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39회 - 뛰어난 부활
에세이
청지기 , 2023-06-16 , 조회수 (547) , 추천 (0) , 스크랩 (0)


6.25라는 한국 전쟁 중에 ‘흥남철수 작전’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뜻밖에 중공군이 이 전쟁에 개입하자 전세는 아군에게 극도로 불리해졌습니다. 그러자 1950년 12월에 193척의 배가 동원되어 약 열흘에 걸쳐 군병력과 장비 그리고 십만 명의 피난민까지 흥남항을 통해 철수시키는 대작전이 이뤄졌습니다. 이 내용은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서도 실감 나게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백미는 마지막 남은 상선이었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이 내렸던 어려운 결단일 것입니다. 즉 그는 이미 선적했던 25만 톤의 군수물자를 버리고 그 빈 공간에 피난민 1만 4천여 명을 차곡차곡 태웠습니다. 무언가를 비우고 그 안에 새로운 것을 채우는 아래 말씀을 묵상할 때 문득 이 라루 선장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

나는 …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부활(out-resurrection)에 이르고자 합니다(빌 3:8, 10-11).

 

지난 주말 현충일 콘퍼런스에서 빌립보서의 여러 중점 진리들이 다뤄졌습니다. 제게는 그중에서 위 본문의 ‘뛰어난 부활’이라는 말이 가장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 후 복습 겸 위 관련 구절들을 더 깊이 추구하고 소화하는 중에 아래와 같이 이 진리가 더 분명하게 이해되고 누려졌습니다.

 

원문: 먼저 다른 번역본들과 달리, 왜 회복역 성경만 ‘뛰어난 부활’로 번역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니, 여기에 쓰인 뛰어난 부활은 ‘엑사나스타시스’(1815)인데 성경 전체에서 여기서만 쓰였습니다. 일반적인 ‘부활’은 ‘아나스타시스’(386)로서 둘은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참고로 다른 영어 성경 중에서 유일하게  역만이 원문을 살려 ‘out-resurrection’으로 번역했습니다.

 

뛰어난 부활’의 의미: 보통 우리가 말하는 ‘부활’은 믿고 죽은 사람들이 장차 주님 재림 때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활은 때가 되면 자동으로 일어날 사건입니다(살전 4:16). 하지만 위 본문에서 언급된 뛰어난 부활에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목표를 성취한다’는 의미의 ‘attain’이라는 동사가 쓰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활은 과연 어떤 부활을 가리키는가? 이에 대해 회복역 관련 각주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뛰어난 부활에 이른다는 것은 우리의 온 존재가 점차적으로, 계속적으로 부활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죽은 영을 부활시키셨다(엡 2:5-6). 그런 다음 그분은 우리 영에서부터 계속하여 우리의 혼(롬 8:6)과 우리의 죽을 몸을 부활시키시고(롬 8:11), 결국 우리의 온 존재―영, 혼, 몸―가 그분의 생명에 의해, 그분의 생명으로 우리의 옛 존재에서 완전히 부활하도록 하실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생명의 과정이며, 상으로서 주어지는 뛰어난 부활에 이를 때까지 해야 할 경주이다. 그러므로 뛰어난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 생활의 목표와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빌 3:11, 각주 1).

 

적용: 사실 전에도 위 본문을 여러 번 읽고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1)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2) 그 결과 그리스도를 얻고 더 얻어가는 것이 사실상 부활의 과정이고, 3) 그 목표는 뛰어난 부활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점이 지금처럼 종합적으로 선명하게 그려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추구를 통해 ‘뛰어난 부활’이 제 믿음 생활의 구체적인 목표가 된 후로 이런 변화가 생겼습니다.

 

첫째, 왜 바울이 자신에게 유익했던 것, 심지어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겼는지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좋은 면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 자신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얻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위에서 군수물자가 배에 담겨 있는 만큼 피난민은 배에 타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더 이상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의지를 고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 주님의 생각, 주님의 감정, 주님의 의지가 저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루에도 여러 번 ‘오 주님, 당신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 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고전 2:16).

 

셋째, 예전에는 특별히 죄짓는 일 없이 하루가 지나면, 오늘은 그런대로 하루를 주님과 함께 살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부활을 목표로 삼은 후에는 오늘 내가 주님 때문에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삶의 기준은 제가 얼마나 주님을 살지 않고 저의 타고난 생명을 살고 있는지를 빛 가운데 폭로하여, 더욱 간절히 주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오, 주님. 제가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 뛰어난 부활에 도달하기를 얼마나 사모하게 되었는지요!

 

 

 

오 주님,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 있는 동안 뛰어난 부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매 순간 당신을 앙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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