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한 형제님이 하신 신언은 성도들을 미소 짓게 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대강 이런 내용입니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순대를 싫어했답니다. 돼지의 내장을 쓰는 것도 그렇고, 또 그 안에 뭔가를 넣는 과정도 그래서 순대 그러면 혐오 식품이라는 관념이 오랫동안 있었답니다. 따라서 본인은 당연히 순대를 안 먹었고, 순대 먹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는 ‘수준 낮은 사람’이라고 정죄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학생(지금 형제님의 아내가 된)을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만난 첫날, ‘자신은 순대를 좋아하는데, 순대 먹으러 가지 않겠느냐’라고 했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반전이 있습니다. 그런 제안에 대한 형제님의 반응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 나도 순대 좋아하는데.”였답니다. 신언의 요지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오랜 관념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의 고정관념은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랜 삶의 경험을 통해 얻어졌거나 아래와 같이 성경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관념은 특히 그렇습니다.
그 안에는 땅의 온갖 네 발 가진 짐승들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이 있었다. … 베드로는 말하였다.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되고 더러운 것은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마라”(행 10:12-14).
위 본문은 주로 유대인들로 이뤄진 초기 신약 교회가 이탈리아인 고넬료의 가정, 즉 이방인들에게로 확산되려는 분기점을 배경으로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보내심을 받은 사도였지만,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구약의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관념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모두 포함된 한 몸을 얻으시려는 주님의 계획과 움직이심에 방해가 되었습니다(엡 2:1-16). 따라서 주님은 베드로를 보내어 고넬료 가정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전에, ‘큰 보자기 같은 그릇” 환상을 통해 그의 관념을 씻어내셔야 했습니다(행 10:11).
최근에 우연히 어떤 유튜브를 보다가 함께 뜬 ‘오늘의 신학공부’라는 유튜브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는 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계에서 비교적 보수 교단에 속한 목회자 세 분이 갈라디아서 강해서 비슷한 책을 낸 모양입니다. 그 저자 중 한 분은 책 내용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십일조나 주일 성수도 그것이 율법이 되면, 갈라디아서 1장 8-9절이 말하는 “다른 복음”에 해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부활하신 아들 하나님 자신과 그분께서 하신 일이니, 그 외의 어떤 것도 지나치게 강조하면 당연히 다른 복음입니다. 그러나 거의 성역처럼 간주되어 온 이런 주제를 “다른 복음”과 연관 짓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데, 이분은 참 주님을 사랑하는 분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의 지난 믿음 생활을 돌아볼 때, 저의 고정관념이 씻어지는 만큼 신앙생활에서 전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 우선 교회가 예배당이 아니라 모든 거듭난 사람들이라는 관념의 전환이 그 한 예입니다. 그 후로는 저는 실수로라도 어떤 건물을 가리켜 '교회'라고 부르거나, 예배당에 가는 것을 '교회 간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2) 주일 예배는 목사님 설교를 통해 은혜받으러 가는 시간에서 기도하며 준비해서 2-3분 정도 신언의 말씀을 하러 가는 시간으로 바뀐 것도 제 인생에서 큰 사건이었습니다(고전 14:4, 31).
3) 신학 한 이들만 성직자가 아니라 거듭난 이들은 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는 관념의 전환도 제 신앙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계 1:6). 어렵게 신학 공부하시고 주의 일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 목회자들을 여전히 존중하지만, 주눅이 들거나 특별히 높이지 않을 수 있었고, 다른 목회자분들과 편안한 가운데 서로가 누린 주님을 교제해 왔습니다. 4) 또한 무엇보다 큰 전환은 주 예수님이 부활 승천 후에 저 하늘에만 계신다는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물론 몸의 머리로서는 그러하시지만, 주님은 몸 안의 생명으로서 지금 모든 지체들 안에, 특별히 그들의 거듭난 영 안에 내주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골 3:4, 요 3:6). 이 때로부터 비로소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말씀이 실감나게 이해가 되었고, 또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5) 신앙생활의 목표도 죽어서 천국 가는 것에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을 더 얻고 누려서 주님의 몸을 건축하는 것으로 관념의 전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런 내용들을 말하고 있는 신약의 서신서 내용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6) 최근에는 가족에 대한 저의 관념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너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적용할 때, ‘너 자신’ 안에 (나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던) 아내와 딸까지 포함시켰었습니다. 이것은 저를 소위 주님의 일을 할 때, 자신은 물론 가족 구성원까지 ‘희생’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가정에 어려움을 가져왔고, 가족 구성원들이 저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가족이지만 저의 소유물이 아니고, 다 주님의 몸의 귀한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안에 살고 계시는 주님을 존중하여 억지로 무엇을 강요하지 않고, 분량만큼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는 가정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이처럼 한 면으로는 위와 같이 제 안에 전진이 있었지만, 주님은 제 안에서 지금 보다 더 확대되시고 전진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요즘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오 주님, 저의 생각을 더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제 안에 당신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과 높아진 것들,
각종 사상이 당신에게 굴복되게 하소서!
당신의 균형잡히신 그 인격이 저의 인격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