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메아리님의 질문에 대한 답글(4)
성경진리토론방
, 2004-08-05 , 조회수 (254) , 추천 (0) , 스크랩 (0)


======복음 메아리님의 질문[9]
법리적 구원 따로 있고 유기적 구원 따로 있다? ... ... 자매님, 정말 맞는 얘기들입니까? 성경이 그렇게 씌여 있습니까?



*******비자의 답글

성경에는 '법리적'이라는 단어도 '유기적'인 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윗트니스 리형제님이 쓴 책은 성경이 아니라 성경 해석내지 성경주석입니다...

우리가 만일 중고생의 자습서나 참고서는 분명히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서를 더 잘 이해하게 하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어려운 교과서를 더 잘 이해하게 하기위해 책을 쓴 선생님은 더 많은 예시와
설명을 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아주 어려운 내용이라면 법적인 용어나 경제적인 전문 용어를
사용해서라도 더 잘 이해하도록 만들어야만 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며
참으로 자습서가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 중 일점 일획도 무용한 것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생명을 얻게 하신다고만 하면 족한 것을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하신다고 하셨을까요...

로마서 5장 10절에는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 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in His life)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원수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된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더욱 그분의 생명으로(영어 성경에는 그의 생명으로이군요)
구원을 얻을 거라는군요..

여기서 더 얻을 구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바울은 빌립보서의 믿는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두렵고 떨립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명합니다.

빌립보의 모든 성도들과 감독과 집사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니
그들은 분명 이미 구원을 얻은 자들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루워야 할 구원이 또 있었을까요???


법리적인 구속과 유기적인 구원에 대한 의미를 우리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구속'이라 단어는 무엇인가 잃어버렸던 물건을 댓가를 지불하고 다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으니 사람은 분명 하나님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악한자의 속임에 빠져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취한 후
죄가운데 죽은자가 되어 진노의 자녀가(엡1:1-3) 되었으며
하나님을 멀리 떠난 자나 하나님으로 원수 되었던 우리(골1:20)는
하나님의 피로(행20장 28절) 우리를 사셨습니다.

법적으로 댓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되 사였기에 이것을 법리적인 구속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또한 법적으로 댓가를 지불하고 사 오긴 했으나 우리 사람의 죄된 본성까지
일시적으로 해결되진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넜지만 여전히 애굽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나 내적 조성은 여전히 애굽의 문화와 음식과
생활 방식으로 조성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죄사함을 얻고 세상에서 나와
교회 안으로 들었왔지만 우리의 생활 습관이나 우리 존재의 조성내용은
구원받기 전날인 그 사람과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인 말씀과 기도와
더 깊이 말씀을 알고자하는 추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장 2절에서 우리 마음이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더 많은 이해와 부요한 지식과 지혜를 갖게 되기를
사도인 바울도 간절히 원했건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알고자 하여 추구하는 것이 잘못되었으며 다만 육이라고
표현하시는 것은 너무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매일 그리스도를 더 알아가며 체험하며 또 기도하면
말씀을 먹으며 더 나아가 우리가 알고 깨닫을 그 보배로우신 그리스도를
다른이로 알게 하기위해 힘쓰는 생활을 할 때...

우리에게는 서서히 우리 안에 조성되 과거의 옛사람의 성분을 벗고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를 닮은(외적이 아닌 내용적으로) 그런 사람들로 변화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더해지는 우리 안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바울은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빌1:21)라고 했으며

또한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거룩함으로 지으신 새사람을 입으라..(엡4:22-3)고
말씀하였으며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 날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다게 되어가는 과정과
우리의 죽을 몸까지 영화롭게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날마다 주님 앞에서 이세상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을 이루워하는 것을
우리는 유기적인 구원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베드로도 바울의 글은 해석하기 어렵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의 시대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의 이천년 역사에는 참으로 주님을 추구하던
많은 믿는이들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그분의 몸입니다. 그분의 몸은 각기 다른 은사와 기능을 가진
많은 지체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 중 많은 분들은 자신의 빛비춤과 체험을 책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종합되고 분류되어 다시 정리되어져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아무도 이것을 단독으로 행하지 않았으며
모두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참으로 몸 안에서 몸의 축복으로
이러한 해설서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교만할 수 없습니다.
다만 겸손히 자신을 나추고 배우고자 한다면
주님께서는 교만한자를 패하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더 많은 계시에 대한 빛과 체험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윗트니스 리를 무작정 추종하고 치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도 자신에게 무엇인가 참으로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제가 오랜 교파생활을 청산하고 교회 생활 안에 왔을때
두 형제님이 쓴 책만 읽는 것 같은 지체들로 인해
저도 꽤 많은 회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은 시간안에 저도 두분의 책을 대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때 가장 깊이 인상 받았던 것은 두 형제님의 책들이
그 많은 목사들의 설교와는 너무도 다르게 오직 '그리스도'도만을
설명하며 그리스도만을 높여주어 결국엔 성경을 추구하도록 인도해 주었습니다.

전엔 그렇게 읽어도 빛이 없던 성경이 열리면서
두형제님의 글을 대하면 대할수록 더 성경을 추구하게 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소규모의 개인업을 집안 살림을 하는
주부입니다.

그러나 위에 적인 모든 구절들은 제 안에 다 저장되고 의미가 분명해진 성경구절입니다.
만일 두 형제님의 책이 없었다면 저는 이렇게까지 성경을 사랑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간증합니다.

두 형제님의 책은 어떻게든 우리를 순수한 성경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을
저는 아주 강하게 간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경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으므로 다만 평신도^^일찌라도
주님께 제 자신을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제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너무도 행복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두형제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최고의 감사를 드리며 또한 바울 형제님과 다른 사도들께도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경배와 존귀를 돌리는 것이지만
성경을 쓴 사도들과 1세기로 부터의 많은 서적을 남긴 선배의 믿는이들과
두 형제님에게 드리는 감사는 다만 감사인 것입니다.

이것은 혼동할 일이 전혀 아닙니다.


복음 메아리님의 질문에 답하라는 글을 대하면서
주님께 고하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토론같은 것을 할만한 할 수도 없는 인물이며
교회 안에서 너무도 어린 사람이며 또 자매이기에 두려운 마음으로 질문하신 것에
답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