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그러니까 지금처럼 왕래가 활발하지 않았을 때, 모친의 가까운 친척 따님이 중국 본토에서 저희 시골집을 방문했습니다. 며칠 함께 머무는 동안 모친은 그분을 애틋하게 대하셨고, 이 사람 저 사람 안부도 물으며 예전에 두 가족이 가까이 살았던 시절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공산권의 사람을 처음으로 직접 본 것이 더 신기했을 뿐 친척이라는 느낌은 거의 없었습니다. 며칠 전 아침에 아래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의 가족’에서 시선이 멈추었고, 그 후 일주일 내내 이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오! 창조주 하나님, 당신에게 ‘가족’이 있다니요!’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신 당신의 가족이라니요, 주님 이게 무슨 말인가요?’ 묵상할수록 깊고 오묘했고, 그동안 이것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던 많은 것들을 재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나그네도 아니고, 체류자도 아니며,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엡 2:19).
아래 내용은 제가 ‘하나님의 가족’에 대해 기도하며 묵상했던 내용입니다.
1. 하나님의 가족의 범위와 성격: 먼저 하나님의 가족(members of the household of God)이라고 할 때 그것이 ‘누구’ 혹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 단어의 원문은 ‘오이케오스’(3609)로서 신약에서 오직 세 번만 쓰였습니다. 개역 성경은 이것을 ‘가정’(갈 6:10), ‘자기 가족’(딤전 5:18), (하나님의) ‘권속’(眷屬)(엡 2:19)으로 각각 번역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가족 개념을 바로 이해하고자 할 때 다음 세 가지가 약간의 장애가 되었습니다.
1) 이 ‘오이케오스’ 안에 <처소>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과 달리, 신약에서의 하나님 거처는 그분의 자녀들로 건축됩니다(엡 2:22). 따라서 하나님에게는 가족과 거처가 동의어입니다. 2) 또한 한국어에서 ‘권속’은 직계 가정 외에 입주 가정부 등 식솔도 포함합니다. 그러나 위 본문의 전후 문맥에서 하나님의 가족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피로 가까워진 사람들”(13절), 즉 아버지로부터 신성한 생명을 받은 사람만을 가리킵니다. 3) 마지막으로 ‘양자’(養子) 개념입니다. 양자는 친자식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지만 입양아들일 뿐이고 친자식은 아니라는 항간의 가르침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 분에게서 났으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을 형제들이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히 2:11). 위 말씀은 많은 아들인 우리와 맏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같은 근원에서 나왔음을 증언합니다. 따라서 입양아 사상은 예수님께서 독생자(요 1:18)요 또한 많은 형제를 가진 맏아들(롬 8:28)이심을 알 때 씻겨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추구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가족의 범위에 대해 전보다 더 분명해졌습니다. 즉 어떤 교단 소속이든 심지어 가나안 신도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생명으로 내주했으면 모두 같은 식구요 가족입니다(요 1:12, 요일 5:11). 또한 이들은 다 아버지의 직계 자녀들로서 형제자매들일 뿐이고, 영적인 이모, 고모, 삼촌, 아저씨 관계는 결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큰 형님이신 예수님의 동생들입니다. 오, 이 어떠한 가정인지요!
2. 하나님의 가족이 최소한 지켜야 할 한 가지: 19남매 중 한 명인 이탈리아 출신 한 형제님의 가족 이야기를 엮은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형제 자매간에 우애가 매우 좋아 보였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도 역시 열아홉 명의 자녀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늘의 아버지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 포함하여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자녀를 낳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이 많은 자녀에게 무엇을 가장 바라실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저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주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언처럼 기도하셨던 “그들이 모두 하나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21절) 라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가족 구성원들 간의 하나 문제는 현재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많은 분열과 대립이 있어서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참고로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하나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는 것”(요 17:21)입니다. 그리고 이 실체는 이미 이 땅에 그분의 몸으로 출현했습니다(요 14:20, 엡 4:4). 또한 이 한 몸은 지방 단위로 그 안에 거주하는 모든 참된 믿는 이들을 다 포함하는 ‘지역 교회’(local church)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교리에 부합한 태도와 영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돌이킴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 가족의 하나를 위해 제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은 아버지께 열려 있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열려 있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을 비판하는 구성원에게도 그러해야 한다는 다음의 말에 깊은 찔림이 있었습니다 “We must still recognize and receive other Christians as our brothers. … We need to be cautious in how we deal with opposers because most are genuine brothers.”(W.L. Collected Works 1978 Vo. 1, p. 535).
3. 하나님의 가족 구성원의 목표: 그렇다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목표 삼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지상사역 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그 사람이 나의 형제이고, 자매이며, 어머니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50).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은 우리의 가장(家長)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인데, 그것은 아래에서 보듯이 많은 아들들인 우리가 맏아들과 똑같은 형상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함으로써 선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롬 8:28-29).
물질 영역에서나 영적인 세계에서나 어릴 때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철이 들수록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고 그분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이 우주적이고 거대한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이미 충분히 그러하신 맏아들 외에,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 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녀들이 더 많이 나타나기를 아버지는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는 자체가
놀랍고도 기이합니다.
오 아버지! 우리를 이 비밀하고도 축복된
당신의 가족의 일부로 삼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