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71회 - 면사포를 쓰는 이유
에세이
청지기 , 2024-02-09 , 조회수 (828) , 추천 (0) , 스크랩 (0)


요즘 들어 두 가지가 제 안에 분명하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거듭난 이후의 신앙 생활은 우리의 혼(soul), 특히 우리의 생각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경험에 따르면, 우리 자신에서 비롯된 이런저런 생각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는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그분의 말씀우리 생각 속 녹아들어 생겨 난 우리 생각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본 후에 저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말씀이 생각 속에 남아서 저의 존재를 적시도록, 틈 나는 대로 한 구절의 말씀을 여러 번 읽고 외우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운전하면서 문득 전에 외웠던 “만물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고 또 하나님을 통하여 존재한다.”(히 2:10)라는 말씀이 떠올라 마음속 깊이 “아멘!” 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동의하지 않거나 심지어 부정해도 그 말씀이 참되고, 또 결국에는 그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묵상한 아래 말씀이 그 한 예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이것을 알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는 각 사람의 머리이시며,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이십니다(고전 11:3).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위와 같은 우주의 질서를 고린도 교회의 믿는 이들이 알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위 본문은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러나 위 말씀을 처음 대했을 때는 아멘이 되면서도,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는 부분은 소위 페미니즘 차원에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전후 문맥과 ‘머리’(head)라는 단어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 묵상하고 추구한 후에, 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즉 이 구절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계획과 그것을 이뤄가시는 과정들을 압축해서 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래 에베소서 본문입니다.

“그분의 선한 기쁨을 따라 우리에게 그분의 뜻의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 … 때가 찰 때의 경륜을 위한 것입니다. 이 경륜은 만물, 곧 하늘들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통일되도록 하는 것입니다”(엡 1:9-10).

참고로 회복역 외에도, Net Bible이나 The Darby Bible이 원어인 ‘아나케프할라이오’(346)의 의미를 잘 살려 ‘head up’(all things)이라고 번역했고,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이 이 구절을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 하여 통일시키는 것”이라고 잘 번역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이해한 것이 맞다면, 위 본문은 다음 세 단계에 걸쳐 성취되고 있는 중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머리’의 의미는 권위에서 오는 ‘통제와 제한’ 그리고 ‘공급과 보호’의 의미가 함께 들어있습니다.

1)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 그리스도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단 한 가지만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머리로 취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고”(요 5:19), 모든 일에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셨습니다(I live because of the Father)”(요 6:57 상). 따라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라는 위 말씀은 주 예수님의 삶을 통해 완벽하게 실행되고 또 만천하에 증명되었습니다.

2) “그리스도는 각 사람의 머리”: 이 말씀은 현재로는 그분의 권위가 무엇인지를 체험적으로 배운 소수의 믿는 이들 안에서만 실재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기도 하므로(골 1:18), 세상 사람들 앞에서 교회 구성원인 우리가 먼저 그분을 머리로 삼아 사는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길은 하나님을 머리 삼아 사셨던 그 인격을 “먹어”(he who eats Me) ‘그 인격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요 6:57 하).

3) “남자는 여자의 머리”: 최초의 여자인 하와는 아담돕는 배필이 되도록 아담을 근원으로 생겨났습니다(창 2:21, 18). 그런데 그녀는 아담에게 묻지 않고 임의로 행동하다가 뱀에게 속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여자는 (배역한) 천사들 때문에 권위에 복종한다는 표시를 자기 머리에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고전 11:10). 결혼식 때 신부가 면사포를 쓰는 것은 이런 것들을 배경으로 하며, 자신은 이제 머리가 아니고 남편이 자신의 머리라는 공개적인 고백입니다. 리브가는 남편 될 이삭을 처음 볼 때 “너울을 꺼내 자신을 가렸습니다”(창 24:65).

이 주제를 묵상하고 추구한 후에 제 안에 두 가지가 새겨졌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 앞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등 부끄럽고 못난 남편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사라가 묵묵히 “아브라함을 주라고 부르며 순종”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벧전 3:6, 창 20장). 둘째는 제 아내와 머리이신 주님께 나아가 함께 기도에 오던 실행을 새해에는 좀 더 강화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오 주님, 하나님을 머리 삼는 좋은 본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각 사람이 당신을 머리 삼고,

여자가 남자를 머리 삼는 일도 속히 그 실재를 얻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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