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30회 - 브살렐의 재 발견
에세이
청지기 , 2023-04-14 , 조회수 (501) , 추천 (0) , 스크랩 (0)


먼 친척이기도 한 고향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상경하여 보석을 세공 하는 분야에 투신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작품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가 보았는데, 행사 안내문에 적힌 경력을 보니 그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인 ‘명인’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수 십 년을 한 우물만 파더니 마침내 뭔가를 이뤄낸 것입니다. 그 친구는 현장 작업에 능통할 뿐 아니라 틈틈이 공부를 더 해서 관련 학위도 받고, 지금은 공중파 텔레비전 사극 복장 자문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고향 친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침에 출애굽기를 읽다가 연상되는 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브살렐’(Bezalel)입니다. 브살렐은 여호와의 부르심에 따라 오홀리압과 함께 성막과 그 기구들을 실제로 구현해 낸 장인(匠人)입니다. 아침에 읽고 묵상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유다 지파에 속하는 훌(Hur)의 손자이며
우리(Uri)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불렀다.

내가 그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되,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온갖 기술로 충만하게 하였으니,

그가 정교하게 도안한 것을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고,

테에 박을 보석을 깎아 다듬고 나무를 조각하며
온갖 기술을 가지고 일할 것이다(출31:2-5).

 

 

예전에 이 부분을 읽었을 때는 ‘브살렐이 이것 저것을 만들었구나’라는 막연한 인상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이 구절들을 읽고 묵상할 때, 전에는 갖지 못했던 많은 느낌들이 있습니다. 먼저 브살렐이 ‘훌(Hur)의 손자’라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훌은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의 좌우 편에서 아론과 함께 모세의 손을 떠 받치고 있던 바로 사람입니다(출17:12). 역사가 요셉푸스에 의하면, 훌은 모세의 누님인 미리암의 남편입니다. 따라서 브살렐은 할아버지 쪽으로는 유다 지파인 훌의 자손이고, 할머니 쪽으로는 모세의 누님 즉 레위지파의 피가 흐르는 셈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브살렐의 집안 배경과 그의 타고난 재주가 어느 정도까지 성막 건축의 일에 기여했는지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그 복잡한 성막과 성막관련 각종 기구와 기명들의 설계도를 이해하고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지시하신 그대로 그것들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출36:8-38:20). 그리고 그가 그런 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영’과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금과 은과 놋 세공 기술, 보석 깎는 기술, 목수의 기술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위 친구가 만든 ‘호박 보석이 박힌 사대부가의 족두리’, ‘황제가 쓰는 관모인 통천관’, ‘옥봉황 화관’도 대단했지만, 브살렐이 순 금 한 달란트를 쳐서 만든, 등잔대의 밑받침과 대와 잔과 꽃받침과 꽃잎으로 이뤄진 정교한 금 등잔대(출37:17-24) 하나 만으로도 그는 그야말로 최고의  ‘명인’ 중의 명인 대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아침에 위 본문이 마음에 깊이와 닿은 것은 구약의 성막의 실재인 오늘날의 교회 건축에 이런 말씀들을 적용해 보는 과정을 통해서 입니다.  출애굽기 31장 4-5절에 대한 회복역 성경의 다음과 같은 각주 내용들은 그런 연결된 누림을 갖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믿는이는 교회를 건축하기 위하여 금인 신성한 본성과 은인 그리스도의 구속과 놋인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어떻게 ‘재료’로 사용하여 건축의 일을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4절 각주1).

 

테에 박을 보석을 깎아 다듬는 것은 성도들이 보석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건축물에 합당하도록 돕는 것이다.

나무를 조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하여 성도들의 인성에 대하여 수고하는 것이다.

온갖 기술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처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하여 뛰어난 미덕들을,
그리스도의 높아진 인성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성격 안에 산출하는 것이다
(5절 각주1).

 

 

사실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거처에 대한 계시는 신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즉 출애굽기에서 본 광야 시절의 ‘성막’에서 가나안 땅 입성 후의 ‘성전’으로, 그리고 신약에서는 그 돌로 된 성전에서 ‘성전이신 주 예수님 자신’으로(요2:19, 21), 또한 그분의 부활 후에는 주 예수님이라는 개인 방면의 성전에서 주님의 몸의 모든 지체들(고전3:15-16, 요14:2)이 포함된 ‘단체 개념의 성전’으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성전의 최종완성인 새 예루살렘 (계21:22)으로 전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진된 빛 가운데 볼 때, 성전의 각종 기구와 기명들을 만든  ‘브살렐’은 신약에 와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건축하겠다.’(마16:18)라고 말씀하신 주 예수님 자신, 그리고 주님의 성전인 그분의 몸을 건축하는데 참여하는 모든 지체들(고전14:4)이 포함된 개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구약에서 브살렐은 자신의 더 좋은 아이디어를 성막 건축에 반영시킬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시고 모세가 자신에게 전달한 그 식양대로만 작업해야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현재 교회생활 안에서 초점을 두는 주님의 몸의 건축은 그 큰 그림을 보는 것과 그 봉사의 본질을 바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건축의 식양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수고들은 그 날에 거절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마7:23, 고전3:13).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늘 이상을 새롭게 일깨워주고 바로 잡을 기회를 갖게 하는 이 신약 사역의 공급아래 있는 것은 그 어떠한 긍휼과 축복인지요!

 

돌이켜 보면, 성도들이 보석으로 변화되도록 좋은 의도로 돕고자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영의 넘치는 공급과 정교한 ‘기술’을 요구하는 것인지는 몰랐습니다. 성막을 짓는데 쓰는 나무를 조각하듯 ‘성도들의 인성’에 대해 수고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이 ‘브살렐’ 혹은 ‘브살렐의 일부’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더 분명한 인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건축을 위한 교회 생활을 합당하게 하도록 하나님의 영을 더 구하고, 머리이신 그분과 교회 안의 앞선 형제님들로부터, 성도들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실제적으로 그들을 돕는 법을 배우는 기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어설픈 돌파리 장인이 되어 귀한 건축 재료들을 섣불리 다루다가 실패한 기억들이 새삼 생각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오 주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하는 정교한 작업인지 다시 일깨워 주시니 감사합니다(엡4:12).

 

 

오 주님, 우리를 단체적인 ‘브살렐’로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각 사람이 자신이 어떻게 건축하고 있는지 살펴보게 하소서.”(고전3:10)

우리의 모든 일들이 당신 앞에서 계수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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