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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6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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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은 예수를 향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공생애는 그 시작에서부터 영으로는 이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그리스도는 만세 전부터 이를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으나 그리스도의 실제는 늘 이것에 대한 부담을 떨치지 못하였다.
공생애의 그리스도는 평소에도 그 마음에 이 십자가를 면하고 싶은 마음에 충동이 늘 멈추지 않는 부담으로 다가왔으나 그때마다 아버지의 보내신 뜻을 거역할 수 없는 것임을 고백하였다.(요12:27)
결국 그리스도는 육체와 정신적인 이 부담을 면키 위한 최종의 그 고민이 얼마나 심하였던지 고민에 의하여 죽게될 정도라고 하였다.(마26:38)
이에 그리스도의 기도는 될 수만 있으면 이 부담을 면하고 달리 다른 방법을 세워주실 것을 땀이 피 방울이 되도록 간절한 기도를 하였다.(눅22:44)
그러나 아버지의 명령은 처음과 같이 변함 없는 한결 같음을 아시고 자신의 십자가 죽음에 최종 결단과 함께 이 길을 가셨던 것이다.
이에 제자 된 우리의 부담 역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버릴 때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이 그 생명을 다시 얻게될 것이라고 하였다.(마16:24-25)
사도 바울은 이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 신앙에 정수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우리의 이 부담을 자기 임의로 떨치므로 하여 내실 없는 형식의 신앙이 되어 극심한 부패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짠맛을 잃어버리고 소금의 모양만 취하는 기독교 종교 형식의 틀이 확대 일로로 말미암아 진정한 기독교를 점령하고 있다.
오히려 이 틀의 기독교로 안주하는 것에 대하여 경계하고 고민하기보다는 선호하는 경향이 팽배해지고 있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