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 예수님은 양들에게 생명을 주시며 풍성히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요10:10).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혼으로 흘러, 흘러 들어오고 계십니다. 그렇게 그분은 우리 존재 안에 생명으로 오셨지만, 커다란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아이며, 그중 안쪽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것은 기질이고 밖으로 드러난 것은 성격입니다.
2. 어떤 생명은 어떤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은 중간에 장애물에 가로막혀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활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장애물은 기질을 포함한 우리의 성격입니다. 성격은 기질이 삼십 퍼센트, 습관이 칠십 퍼센트 정도를 차지합니다. 기질은 우리의 출생으로 인한 우리 성질의 어떠함이고 성격은 외적 표현의 어떠함입니다.
3. 예컨대 거북이는 천천히 걷고 토끼는 빨리 달립니다. 그것이 각 동물의 본성 안에 있는 기질입니다. 우리 각자는 특별하고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하지만 어떤 사람은 외향적입니다. 둘 다 내적 기질의 문제입니다. 기질은 항상 우리의 성격 안에서 밖으로 표현됩니다.
4. 어떤 의미에서 죄들과 세상과 양심을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이 기질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기질이 올바르지 않을 수 있지만, 항상 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타락한 기질은 죄와 허물의 깊은 우물 가장자리에 가까이에 있습니다.
5. 기질은 가장 다루기 힘든 부분 우리 존재의 일부이며, 때로는 거의 다룰 수 없는 독특한 부분입니다. 이 기질은 우리의 자아의 일부입니다. 문제는 이 독특하고 특이한 부분이 생명의 성장의 진보를 가로막는 강한 장벽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질이 놓은 나무라 할지라도 옹이와 마디가 있다면 쉽게 잘려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6. 똑같은 물감을 상이한 직물에 물들이면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파랑 물감을 비단에 물들이면 빛나는 파란색의 비단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물감을 무명에 물들이면 흐릿한 파란색의 무명이 될 것입니다. 밝기는 물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직물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떠한 종류의 그리스도인인가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격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똑같지만, 이 은혜가 우리 안에서 나타나는 정도는 우리가 어떤 성격과 기질을 가졌느냐에 크게 좌우되는 것입니다.
7. 우리는 사람들에게 '떡 한 덩이'를 제공하지만, 그 떡 안에는 우리의 강한 기질이라는 '돌'이 있습니다. 생명이 생활이 되어 나타나야 하지만, 기질과 성격이라는 장애물에 가로막혀 왜곡되고 비뚤어지고 어그러지게 표현되곤 합니다.
8. 베드로는 어떤 기질이 분명했지만, 베드로전후서에서 그의 기질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베드로의 기질이 나타나지만 신성한 기질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 또한 마찬가지로 어떤 기질이 있었지만, 요한복음, 요한서신서, 요한계시록을 쓸 때 그의 낡은 기질이 처리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본성과 기질과 성격을 처리하시어 우리의 일상 생활 가운데 그분이 표현되시길 갈망하십니다.
9. 우리의 기질과 성격은 둘 다 죽음에 넘겨져야 합니다. 이것은 정확히 침례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의 기질과 성격은 물속에 넣어지고 장사됩니다. 동시에 그 영께서 오셔서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우리를 발아시키십니다. 우리는 침례 안에서 장사되고 또한 부활합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기질과 성격은 부활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유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질과 성격이 천연적인 한 그것은 유용하지 않습니다.
10. 기질은 거슬러야 합니다. 우리의 기질이 우리의 기능을 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기질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령 실패할지라도 여전히 거스를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적용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조용한 사람이라면 조용한 기질을 거슬러야 하고 빠른 사람이라면 빠른 기질을 거슬러야 합니다. 우리의 타고난 기질을 거스를 때 십자가가 적용됩니다.
11. 기질에 습관을 더한 것이 성격입니다. 잘못된 습관은 그리스도를 사는 것을 크게 좌절시킵니다. 그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은(롬8:13), 실지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습관들, 습관적인 실행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생활의 칠십 퍼센트는 습관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의 낡은 습관들, 여러 해에 걸쳐 형성된 낡은 습관이 허물어져야 하고 새로운 습관으로 대치되어야 합니다. 습관은 신성한 생명을 질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 그분은 첫째로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또한 세 가지 곧 우리의 본성과 기질과 성격을 통과하시어 결국 우리의 생활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질과 본성과 성격이 되시며, 결국은 우리의 생활이 되셔야 합니다. 생명은 본성과 다르고, 본성은 기질과 다르며, 기질은 성격과 다릅니다. 결국 삼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의 생명이 되실 뿐 아니라 우리의 본성과 기질과 성격이 되시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생활이 되셔야 합니다.
13. 우리의 눈이 열려 그리스도가 우리 생명이시라는 것을 보는 것은 큰 긍휼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어떻게 전진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은, 우리의 기질과 성격이 생명의 흐름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라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질과 습관 모두를 포함한 성격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긍휼입니다.
14. 장애물들은 모두 십자가 못 박혀야 합니다. 침례의 물 속에 장사되어져야 하고 부활의 그 영이 임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질은 거슬러야 하고 낡은 습관은 새로운 습관으로 대치되어야 합니다. 실행적으로 말하자면, 조금 지나칠 정도로 거스르고 대치해야 하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입니다.
15. 주님, 제 안에 오신 이 생명이 제 존재로 온전히 흘러들어와 제 깊은 곳을 거쳐 온 존재를 적셔 주십시오. 이 생명이 제 일상의 생활이 되게 해 주십시오. 막힘없이 흘러 제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들로 흘러나오게 해 주십시오(요7:38).
[출처] 생명과 생활 사이에 있는 장애물|작성자 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