 있든 학교에 있든 직장에 있든,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누림입니다.


그러나 또다른 누림이 있는데,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개인적으로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 단체적으로 서 있는 이들과 함께 있을 때만 누릴 수 있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개인적인 체험과 관계된 부분은 그것을 누리는 데 장소의 제한이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누림은 최고나 최상의 몫은 아닙니다. 비록 그 부분이 우리의 누림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더 높고 더 좋은 또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둘째 방식은 최상의 누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에 따른 이 누림은 단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연관됩니다. 이 단체적인 누림은 우리 자신이 선택한 곳에서는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단체적으로만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누리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선택을 제쳐 두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 부분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단체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입니다. 좋은 땅의 최고의 산물은 단체적인 누림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최상의 부분은 우리의 단체적인 누림을 위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누릴지라도 여전히 단체적인 그리스도인 그 영(고전12:12,13)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그리스도'를 누리고 체험하여 개인적인 그리스도를 '단체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에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누리고 체험하는 그리스도 또한 머리와 몸, 맏아들과 많은 아들들을 포함하는 단체적인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 영은 각 사람의 영에 오시지만 단체적인 영이신 까닭입니다. 우리가 이미 이 영을 누릴 때만 최상의 몫을 누리고 체험하고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 누림이 사람들 안에 배고픔을 만듭니다. 최상의 누림은 최상의 배고픔을 가지게 합니다


아가서의 연인은 처음에는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었습니다(아1:6). 그렇기에 그분은 그분의 연인에게, 포도원들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로 상징되는그녀의 특이함과 습관과 자기 성찰들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2:15). 이제 그분과 연인은 일찍 일어나서 그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포도원들 안에서 다른 지체들을 위해 일하며 거기서 사랑을 바치게 됩니다(7:12). 포도원들을 얻고자 하시는 왕의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의 포도원'만을 지키려 할 때는 실패했지만, 그분과 함께 '그분의 포도원들'을 관심할 때 연인의 사랑과 누림은 최고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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