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 형제님의 초등학생 딸이 한글로 된 책에서 몇 단어를 떠듬떠듬 읽기에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했더니, (어깨를 으쓱하는 미국인 특유의 제스처를 취하며) ‘아이 돈 노오’(I don’t know) 합니다. 영어가 서툰 한국인이 영어책을 읽어도 그 뜻이 금방 안 들어오는 것과도 같습니다. 만일 문장에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 뜻은 모를 수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이 그렇습니다. 내용의 대부분이 스토리 중심이고, 말씀, 생명, 빛, 물, 숨 등 단어도 평이해서 처음에는 저도 제가 읽은 내용을 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사도 요한의 책들만큼 난해한 것도 없음을 절감합니다. 실제로 한 신약학 전공 신학자는 아침에 누린 아래 구절을, 요한복음에 나오는 성령 관련 3대 난제 중 하나로 꼽기도 합니다(요 7:39, 14:26, 요 20:22).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그들 안으로 숨을 불어 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십시오(요 20:22).
신학자들이 주님의 부활 후에 불어 넣어지는 위 성령을 곤혹스러워하는 이유는 바로 요한복음 7장 39절 때문입니다. 그 구절은 예수께서 (부활로) 영광스럽게 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받을 성령(그 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 The Spirit was not yet”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 성령은 최소한 우리가 아는 삼위의 그 ‘제3 격’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어느 시점엔 안 계신 분이 아니라 영원한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런 난제를 알고 있었기에, 위 말씀을 충분히 소화하여 누리고 바르게 증거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그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입니다.
어떤 영인가?: <성령과 구속사>라는 책으로 출판된 박사학위 논문에서 한 저명한 신학자는 초기 교부들과 주요 개혁 신학자들이 요한복음 7장 39절의 성령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일일이 원전을 찾아 소개하고 평가하는 귀한 작업을 진행한 후에, 말미에 자신의 견해도 밝혔습니다. 그 핵심 취지는 ‘같은 성령이 예수님의 부활 후에 기능과 정도에서 더 강화되고 확대된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신학자는, “요한복음 성령론의 새로운 해석: 역사적 배경을 기초로”라는 자신의 논문에서, ”많은 주석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관한 문제”라며 앞의 신학자가 내린 결론을 비판적으로 논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활 후에 비로소 등장한 이 새로운 존재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성령의 근원은 예수”라고만 하여 말을 아꼈습니다.
한 편 “전통적인 개혁주의 성령론을 대표하는 사람”(위의 책, 119쪽)으로 평가받는 리처드 개핀은 이 영을 “그리스도께서 살려주는 주는 영으로 직접 교회에 오신 것(Christ’s personal coming to the church as the life-giving Spirit)” 혹은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생명”이라고 말합니다(121쪽). 앤드류 머레이는 이 “성령은 신인((神人)의 영-참으로 하나님의 영이면서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이라고 했습니다(그리스도의 영, 43쪽). 참고로 회복역 성경 해당 각주는 이 성령을 “우리가 받아들이기 위한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 혹은 “그리스도의 실재화이시며 실재”라고 말합니다.
언제?: 신학자들은 또한 부활 후에 불어 넣어진 성령과 오순절 때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을 내어놓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회복역 각주들이 이해에 다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사도행전 1장 8절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임하시면”에 대해 해당 각주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것은 ‘여러분 안에’(요 14:17)와 다르다. 성령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어지셔서(요 20:22) 본질적으로 그들에게 생명의 영이 되셨다(롬 8:2). 동일한 성령께서 오순절 날 제자들 위에 임하시어 경륜적으로 그들에게 능력의 영이 되셨다.”(행 1:8, 각주 1) 관련이 있는 구절인 사도행전 2장 4절의 각주도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위해서는 내적으로 본질적으로 충만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위해서는 외적으로 경륜적으로 충일되었다’라고 말합니다(각주 2 참조).
어떻게 체험하는가?: 위 본문을 소화하고 누리는 과정에서 두 가지가 제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첫째는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예수 믿는 사람이 영접한 분이 구체적으로 누구이신가?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 교회 역사상 내로라하는 성경 교사들 간에도 의견 일치가 안 된 현실입니다. 둘째는 그럼에도 이 영을 영접하여 누리고 체험하는 길은 아래와 같이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믿는 우리 모두가 “한 영 안에서 한 몸 안으로 침례 받았고”, 이제는 “모두 한 (성) 령을 마시게 되었다”라고 말씀합니다(고전 12:13). 따라서 예수님께서 불어 넣어주시는 숨을 우리는 그냥 들이마시면 되는 것입니다. 즉, 다만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믿음의 들음”(by the hearing of faith)을 갖는 것 입니다(사 12:3-4, 갈 3:2, 5). 그럴 때 우리는 “구원을 받고”,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엡 3:8, 롬 10:12-13). 이순간 제 안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오 주님, 사랑합니다. 오 주 예수님, 당신의 이름이 제게 모든 것이십니다. 오 당신만이 참 실재이십니다. 매 순간 당신을 바라보고 또 받아들이게 하소서! 주 예수님, 늘 당신과의 연합을 유지하게 하소서! 오 주 예수님, 당신으로 충만된 몸을 속히 얻으소서(골 3:11, 엡 1:23).
오 주 예수님, 당신의 이름이 참 좋습니다.
오 주 예수님,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충만히 채우소서!
오 주~ 예~수님, 오 주 예수님, 당신의 이름을 하루에 천 번 부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