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21회 - 사랑의 입맞춤
에세이
청지기 , 2023-02-10 , 조회수 (631) , 추천 (0) , 스크랩 (0)


  지금까지 신앙 생활하면서 성경 이해나 영적 체험에서 제게 큰 도움이 되었던 진리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에게는 몸(물질세계)과 혼(정신세계) 외에, 영도 있다는 것입니다(롬 1:9). 참고로 스가랴는 이 사람의 영(spirit)을 하늘들과 땅 전체와 나란히 언급합니다(슥 12:1). 또 하나는 승천 이후 주 예수님은 지금 그 몸의 머리로는 하늘 보좌 우편에몸의 생명으로는 거듭난 이들의 영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롬 8:34, 10, 요 3:6 하, 골 1:18, 3:4). 즉 주님의 부활 후에 이 우주 안에는 그리스도를 머리이자 몸으로 하는 거대한 인격체인 한 새사람이 존재합니다(골 3:10-11). 이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몸의 지체들을 괴롭히던 사울에게, “사울아 네가 왜 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신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행 9:4-5). 이러한 방면들의 진리에 대한 인식은 아침에 누린 아래 아가서 말씀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유용했습니다.

 

 

그이 입의 입맞춤들로 내게 입맞춤해 주었으면!

당신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나은 까닭이랍니다 …

나를 이끌어 주세요, 우리가 당신을 좇아 달려가렵니다(아 1:2, 4).

 

 

  사실 ‘아가’(雅歌)에 대한 해석은 그 틀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위 말씀을 묵상하면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 최대한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이 왕인 솔로몬과 시골 처녀인 술람미의 사랑의 이야기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다만 좀 더 건전한 해석들은 이것을 단지 부부간의 사랑의 관계로만 보는 시각은 배제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혹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관계로 봅니다.

 

 

  그러나 종합해 볼 때, 아가의 본문들은 교회라는 단체의 방면이 아니라 1) 믿는 이들 개개인이 주님을 2) 다정하고 3) 내밀한 방식으로 사랑하고, 추구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경험하는 4) 여러 영적인 단계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은 관점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입맞춤해 주었으면”: 일반적인 연인 사이의 입맞춤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으로 예표 된 주님과 술람미로 예표 된 개인적인 믿는 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깊은 간격이 있습니다. 이 간격을 메우시려고 하나님은 마치 솔로몬 왕이 시골 처녀인 술람미에게 먼저 다가간 것처럼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셨고, 죽음과 부활 후에 생명 주는 영으로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한편 이사야 54장은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우리의 남편이자 구속주라고 말씀합니다(5절). 그런데 만일 주님에 대한 인식이 오직 창조주와 구속주에서 머무는 사람은 위 말씀의 맛을 깊이 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 입맞춤은 사랑하는 연인끼리의 입맞춤이자 신성한 연합을 함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솔직히 이 방면의 체험은 제 안에서도 더 깊어져야 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당신을 좇아 달려가렵니다”: 우리가 거듭난 직후의 영적인 상태는 마치 “파라오의 병거들 가운데 있는 암말”과 같을 수 있습니다(1:9). 즉 초기의 베드로처럼 주님을 사랑하지만 여전히 천연적으로 강하고, 자신도 모르게 사탄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입니다(마 16:22-23). 그러나 솔로몬의 연인처럼 주관적으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반복해서 체험하다 보면, 위 암말이 자신의 타고난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백합화’가 되고(2:1-2), ‘연기 기둥’과 ‘솔로몬의 침상’이 되고(3:6-7), ‘잠긴 동산’이 되고(4:12), 마침내 ‘술람미’가 되는 변화과정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6:12).

 

 

  사실 솔로몬과 술람미는 히브리어로 똑같은 단어의 남성형과 여성형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연인이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성숙하여 결혼을 위해 그분과 어울리도록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표현과 기능에서 그리스도의 재생산이 된 것을 상징합니다(고후 3:18, 롬 8:29)”(6:13 각주 1 참조).

 

 

  그렇다면 이런 말씀들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지를 묵상할 때, 주님은 사도 바울의 예가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는 뒤에 있는 것들을 잊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해 힘을 다해 수고하고 추구했습니다(빌 3:12-13). 그것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옛사람에 속한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 더 얻는 삶을 산 것입니다(8절, 요 10:10 하). 이러한 추구는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 혹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신 새사람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할 것입니다(골 1:28, 3:10-11) 바로 이 새사람이 계시록에 나오는 어린양의 신부, 곧 새 예루살렘입니다(계 21:9-10).

 

 

  아가 안에는 풍부한 영적 의미가 담긴 주옥같은 시어(詩語)들이 즐비합니다. 그중에서도 이번 묵상으로 제 마음에 새겨진 한 마디는 “사랑하는 이에게 몸을 기댄 채 광야에서 올라오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입니다(아 8:5). 처음에는 ‘바로의 준마’ 같았는데, 이제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 위 모습이 제 이야기가 되는 날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오 사랑하는 주님,

“나를 이끌어 주세요, 우리가 당신을 좇아 달려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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