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이들이 교회가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쓰던 당시(주후 67년경)의 교회도 외적인 상태는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초기 교회의 기록인 사도행전 5장에서 묘사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말 사건> 역시 교회의 소극적인 방면입니다(1-11절). 이렇듯 교회 건축은 옛사람과 새사람, 혹은 음부의 문들과 그리스도의 충만이 대립된 싸움의 최전방입니다.
아침에 사도 바울이 교회 하락의 시기에 대처하는 여덟 가지 항목을 제시한 디모데후서 1장을 읽으면서 많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 당시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 때문에 두 번째로 감옥에 갇혔고, 언제 순교할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또한 배역에 주된 역할을 했을 “부겔로와 허모게네”를 포함한 “소아시아의 모든 사람(성도들)”이 바울의 신약 사역을 버린(딤후1:15)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는 아무리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받은 종에게 직접 목양을 받은 디모데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두 번째 서신을 통하여 디모데에게 말한 다음 항목들은 신약의 사역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마지막 시대에 교회의 하락에 맞서 설 수 있는 귀한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양심: “내가 밤낮으로 간구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면서, 조상 때부터 순수한 양심으로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딤후1:3). 그렇습니다. 이 하락의 시기에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려면 “어떠한 혼합으로부터도 분별된” 양심,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하여 항상 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간직하도록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행24:16, 딤전3:9). 양심에 문제가 있으면 믿음도 새어나가게 됩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 “나는 그대 안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5절). 이 대목을 읽으면서 그냥 믿음이 아니라 왜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했는지를 잠시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가끔 참 믿음이 아닌 망상에 빠지거나 자신을 “믿음의 분량”(롬12:3)보다 높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믿음의 창시자이신 주 예수님”(히12:2)을 주목한 결과로 얻어진 ‘거짓이 없는 믿음’인지는 환경을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검증될 것입니다.
-신성한 은사: “나의 안수를 통하여 그대 안에 있게 된 하나님의 은사를 부채질하여 불타오르게 하십시오”(6절). 여기서의 은사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디모데후서 1:6, 4:11, 13, 16의 문맥에 따라 ‘가르치는 은사’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딤후4:14 각주 5 참조). 참고로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몸 안에서 우리가 가진 은사들의 예로서, ‘신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유하는 일’, ‘나누어 주는 일’, ‘인도함’ 심지어 ‘긍휼을 베푸는 일’을 말합니다(6-8절). 이 모두 다 몸을 건축하는데 유용한 신성한 은사들입니다.
-강한 영: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겁내는 영이 아니라 능력의 영과 사랑의 영과 맑은 생각(sobermindedness)의 영이기 때문입니다”(7절).
-영원한 은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름으로 부르신 것은 …그분 자신의 목적과 은혜에 따른 것입니다. 그 은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9절).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구원받을 때 체험적으로 만난 그 은혜가 사실은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썩지 않는 생명: “그분은 죽음을 없애 버리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밝히셨습니다(10절). 사실 교회 하락의 본질은 사망과 그 죽음의 부산물들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생명 즉 “우리 안에 신성한 요소로 분배되신 하나님 자신”뿐입니다. 이 생명이 주님 자신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고”(행2:24), 우리 안에 있는 “죽을 것도 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될 것”입니다(고후5:4).
-건강한 말씀: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강한 말씀의 본보기를 붙잡으십시오”(13절). 여기서 쓰인 ‘건강한’(휘기아이노, 5198)은 ‘바른 말’(개역성경) 혹은 ‘건전한(to be sound) 말씀’(킹제임스)으로도 번역되었습니다. 같은 단어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눅5:31), 혹은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눅15:27) 등으로도 쓰였기에 회복역은 위에서 보듯이 ‘건강한’(to be healthy)으로 번역했습니다.
그 당시 반대자들은 “다른 가르침”(딤전1:3)으로 죽음과 독소의 씨앗을 뿌려 마침내 사람들을 하락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중심 목적을 이루도록 ‘생명 공급이 되는 건강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양육하거나 치료했습니다(딤후4:3, 딛1:9, 2:1, 딤전6:3, 딤후 1:13, 딛2:8, 1:13, 2:2). 그러므로 하락의 시기에 우리가 어떤 가르침을 붙들어야 할지는 너무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내주하는 영: “그대에게 맡긴 아름다운 것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지키십시오”(14절). 이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준수하려면 우리 영 안에 거하시는 성령(롬8:16)께서 우리 존재를 주관하시고 흘러나오실 수 있도록 우리 편에서의 동역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에도 적지 않은 분들이 소위 교회개혁을 외치며 이것저것을 제안하고 또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저 자신 또한 우리가 본 하늘에 속한 이상을 이 땅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의견이 안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위 여덟 개 항목들을 깊이 누리면서 우리가 늘상 말해 왔던 것처럼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존재’가 문제라는 점이 마음에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아도 ‘이렇게 해야 한다’ 혹은 ‘저것은 이렇게 고쳐야 한다’고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여 외칠 때마다 성도들은 늘 잡음과 나뉨과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위 여덟 항목은 우리 각 사람의 존재 자체를 돌아보게 합니다. 현재 나의 상태는 위 말씀들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주님의 크신 긍휼이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필요합니다.
오 주님, 우리의 양심이 순수하게 보존되게 하소서.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간직하게 도우소서.
당신으로부터 온 ’은사’와 ‘은혜’와 ‘생명’과 ‘말씀’과 ‘강한 영’과
‘내주하시는 영’을 더 관심하고, 주관적으로 체험하며,
더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남은 날들을 새롭게 헌신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