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만 65세 이상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유엔이 고령 지표를 산출할 때 노인의 기준이고, 한국의 노인 복지법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제가 그 65세가 되었습니다. 믿기도 어렵고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최근에 마라톤 하는 한 형제님과 오랜만에 조깅을 하다가 제 오른쪽 고관절 근육이 예전 같지 않음을 발견했습니다. 어릴 때 먼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 다녔고, 그 무렵 1500미터 달리기 선수도 잠깐 했던 터라, 전에는 걷거나 뛰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이제 제 신체에도 조금씩 변화가 있나 봅니다.
그래도 저는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음식도 맛이 아닌 영양을 생각해서 먹고, 물도 자주 마시고, 잠도 전보다 많이 자고, 예전처럼 아등바등하지 않고, 근력 운동도 꾸준히 할 겁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런 노력의 ‘어떻게’(how)에 해당할 뿐 ‘왜’(why)에 대한 답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침에 묵상한 아래 말씀은 ‘왜’ 오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좀 더 분명한 답을 제게 주었습니다.
내가 육체에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을 위해서는 더 필요한 것입니다.
… 나는 여러분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내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속 남아 있어야 하리라는 것을 압니다(빌 1:24-25).
사실 오래 살면서 가족이나 인류나 국가에 기여한 이들의 사례는 많습니다. 우선 장수하는 부모나 조부모는 그 가정이 축복받은 증거입니다(엡 6:1-3). 또한 백열전구 등 총 1,033개의 발명품을 남긴 에디슨, 칠십 노구로 거란의 침입을 막아 나라를 구한 강감찬 장군도 84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땅에 속한 이유가 아닌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자신이 더 살아야 하는 이유로 들었습니다. 주님은 제게도 오래 살되, 바울처럼 살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래는 이 주제를 기도하고 추구한 결과입니다.
“믿음의 진보”: 우리의 믿음 생활은 우리 안에 계신 주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기초합니다(행 20:32).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성도들의 본이 되는 삶의 모습들입니다. 이 방면에서 어떤 지체는 있으나 없으나 크게 존재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지체는 그가 주님 품에 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 너무 아쉽고 큰 상실감을 느끼게 합니다. 바울은 아마도 그런 존재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위 본문에서 말한 믿음 그리고 믿음의 진보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추구해 보았습니다.
먼저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깁니다(롬 10:17). 성경은 주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시니, 그분을 주목하라고 권합니다(히 12:2). 또한 사도 요한은 믿음을 그분의 이름(인격)을 우리 안에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요 1:12).
따라서 ‘믿음의 진보’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과 그분의 인격을 주목하고 우리 존재 안에 더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영적인 생명의 성장이 곧 믿음의 진보인 셈입니다. 바울 본인이 먼저 이런 삶을 살아 본을 보였습니다(딤전 1:16). 즉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대신에 그리스도를 얻고 더 풍성히 얻는 믿음의 진보를 본인이 경험했기에 이 방면에서 남을 도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의 경험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내용만 붙들지 말고 성경의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야 믿음이 진보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주시라는 말씀에는 바로 아멘을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몸의 머리이심(골 1:18), 우리 안에 내주하심(골 1:27), 만유(모든 것) 이심(3:11), 생명 주는 영이심(고전 15:45), ‘나를 먹으라’ (요 6:57), ‘우리가 그분과 같아지리라’(요일 3:2)라는 말씀 등은 낯설어하고 심지어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따라서 이런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 갈” 때 비로소 믿음이 진보하게 됩니다(벧후 3:21).
“(믿음의) 기쁨”: 이 구절이 영어 성경에는 모두 ‘joy of the faith’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 중에는 <표준 새번역>만 이것을 ‘믿음의 기쁨’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기쁨은 그리스도의 속성 중 하나이니, 믿음이 진보하여 그분으로 충만되면 우리 안에 기쁨이 더 있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런 추구를 통해 한 가지가 제 안에 분명해졌습니다. 참된 믿음은 성장이 잠시 멈출 수는 있지만, 믿음이 후퇴하거나 아예 잃어버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적인 믿음은 우리가 알고 체험하고 영접한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복음도 많이 전하고 능력도 많이 나타내어 대형 교회를 일군 교계 지도자가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그 단체 소속 성도들만 아니라 그의 설교 등을 통해 간접 도움을 받아 온 사람들까지도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전반적인 조망 없이 성경의 어떤 부분만 붙들고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본을 보고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입니다.
오 주님, 우리 안에서 먼저 믿음의 진보를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사는 동안 다른 지체들의 믿음의 진보를 돕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