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성경을 대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었습니다. 어떤 선입관을 갖고 읽거나, 특정 교리의 틀 속에서 말씀을 대하거나, ‘이 말씀 나는 알아’라는 생각으로 읽으면 말씀을 바로 접하는데 그런 것들이 너울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에 디모데전서 1장 1절을 처음 읽었을 때 제 안에 위 세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즉시 돌이켜 기도하는 마음으로 반복해서 이 말씀을 읽었을 때, 이 한 구절 안에 하나님의 경륜의 핵심진리가 두 큰 기둥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아래 본문 안의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울은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God as our Savior) : 솔직히 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는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이라는 부분이 목에 가시처럼 턱하고 걸렸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우리 구주’ 다음에는 ‘하나님’이 아닌 ‘예수님’이 와야 했습니다. 여기서의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말하는가 싶었지만, 영어 성경을 보면, ‘그리고’(and) ‘그리스도 예수님’(Christ Jesus)이 바로 이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순간 잠시 머릿속이 헝클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논리적인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오 주님, 당신께 깊이 돌이킵니다. 제 안에 있는 수건을 벗겨주소서.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의 말씀을 대하도록 도우소서. 오 주님, 우리 ‘구주 하나님’(God our Savior)이 누구이신지요? 빛 비추사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관주(reference)를 보니 ‘구주 하나님’이 나온 다른 구절들이 아래와 같이 제법 많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며…(딤전2:3)./
우리의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 …. 그분은 … 믿는 사람들의 구주이십니다(딤전4:10)./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나에게 맡기신 복음 선포를 통하여(딛1:3)./
모든 일에서 우리 구주 하나님의 가르침을 빛내게 하십시오(딛2:10)./
그러나 우리 구주 하나님은 그분의 인자와 사람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셔서(딛3:4)./
곧 우리의 구주이신 유일하신 하나님께 …
영광과 위엄과 권능과 권위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유25).
오 주님, 위 여러 구절에서 ‘구주 하나님’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지요? “우리의 구주이신 유일하신 하나님” 등을 포함한 전후 문맥을 볼 때, 위 구절들에서 쓰인 ‘하나님’(God)이 꼭 ‘성부’ 혹은 ‘성자’만을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통 ‘하나님’이라고 할 때 생각하는 것처럼, 여기서의 하나님은 그냥 ‘삼위 전체’(혹은 삼일 하나님)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문맥에 어울립니다. 다음의 디도서 2장 10절 신약성경 회복역 각주도 이런 이해와 같습니다.
우리 구주는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2장 13절에서 지적한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체현되신 삼일 하나님이시다.
…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변화된 인격을 나타낼 때,
우리 구주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름답게 되고 빛나게 될 수 있다(각주2).
참고로 성경에서 구원은 1) 우리의 죄들의 용서와, 2) 사람의 영의 거듭남과, 3) 혼의 변화와, 4) 몸의 구속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구원을 이루시는 위 본문의 ‘우리의 구주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체현되신 삼일 하나님’으로 정의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러한 분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셨고(요19:30, 엡1:7),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셨고(요3:6), 우리의 마음 안에까지 그분의 거처를 확대하고자 하시며(성화, 혼의 구원)(엡3:17, 벧전1:9), 우리의 죽을 몸까지도 그분의 부활체와 같이 죽지 않을 몸으로 변형시키시길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몸의 구속, 롬8:11, 23, 빌3:21, 눅24:26, 롬6:9). 오! 이같이 큰 구원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묵상이 이 대목까지 이를 때 문득,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라는 구약의 관련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사54:5).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일관성이 있습니다. 단지 우리 속에 잠재해 있는, 교리적 선지식이 잠시 혼란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침에 다시 새로워진 생각으로, ‘오 하나님, 당신은 참으로 우리의 구주이십니다.’라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Christ Jesus our hope):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과 달리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쉽게 누렸습니다. 예전에 골로새서 1장을 추구할 때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소망”이시기도 하다는 점을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누린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예전에는 이것저것을 바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안 후에는 우리의 생명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존재를 점차적으로 그분의 영광으로 적셔 가심으로(고후3:18), 마침내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의 몸까지 변형되어(빌3:21) “우리가 그분과 같아질 것”(we will be like Him)이라는 이 한 소망만 있게 되었습니다(요일3:2). 성경은 바로 이어서 “그분께 이 소망을 둔 사람마다 그분께서 순수하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순수하게 합니다”라고 말씀합니다(3절).
이 아침에 참으로 밝아지는 것은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철저하게 구원하심으로 “많은 아들들을 영광 안으로 이끄시는 구원의 창시자”(히2:10)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 자신이 자신의 인성 안에서 이러한 영광 안으로 이끌리는 길을 먼저 걸어가시고 맛보신 우리의 선주자(Forerunner)(히6:20, 12:2)요 첫 열매 (고전15:20, 23, 행13:33)이시라는 것입니다 . 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풍성이 이 한 구절에 있다니요!
오 주님, 당신은 참으로 우리의 구주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의 목표요 또한 구원을 이루시는 분!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 구원자가 계시고 또한 소망이 있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