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28회 -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에세이
청지기 , 2023-03-31 , 조회수 (364) , 추천 (0) , 스크랩 (0)



  오래전 고등학교 때, 한 친구가 미국 50개 주를 줄줄 다 외우는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게 미국은 세계 지도에서나 본 먼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주권적인 안배 아래 그 지도 속 나라에 와 산 지도 30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래 살았지만,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방문해 본 타주는 다섯 손가락 내이고, 여전히 다른 곳들은 지금도 미지의 세계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도 이러한 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알아가는 것은 더 점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하나님의 경륜(딤전 1:4)을 알게 되어 하나님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며,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 지를 큰 틀에서 알게 된 것은 큰 긍휼입니다. 아침에 아래 말씀을 묵상하고 또 추구하면서, 하나님과 사람이 접점을 갖게 되는 사건인 거듭남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은 의 때문에 생명입니다

(the spirit is life because of righteousness)(롬 8:10).

 

 

  저는 주일학교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하나님과 성경을 말하는 단체의 일원으로 살아왔습니다. 현재 몸 담고 있는 곳 이전에는 본의 아니게 한 선교 단체를 포함해 여러 교단들을 거치면서 신앙생활 했습니다. 한때는 청년부 전도부장을 잠시 맡아 남산 팔각정에 올라가 전도지를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위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갖게 된 것은 그 후인 20대 중반이었습니다. 그 무렵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믿고, 실행한 후로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과 별도로, 거듭남이 선명하게 이해된 것은 (육체로 난 것은 육체이고) “그 영으로 난 것 ”이라는 말씀과 사람의 영은 거듭날 때 “주님과 합하여 한 영”이 되었다는 말씀을 통해서입니다(요 3:6 하, 고전 6:17).

 

 

  즉 거듭남은 위 본문처럼 (부활 후 영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 안에 들어오신 사건’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주하시면서, 우리가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자아를 부인할 때마다 우리의 영에서 혼(마음)으로, 마침내 (영적으로) 죽은 우리 몸까지 그분의 거처를 확대해 가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엡 3:17). 그런데 제가 이번 묵상에서 특히 주목했던 것은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이라는 부분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 쟁점이 있습니다. 1) 여기의 ‘영’은 사람의 영인가 아니면 성령인가? 2) 왜 생명이라는 단어에 (신성한 생명을 의미하는) ‘조에’(2222)를 썼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인가 성령인가?: 이 부분은 헬라어만으로는 알 수 없고, 영어로 번역될 때 ‘스피릿’의 첫 글자 S가 대문자이면 성령, 소문자이면 사람의 영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영어 번역도 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한글 성경들은 대부분 사람의 영을 염두에 두고 번역했습니다. 여러 관련 자료들을 검토해 본 결과, 총신대 교목실장을 역임한 분이 쓴 “로마서 8장 10절의 “영”(pneu'ma)에 대한 해석”이라는 소논문이 여기서의 영은 사람의 영이고, 성령이 아님을 가장 체계적으로 잘 논증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 본문이 몸과 영을 대조하여 말하고, 2) 성령이 생명임에는 조건이 필요하지 않은데, 본문은 그리스도의 내주 혹은 의를 조건 삼아 말했기에, 여기의 영은 사람의 영임을 쉽게 분별했습니다. 아래 회복역 각주도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은) 타락한 사람의 몸과 대조되는 거듭난 사람의 영이다. 이 영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 언급된 영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조건에서만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께서 생명이 되시는 데는 어떤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후략)(각주 5).

 

 

  사람의 영이 ‘조에’가 됨(사실): 헬라어에서 ‘생명’을 나타내는 단어에는 ‘비오스’, ‘프시케’, 그리고 ‘조에’ 세 개가 있습니다. 각각 영의 생명, 혼의 생명, 몸의 생명을 가리킵니다(요일 5:20, 막 10:45, 딤전 2:2). 따라서 위 본문이 ‘영은 조에이다’(the spirit is life)라고 한 것은 우리가 체험한 거듭남은 1)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 영이 살아난 것, 2) 우리 영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게 된 것, 3) 그러한 주님과 우리의 영이 한 영으로 연합된 것, 4) 더 나아가 사람의 영이 ‘조에’ 즉 신성한 생명이 된 것을 의미함을 말해 줍니다.

 

 

  일본군 소위 히로 오노다는 일본이 패망한 사실을 믿지 않고, 1944년 말부터 1974년까지 30년간 필리핀의 작은 루방섬 정글에서 숨어 살았습니다. 그는 일본 군대가 돌아올 때까지 이 기간 동안 나름의 비밀 임무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저도 우리의 영이 ‘조에’가 되었다는 말은 약 30년 전에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뭔가 안에서 약간의 거부감이 있어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거듭날 때 저의 영이 ‘조에’가 된 이 엄청난 사실을 두고두고 깊이 음미하며 살 것입니다. 아멘.

 

 

 

오 주님, 비록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어 있지만,

우리의 영이 조에가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의 생각과 몸까지 조에로 만들어 가시는 당신의 위대한 경륜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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