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를 가리키는 용어 중에 ‘배필‘(配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배필은 ‘부부’ 혹은 ‘짝이 되는 아내나 남편’을 뜻합니다. 그런데 요즘 신세대들은 부부가 서로를 ‘자기야!’라고 부르거나 심지어 아내가 연상의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연애할 때의 호칭이 결혼 후에도 이어진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배필이라는 말은 간혹 문어체 문장에서나 발견되고, 평소에는 듣기 어려워진 용어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아침에 진도를 따라 성경을 읽어나가던 중에 묵상했던 아래 말씀은, 오늘따라 제게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먼저는 배필이라는 말이 그렇고 ‘도울’(helper)이라는 단어는 더욱 새로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에게 도울 배필을 만들어 주겠다”(창 2:18).
참고로 배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크네그도(우)’(5048)는 (어울리는) ‘맞은편 짝’(his parallel)이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은 ‘just right, fit, suitable, meet, complement, corresponding, like, counterpart’로 각각 번역했습니다. <사람인 아담과 들짐승, 새들, 육축>(창 2:19-20)은 안 어울리는 짝입니다. 그러나 <사람인 아담과 하와> 혹은 <남자와 여자>(창 2:23)는 그야말로 ‘둘이 잘 어울려요’에 해당하는 배필입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둘이 잘 어울려요!’ 소리를 들어야 할 부부 세 쌍이 있는데, 여기의 아담과 하와 외에, 신약 서신서의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계시록의 ‘그 영과 신부’(the Spirit and the bride)입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위 본문에서 깊이 누린 부분은 ‘돕는’(에자르, ezer-5828)이라는 말입니다. 창세기의 아담이 “오실 분” 곧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말씀(롬 5:14)이 문득 생각나면서 관련하여 위 세 쌍의 부부 사이에서 ‘돕는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알도록 주님께 간절히 구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예표): 지난 저희 소그룹에서, 하와가 아담을 어떤 면에서 도왔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더니, 한 자매님이 자손 낳아 준 것이 도운 거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고, 또한 아담이 ‘가죽옷 사건’(창 3:21)을 통해 어린양의 구속을 미리 경험하게 한 것도 하와의 도움(?)이라면 도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이 예표의 단계에서 ‘돕는’(배필)이라는 말의 의미는 여전히 제게 희미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실재): 이 주제에 대해 제 안에 밝은 빛이 비취게 된 것은, “아담은 오실 분의 표상(예표)”(롬 5:14)이라는 말씀, 그리고 이 ‘돕는’이라는 말을 인류의 창조 목적(창 1:26)과 연관지어 워치만 니가 설명한 아래 내용을 읽고 난 후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창조하신 목적은 바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배필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혼자서는 절반에 불과하며 반드시 그리스도의 또 다른 절반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곧 교회이다. …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것을 원하셨을 뿐 아니라, 교회가 통치하기를 원하신다. … 만일 교회가 그리스도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전쟁에서도 배필을 필요로 하시며 영광 안에서도 배필을 필요로 하신다. …그리스도가 한 배필을 갖는 이것이 곧 하나님의 갈망이다’(워치만니, 영광스러운 교회, 45-48쪽).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우리의 구속주요 우리의 남편이시라고 말씀합니다(사 54:5). 사도 바울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죽고 부활하신 이 우주 안에 유일한 참 남편을 염두에 두고, “내가 여러분을 한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순수한 한 처녀로 드리려고 약혼시켰다”(고후 11:2)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남편이시고, 교회는 그분의 아내라는 이러한 사실은 에베소서 5장에서 육신의 부부를 말하는 문맥 속에 절묘하게 녹아 있습니다(22-33절).
아침에 아래와 같은 관련 말씀들을 함께 묵상하면서, 우리의 남편이신 그분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두 가지 목적인, 1) 하나님을 표현하고(영광 돌리고), 2) 대적을 처리하는 임무를 완벽하게 성취하셨구나 라는 깊은 깨달음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아버지)을 표현: 그분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사람의 아들(人者) 위치에 서서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아버지의 인격을 살고 또 표현하셨습니다. 즉 그분은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살았다”(요 6:57상)고 하셨고, “내가 아버지의 이름(인격)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다”(요 17:26)고 고백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시든 아들도 그와 같이 하셨고”(요 5:19), 그분은 “아버지께 듣는 대로 심판하셨고”, 자기 뜻은 꺾고 “보내신 아버지의 뜻만을 구하셨고”(30절), 자기 말이 없고 “아버지의 말만을 하셨고”(요 14:24),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만을 구하셨습니다”(요 7:18).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을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요 14:9).
따라서 이렇게 훌륭한 남편을 돕는 길은 아내 된 우리도 그분처럼 우리의 존재와 삶을 통해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인격과 성품을 살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편을 돕는 자(helper)의 한 방면입니다.
-대적을 처리: 우리의 남편이신 그리스도는 “마귀에서 나온 일을 제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요일 3:8). 그분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고, 십자가에서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셨습니다”(히 2:14). 그분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세상 임금인 마귀가 그분 안에 어떠한 입지도 갖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요 14:30). 이제 그분은 아내 된 우리 역시, 사탄을 속히 우리의 발아래 짓밟을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롬 16:20).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 받침대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히 1:13)는 말씀은 ”한 몸”(창 2:24, 엡 5:31-32)의 반쪽인 우리가 남편을 위해 무엇을 도와야 할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이 돈을 못 벌어 오시거나, 몸이 아파서 누워계시면 배필인 우리가 도울 일이 혹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다른 반쪽인 우리의 도움을 참으로 필요로 하시는 방면은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분처럼 하나님을 표현하고 마귀를 짓밟는 존재로 날마다 변화되는 것입니다(롬 12:2, 고후 3:18). 그럴 때 우리는 흠과 주름과 점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 즉 참 남편에게 어울리는 배필이 될 것입니다(엡 5:27). 육신의 부부는 이러한 참 부부(그리스도와 교회)의 축소판으로 살 때 비로소 결혼 생활의 참된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영과 신부(성취): 계시록 22장 17절은 “그 영과 신부께서 말씀하십니다. 오십시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그 영과 신부는 위 서신서의 그리스도와 교회가 최종 완성된 모습입니다.
오 우리의 참 남편이신 주님,
당신의 아내 된 우리가 모두
당신을 참되게 “돕는 자”로 발견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