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사도 바울을 참 좋아합니다. 그에게서는 하나님 냄새도 나고 또 진한 사람 냄새도 납니다. 그는 주 예수님을 많이 닮았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바울을 생명을 얻은 사람들의 본으로 제시합니다(딤전1:16). 많은 때 영적이다 혹은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은 하나님 쪽으로만 너무 치우치는 경향이 있음을 봅니다. 반대로 인간미가 있는 경우 그 자체는 좋은데, 바울처럼 영적 세계에 대한 원대한 조망과 체험이 결여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균형 잡힌 신앙인인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한 신실한 성경 교사는 사도 바울이 쓴 고린도 후서를 바울의 자서전이라고 평가합니다. 실제로 고린도후서를 읽다 보면 바울의 행적 안에서 하나님-사람의 향기가 가득함을 발견합니다. 물론 그가 쓴 그 외의 서신서들 에서도 바울의 이러한 신성하고 인간적인 방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묵상한 말씀은 빌립보서 4장 10절입니다. 돈 문제를 다루면서 이처럼 생명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표현을 할 수 있었던 바울의 인격이 깊이 감상이 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마침내 새롭게 꽃피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나를 위한 생각은 늘 해 왔으나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위 본문 자체가 돈을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궁핍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씀이 바로 이어지는 것을 볼 때, 바울은 지금 돈 문제를 거론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자기와 직접 연관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여전히 돈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주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구사의 아내인 요안나 등 여러 자매들이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의 일행을 섬겼습니다(눅8:3). 잘 알려져 있듯이 바울은 천막 제조 기술이 있었지만 그가 항상 자비량 사역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빌립보서 4장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신약 사역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차례 물질로 후원했음을 보여줍니다(14-18절).
일반적으로 성도들에게 돈 문제를 거론할 때는 많은 지혜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의 필요를 후원 하는 문제를 장본인이 직접 거론할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너무 인간적으로 접근하면 치사해 보일 수 있고, 너무 하나님의 보상 쪽으로 가다보면 기복신앙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이러한 민감한 일을 다룰 때 매우 사려 깊었습니다. 잠시 후원을 중단했던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도 만져집니다. 특히 물질을 다루면서 후원하는 이들의 ‘생각이 새롭게 꽃 피었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이 이아침에 제 마음 안에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 (생각이) 새롭게 꽃피었다.’는 표현이 매우 특이해서 몇 가지 참고 될 자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우선 그 단어는 헬라어로 ‘아나달로’(330)인데 여기서만 한번 사용되었습니다. 개역 성경은 이것을 ‘다시 싹이 났다.’라고 번역했고, 영어 번역본들은 거의 대부분 ‘revive’ 혹은 ‘flourish’ 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천 개 이하의 기본 영어 단어만으로 성경을 번역한 것으로 유명한 Bible in Basic English(BBE)는 ‘has come to life again’ 이라고 번역 했습니다. 이런 번역본들은 이 단어를 생명력이 있는 그 무엇으로 간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신약성경 회복역은 이 단어를 ‘blossom anew’라고 번역했습니다. Vincent가 에서 이 단어를 설명하면서 ‘ye caused your thinking… to bloom anew(Lit)라고 한 것을 참고했을 수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 형제는 『라이프 스터디』에서 이 단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빌립보 신자들이 바울에게 물질적인 공급을 계속하지 못하게 되었던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이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선물을 보냈을 때, 바울이 이것을 그들이 자기에 대한 생각이 다시 꽃핀 것으로 여겼다. 바울의 느낌으로는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선물을 보낸 것이 자기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다시 꽃핀 것이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로부터 물질 공급을 받았을 때 자기가 혼자가 아니며 여전히 몸의 관심과 공급아래 있음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것은 그에게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오, 몸의 공급과 보호는 얼마나 큰 확신과 기쁨이 되는지요! 이어지는 설명은 ‘꽃이 핀다.’는 단어에 관한 것입니다.
“‘다시 꽃핀다.’는 단어는 아름다운 표현이고 의미가 풍부하다. 생명이 없는 것이 어떻게 꽃필 수가 있겠는가? 바울이 ‘꽃핀다’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에 대한 믿는 이들의 생각이 생명의 문제, 즉 생명을 표현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다시 꽃핀다.’라는 단어는 바울에 대한 믿는 이들의 관심이 얼마 동안 잠자고 있었으나 겨울이 지나갔음을 의미한다. 어떤 식물이 다시 꽃피려면 겨울 동안의 시드는 기간이나 동면의 기간을 견디어내야 한다. 성도들에게 바울을 관심할 기회가 결여되었던 이러한 겨울이 그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으로 그는 그리스도를 더 풍성하게 체험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비천한 상태’와 ‘풍부한 상태’ 모두에서 기쁨과 만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약 사역의 일에 물질로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잘 하는 일이다.’라고 칭찬 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14절). 심지어 자기에게 전해진 물질에 대해 ‘달콤한 향기’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18절)이라고 할 만큼 자기 사역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교회 혹은 자기 소속 교단의 세력을 불리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의 몸과 그 몸의 간증이 각지에 나타나는 그 자체를 위해 사심 없이 수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역자와 사역에 물질로 동참하는 일 역시 복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