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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2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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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에 관심을 기울여 주십사 하는 의미로 조금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보았습니다.
저는 개혁신학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장로교인 분들은
1) (천주교나 감리교에서 그런 전례가 있는)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은 이단이다.
2) 오직 믿음이다 라고 말은 합니다. 그러면서
3)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행위'(살전1:3, your work of faith) 까지 내다 버리고,
4) 오히려 '오직 믿음'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실제 신앙생활에서는 십일조, 주일성수,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선행 등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제가 볼 때, 위에서 1)과 2)는 합당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3)과 4)는
비성경적이고 치우친 것입니다. 특히 3) 을 1) 로 착각하고 소홀히 함으로 이런 잘못된
진리인식을 가진 장로교인 분들 중에는 많은 분들이 마7:21에 의거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이렇게 자극적인 표현을 드리는 것은 마7:21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말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함'에 대해서 교리와 신학을 떠나 본문 문맥을 참고하며 진지하게
본문 말씀을 묵상해 보시기를 부탁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위와 같은 말( 천국에 못 들어갈 가능성)에 대한 근거는 다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마 7:21 본문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웨스트민스터 신학을 하시고 예장 합동측 총신대학
시학대학원 교수도 하셨던 권성수 목사님의 책(천국은 어떤 나라인가? 도서출판, 횃불,
1999, 7500원).
1.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the kingdom of heaven)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he that doeth the will of my Father)
들어가리라.'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를....)
2. 권성수, '천국은 어떤 나라인가?'(129-138쪽 참조)
이제 위 본문 중 의미있는 대목들을 부분적으로 인용 소개해 보겠습니다.
'열 처녀 비유는 그 핵심을 놓치지 않고 붙잡으면서도 풍유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으니 이제 본문을 풍유적으로 풀어보자. 신랑=재림하실 그리스도, 처녀들=믿는
다는 자들, 더디 옴=재림의 '지연', 혼인잔치=완성된 천국잔치, 문이 닫힘=완성된 천국에
서 제외됨. ..'(129쪽).
'본문 8절에 미련한 처녀들이 "우리 등불이 꺼져 간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미련한 처녀들
이 처음부터 기름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처음에 들고 나온 등 외에 별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알수 있다.'(130쪽).
'...그러면 "기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단프리드(Karl P. Donfried) 교수는 "기름"을
"선행"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했다(The Allegory of the
Ten Virgins(Matt 25:1-13) as a Summary of Matthean Theology, "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974] :415-28)... 단프리드 교수는 ...본문 자체에서 "기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살펴보았으나 본문 자체에서는 아무런 해석의 실마리도 찾지 못했
다고 했다. 제 2 단계로 마태복음 23장과 25장까지의 종말훈화를 살펴 본 결과 종말훈화
의 시작과 끝이 행위를 강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131쪽).
'필자(권성수교수)는 단프리트 교수의 이상의 해석이 정당한 것으로 본다. 본문의
"기름"은 선행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나면 당장 심각한 질문이 제기 된다.
본문에서 결혼잔치에 참석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기름"의 여부에 달려 있는데 "기름"을
선행으로 해석하면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선행에 달려 있는 것이 되지 않는가 하는 질문
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산상 보훈의의 결론과 말세훈화의 결론에서 표면
적으로 드러난 것은 선행이 심판의 기준이라는 것이다'(132-133쪽).
"마태복음이 강조하는 선행은 인본주의적인 선행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서의
선행(3:8)이며, 예수님과 밀착된 관계에서의 선행이다. 그리고 구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맘이 주실 수 있는 것이고(19:26), 천국은 인간의 선행이전에 이미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로서 상속 받는 것이다(25:34). 이렇게 볼 때 인본주의적 행위구원은 마태복음의
사상과는 정면충돌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을 초점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선행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상의 모든 것을 전제한 상태에
서 "열매"로서 선행이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바른 생활이
이렇게 사활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잇는 것이다"(134쪽).
"열처녀 모두가 신랑을 기다리는 자들이었고...겉으로 보기에는 슬기있는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이 잘 구분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지막에는 돌이킬 수 없이 갈라졌다. 오늘날
겉으로 보기엔 주님을 믿는 것 같은 자들 중에도 마지막에 구원에 이르지 못할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주님의 재림이 더디다고 하여 방심하고 선행으로 준비하지 않는 자들은
경성해야 한다"(134쪽).
"인본주의적인 행위구원을 비판하고 '오직 믿음으로' 라는 것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행을 등한히 하기 쉬운 현대에 이 본문의 비유는 방심과 나
태의 잠을 깨우는 기상나팔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너무 늦어!" 라는 말을 조종을
듣기 전에 각성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다."(138쪽).
이상 , '천국은 어떤 나라인가'(권성수, 도서출판 횃불, 1999)에서 인용했습니다.
후기: 저는 행위구원은 배척하더라도 '정적인 믿음'에 더하여 '믿음의 행위'(살전1:3)
가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성경적인 '천국복음'(마24:14)을 증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장로교단 배경을 가진 이단 감별사들로부터 '행위구원'을 가르친다고 배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후 저는 '아 하, 장로교단 신학(개혁신학)에 이 방면의 진리가
결여되어 있구나'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후 권성수 교수나 정훈택 교수 등의
책에서 위와 같이 균형있는 가르침을 발견하고 그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러나 일반 장로교 일선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은 위와 같은 바른 가르침에 대한
선명한 인식이 크게 결여 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이 일을 매우 안타깝게
여깁니다. 개인의 게으름과 순종의 부족 때문이라면 그들 자신들의 책임이지만, 잘못된
가르침이나 균형을 잃은 가르침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가르치는 자들'의 위치에 있는
분들의 책임이 크다 할 것입니다. (목사와 신학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교사들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일을 하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엡4:11-12).
이 진리에 대한 또 다른 방면의 배척은 마 5-7장이나 그외에 마태복음에서 행위를 강조
하는 부분은 이방인에게는 전혀 해당이 없고 오직 유대인만 해당된다고 말함으로 마태
복음의 상당부분을 (마음 속에서) "없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단체는 위
권성수 교수와 같이 말하면 '율법을 지키려 하는 자들'로 간주되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극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