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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6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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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사만 사천(14만4천)
본론으로 들기 전에.....
[십사만 사천]과 [휴거], [구원], [성령 받는 비결], [왕국],
[인침], [이름부름] 등 그 외 다소를 더 두서없이 써볼까 한다. 이러한 대목들은 문제가 야기될 소지가 많으므로 아무나 가볍게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필자도 어려움이 예상되는바, 독자들에게 몇마디 부탁을 드리는바이다.
본인은 남의 주석이나 또는 누구에게 배우거나 어느 무리에 묶여있지 않고 있다.
딴은 자유함속에서 순전한 마음으로 성령께 간구한 후 성령이 내 영감을 사용하여 말씀을 열어주심대로 기술하는 것이니, 오해가 생기면 지례짐작으로 모 교회를 비방하지 말고, 철저히 나 개인의 문제이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자, 곧 필명; [부르지저]를 상대로 문제 삼기 바란다. 나도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실수도 있으리라 그러니 독자들은 마음을 넓혀 읽어주기 바란다. 그러다보면 퍽 유익을 얻을 것으로도 본다.
때로는 실감을 더하기위해 실례를 무릅쓰고라도 개인의 이름(공인들)과 교단의 명칭도 과감히 부르겠다.
이제 그만 각설하고, 주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부르지져대는 자의 언로로 내려가서 말씀의 성산에 다다라 路程의 里程標를 확고히 정하고 성령강물에 심신을 맡기고 흐름 따라 그곳까지 도달하자.
- 쏟은 향 기름 같은 이름, 주! 예 수 여 ! 나로 인해 향기를 발 하소서 -
먼저 내가 만나본, 자칭 우리 교단이 14만 4천이라 하는 무리들의 실체를 비교분석 해보자. 그러면 이해가 빠르고 또 그러한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며 더 나아가 바른 간증이 될 것이다.
우리주변엔 여호와의 증인들이 손쉽게 닥아 오며, 그 도는 한해가 다르다. 쉽게 다가온 여호와의증인의 장로 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장로, 그리고신천지(증거장막성전)교회의 장로, 이 세 부류의 사람들과 오랜 세월을 두고 변론을 해보았다.
그들, 14만4천의 선택방법은, 자기교단에 입단의 순서로 결정 된다.
이 셋 중 안식일 교가 제일먼저 창단되었다. 14만4천이 차면 主강림날로 선포 했을 터이나 강림은 무산되고 그 수는 넘쳐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14만4천은 상징의 수다. 라고 구차한 변명으로 신도들 앞에서 위기를 모면했다. 이들의 오발탄이 신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여호와증인들은 안식일교의 실수를 발판으로 한수 위답게 그 수가 차고도 강림이 없으니까 남은 자들을 흰무리라고 자부심을 불어넣어주어 위기를 모면했다.
신천지에서는, 영계의 14만4천과 육계의 14만4천으로 분류하고 영계의 14만4천은 신천지가 설립 전까지로 다 차 있고, 육계(이만희로부터시작)는 초기단계로써 지금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 수가 다 차면, 영계의 14만4천과 육계의 14만4천이 혼인잔치가 전개된다며 희괴 망측한 궤론 을 늘어놓는다.
성경에 나오는 14만4천의 바탕은 홑 교단이 아닌 12지파로써 역사가 반만년이 넘으며 인수는 전혀 헤아릴 수 없는 가운데에서 기인됐다.
그다음, 이 세 교단들의 14만4천의 이마에는 예수의 이름은 없고 [G.화잇] [찰스러셀].[이만희] 이렇게 써있는 듯싶다.
여호와의증인들은 예수를, “피조물,창조물, 천사장”이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면 누구의 이름으로?, (행4;12).....천하에 구원의 이름 여호와?..... 당신들은 (행4;12)를 그렇게 읽는다?
자칭 조직신학 운운하나 완전봉사다.
신천지 사람들의 교리는, “예수께서 재림 시 구름을 타고 강림하는 것이 아니며, 예수이름으로 구원받을 때는 이미 지났다” 라고, 가죽 나발을 불어댄다. 이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이 무리들은 그 교주의 이름으로이다, 참 한심하고, 영~ 구제불능이다.
끝으로, 안식일교단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은하나 율법을 고수하므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들이며(행15;10참조) 옛 계명을 포함한 율법의 댓 가로 십자가상에서 창과 못을 받으셨거늘, 헐어 놓은 성전과 율법을 다시 세워서 말세에 주님을 재차 난도질을 하는 자들이다. 주님은 성전에서 율법을 좆아 돌아가셨다. 왜! 성전일까 그분은 제물이기 때문이다. (골고다의 사건은 성전의 주인공들의 행위로 말미암았다.)
그러나 안식일교도들은 우리가 크게 조심하자. 우리의 주권자요 심판자이신 예수가 판단 형벌하실 일이지 우리가 저주할 대상이 아니다.
바울도 주님을 십자가에 올려놓은 제사장과 바리세인들을 “부형들아, 형제들아”라고 칭하며 받아드렸는데 하물며 낸들 이랴. 성경말씀 중에 여기도 참조하자(롬14;1~) 다만 그들의 행위에 가담치 말고, 우리들의 그림자로, 지나간 추억으로 간주하고 또한 거울로 삼자. 뉜들 죽음의 바다(사망의법)에서 생명(은혜의법)줄 잡고 건짐 받지 아니 한자 어디 있으랴. 율법을 만져보지 못 한자는 눈물 없는 빵.... 론하는 자와 같다. 그런즉, 율법 없이 은혜의 진가를 어찌얄랴.
ㅡ“주~! 예 수 여~! 안식일교도들의 형제를 가슴깊이 사랑 합니다. 눈물로 사랑합니다.”ㅡ
증인들과 신천지는 형제로써 권장할 맘은 없다. 각자가 알아서 하자.
다음으로는 그들(14만4천)의 본질을 살펴보자. 그들 속에는 상당수의 비 양심가도 있고 간음한자, 또 배도 자와 기타 잡티들도 포함되어있다.
선택의 방법도 본질도 비 성서적이기 때문에 다만 코미디언적14만4천에 불과할 뿐이다.
계시록에는 눈에 쉽게 띄는 세 무리가 있는데, 한 무리는 24보좌에 12사도와 12지파장의 자리로써 이를 [24장로]의 보좌라 하며, 그다음은 사람이 가히 셀 수없는 환란을 통과한 [흰무리] 들이며 마지막으로 지금 거론하고자하는 [14만4천]이다.
누구나 계시록에 들어서면 그 시끄럽고 지저분한 목사타령이 멈추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아니라면 물어보자!, 14만 4천은 목사들로 구성되는 것인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장로도 목사도 교주도 다 형제다. (마23;8) 이제 부터는 사람을 자랑하지말자(고전3;21) 제발 사람의 종노릇도 끝내자.(고전7;23)
지금부터 내 안에 토착된 사람들을 몰아내고 오직 主만 모시고 일대일로 성경만 주시하자.
이 14만4천은 하나님이 딱히 정해 세어놓은 수, 즉,定數, 14만4천이다. 이 수는 더도 들도 아니어야한다.
그러면 이제 이들이 어디서 산출 되는가? 계시록을 살펴보자.
* (계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대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제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 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 각 저희에게 흰 두르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윗글을 풀어 줄이면, * 세상 심판이 더딤은, 살육(순교자)당한자의 수가 차지 않아서 * 라고 이렇게 읽어낼 수 있다.
다시 한 번 주님의 명령을 청종하자
ㅡ*自己처럼 죽임(순교)을 받아 그 數가 차기까지 하라*ㅡ 그렇다 그 수를 우리가 채워야 된다. 세상만사 염증의 침대에서 걱정을 베개 삼아 종말만 학수고대하지 말고 우리는 이 명령 앞에 머물러 시간을 드리고 간증을 준비하며 그 수의 반열로 진입하자. 그러면 고대하던 바, 新天地가 전개되며 철장 권세가 손에 모름지기 쥐어있으리라.
생각하라! 우리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자녀)들을 사단의 손에 맡겨서 한도 끝도 없이 죽이고 또 죽이고 또 죽이기만 하시겠는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하나님이 순교의 숫자를 몇으로 정하셨을까?...... 이제 그 비밀스런 숫자의 답은 독자의 목으로 돌린다.
여기, 필자의 서비스로 독자들에게 열린(공개) 힌트를 하나드린다.
{14만4천이 나오는 계시록14장 13절속에는 죽음을 獎勵 하는 문장이 숨어있다.}
말씀의 권장대로 순교하는 자는 흰무리 일까, 14만4천일까.
혹이 말하기를 침례파 사람들은 천주교도들로1200여년 걸쳐 약 5,000만 명이 순교를 당했는데 왜 심판(종말)이 없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14만4천을 넘어 5천만명 이상이 죽었다. 그러면, 부르지저의 성경해독에 이상이 있을까 아니면 침례파들이 순교대상을 잘못선택 했을까.
여보게, 부르지저 형제여! 예수만 자~알 믿으면 되지 않겠나?
글쎄 어떻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일까, 어느 派로 가야 되는지 또 몇 년을 다녀야 될 것이며 직분은 무슨 직분까지 받아야 되며 헌금은 일생동안 1억, 2억 아니면10억? 내야 잘 믿는 것인지, 참 막연한 답변이다. 침례를 위해? 아니면, 집총거부? 십일조? 안식일? 아니면 무엇?........
독자들이여!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무엇을 위하여 생명을 받쳤을까? 무엇을 위해 순교를 하셨을까?
이제 남은 이 문제만 풀어낸다면 신앙의 방황은 끝난다.
이 대목이 작금의 관건이요 신앙의 핵심이다. 그런고로 또한 사탄의 공격요지다.
필자는 약속 한다. 순교의 대상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신앙의 푯대가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기꺼이 진상해 바치겠다. 앞서 보여준 해독 방법과 마찬가지로 쉽고 확실하게 보여드리겠다.
끝으로 졸필의 언로를 따라 여기까지 내려오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필자의 오독과 오. 탈자 그리고 매끄럽지 못 한 문장들을 믿음 안에서 해량에 맡기며 거룩하신 주, 예수의 이름으로 평안을 빕니다. 그럼, 새 힘이 솟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