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율법과 우리가 추구하는 의에 대하여
성경진리토론방
, 2004-09-14 , 조회수 (311) , 추천 (0) , 스크랩 (0)
아무도 답변을 안 하심으로 제가 또 조금 말할까 합니다.

원칙적인 면에서 이성희 형제님의 기본인식이 옳고 합당합니다.
그 연장선 상에서 새율법과 우리가 추구하는 의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1. 새율법

마5:17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려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려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하려 함이로라'고 말합니다.
위트니스 리 형제님은 위 말씀의 끝 부분인 '(율법을) 완전케 하
리라'에 대한 신약 회복역 각주에서 이 말씀이 세 가지 방면으로
성취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1) 주님은 적극적인 방면에서 몸소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2) 또한 소극적인 방면에서 그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3) 마지막으로 주님은 옛율법에 더한
새율법을 주심으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본문에서 엣율법 인용 후 이어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
노니'라고 추가하여 말씀하신 부분들 (마5:22,28,32,34,39,44절)
이 바로 '새율법'입니다. 복음메아리님을 위하여 회복역 각주
원문(영어)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http://online.recoveryversion.org/FootNotes.asp?FNtsID=163

2. 믿는이가 추구하는 의

(복음메아리님 주장) "2000년 겨울 훈련집회 마태복음 결정
연구 p99를 읽어 보세요. 기가 막힙니다. "우리는 천국을 위해
추구하는 의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의를 추구한다면 천국은 우리의 것이 된다." 이게
복음(福音, good news, Gospel)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義는 너무나 초라하군요... "

간단히 설명하자면 위 내용에서 위트니스 리가 말한 '(추구
하는)의'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이것을 믿는 자에게
영 단번에 주신 (객관적인)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추구하고 말 것이 없이 그냥 주님이 이미 이루신 사실을 마음에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객관적인 의>에
더하여 우리가 추구함으로 얻는 <주관적인 의>를 말하는 곳이
있습니다.

즉 마5:6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합니다. 만일 이것이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영 단번에 이루신
객관적인 의를 가리킨다면 '주리고 목마를'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이 본문에서 말하는
의는 그것이 아니고 거듭난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살아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표현을 가리킵니다. 바울 말대로 설명하자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의 삶의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5:10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 20절에서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구절들과 함께 공통적으로 '천국'을 소유하는(들어가는) 조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비록 십자가의 구속을 통한 의롭게 됨을 믿고 거듭났다 해도
성령을 좇아 행하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은
그의 삶이 불의한 것이고 영적 사망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4:23은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죄는 불법이요 불의임은 물론입니다.

요약해 말한다면, 복음메아리님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영 단번에
이루신 의'(객관적인 의)를 말씀하신 것이고 위트니스 리는 거듭
남 이후 일상생활 중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의이신 그리스도
(고전1:30)를 살아 표현하는 의(주관적인 의)를 말한 것입니다.
의에 대한 이 두 방면은 모두 성경에 있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
로 어느 한 쪽만을 붙들고 다른 방면을 부인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메아리 님은 마5:6,10,20 본문의 의미를 다시 음미해 보시기를
권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