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57회 - 그곳을 지성소라고 불렀습니다
에세이
청지기 , 2023-10-20 , 조회수 (649) , 추천 (0) , 스크랩 (0)


오늘도 2년 1독 성경 읽기 진도를 따라 히브리서 9장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3절과 4절, 특히 4절 말씀을 중심으로 먹고 기도했습니다.

 

 

“둘째 휘장 뒤…그곳을 지성소라고 불렀습니다. 지성소는 금향단과 전체를 금으로 입힌 언약궤를 가지고 있었고,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번 읽고 기도하지만, 처음엔 본문 안의 단어들이 마치 설은 밥을 입 안에 넣은 것처럼 왜글거리기만 했습니다. 짧은 시간을 들여서도 성경 안의 어떤 말씀이든 즉시 맛있게 먹고 소화 할 수 있게 되기를 얼마나 사모 하는지요!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건대, 오늘 읽은 위와 같은 말씀은 체험적으로 소화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지체들과 함께 위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먹을 때, 처음에는 지성소 안에 금향단과 언약궤가 있다는 정보가 우리 안에 각인되고, 그 다음에는 이어서 그 언약궤 안의 세 가지 항목들인 만나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 언약의 돌판이 담겨있다는 객관적인 정보가 마음에 새겨집니다.

 

그럴 즈음 우리 중 한 지체가 금향단의 향불을 피우기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현재 미국 일리노이 주 어배너 섐페인에서 있는 National College Training을 위한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오 주님, 이 시간에 그곳 하늘을 맑게 하소서. 이런 특별한 집회를 통해 그들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경륜의 이상을 새겨 주소서. 그렇습니다. 대적이 젊은 그들을 사로잡기 전에 이 기회를 사용하여 당신이 그들의 장래를 사로잡으소서. 악한 자를 묶습니다. 빛 비춰 주소서! 그곳에 33개 나라에 소재한 325개 대학 캠퍼스에서 온 1300 명의 대학생들을 마음껏 축복해 주소서. 그들이 인생의 큰 전환점을 갖게 해 주소서. 이 시대를 전환하는 젊은이들이 되게 하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신약의 성도들인 우리에게 지성소에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만 속죄일에나 들어가던 지성소를 신약 성도들인 우리는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들어 갈수 있게 된 것이 어떠한 은혜와 긍휼인지요.

 

위 본문은 금향단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성소에 있는가 아니면 위의 말씀처럼 지성소에 있는가 하는 난해한 주제를 포함하여, 지성소 안의 언약궤, 혹은 그 언약궤 안에 있는 세 가지 항목들을 우리가 어떻게 적용하고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깊은 진리 항목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그러한 무거운 비중이 있는 주제들에 대한 인상과 누림보다는 그냥 ‘지성소’라는 단어 자체가 누려졌습니다. 지성소이 어떠한 단어인지요!

 

물론 위 본문에서 말하는 지성소라고 불리는 ‘그곳’은 바깥마당을 지나고 성소를 지나서 성막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둘째 휘장 뒤 공간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막 안이든 성전 안이든, 그 자체가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지성소라고 불릴 수 있는 곳 역시 이 땅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것들이 지금 있다 하더라도 그것, 즉 “첫째 장막은 현시대의 모형”(히9:9), 내지는 “참된 것의 모형”, 즉 “손으로 만든 지성소”일 뿐입니다(24절).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 ‘지성소’ 개념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성전 개념이 땅에 있는 물질적인 건축물에서 하나님을 모신 인격체로 전환 된 후, 성전은 “주님 자신”(요2:21) 그리고 그분의 몸 된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습니다(고전3:16). (예전에 어떤 분들은 예배당 강대상 위 보라색 휘장이 쳐진 부분을 감히 올라갈 수 없는 어떤 신성한 공간으로 생각했지만, 이 역시 ‘성전’ 개념의 시대적인 전환을 알지 못한 무지에서 온 불필요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각처에서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향하여,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고전3:16) 라고 질문한 후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은 바로 그 성전이기 때문입니다”(17절)라고 말합니다. 그는 또한 “그러므로 형제님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히10:19)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믿는 사람 자체가 성전이라면, 지성소 또한 우리 믿는 이들 존재 안의 어떤 부분이어야 함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거처요임재가 있는 곳임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으로 내주하시는 그분의 거처인 우리의 거듭난 영(3:6)이 바로 지성소(또는 지성소와 연결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경륜』(위트니스 리, 한국복음서원, 1987) 43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히브리서도 역시 지성소를 말하고 있다. 수년 동안 나는 지성소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주님께서는 지성소가 바로 우리의 영을 비유하는 것임을 깨닫도록 도와주셨다. 오늘 우리 사람의 영이 지성소이다. 성전의 세 부분은 사람의 세 부분, 즉 몸과 혼과 영과 일치한다. 성전의 가장 속 부분인 지성소는 바로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인 사람의 영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예표인 법궤가 지성소에 있는 것같이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 영 안에 계신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은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는 지성소이다.”

 

 

예전에 신약의 믿는 이들이 이미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히12:22)에 (이미) 이르렀다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그곳이 바로 우리의 거듭난 영(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 이뤄진)임을 깨닫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즉 최소한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서는 새 예루살렘의 실재가 성취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는 계시록 21-22장에서 묘사된 새 예루살렘의 각 항목들인, 하나님 보좌와 생명강과 생명나무와 정금 길과 진주 문, 열두 기초석이 있을 뿐 아니라 내소, 즉 지성소도 있습니다(계21:22).

 

오, 우리는 오늘날 이 놀라운 비밀들을 입으로는 말하지만 체험적으로 다 알고 누리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리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깊어감에 비례하여 우리의 체험도 깊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주 예수님, 
우리를 위하여 지성소에 나아갈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영으로 돌이킬 때마다 이 실재를 누림을 간증합니다.

오 주님, 지성소 안의 귀한 항목들을 더 체험하고 누릴 수 있도록

우리의 영적 인식과 분량을 날마다 넓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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