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한국 방문 중 책방에 들렀다가 <천국에선 놀고먹기만 하는가?>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사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 권의 시리즈로 된 제목들도 흥미로웠지만, 내용도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여러 주제들을 다뤘습니다. 예를 들면, ‘갓난아이가 천국 갈 수 있는가?’, ‘성화가 점진적인가 아니면 천국 갈 때 완전한 성화를 부여받는가?’ 등등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답변이 “잠정적인 것”이고, “상당한 오류를 내포할 수도 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해석의 폭이 넓고 다양한 책임을 감안할 때, 그분의 이런 겸손한 태도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당연히 읽는 이들도 계시록에 관한 어떤 해석을 대할 때 본인 판단으로 취사선택하면 되고, 과도한 논쟁은 피하는 것이 지혜일 수 있습니다(딤후 2:23).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세상의 왕국이 우리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었으니,
그분께서 영원무궁히 왕으로서 다스리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큰 음성이 있었습니다(계 11:15).
아침에 위 본문을 여러 번 읽고 묵상할 때 많은 감상과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사실 오래전에 처음 계시록을 읽었을 때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계시록 강해서들, 종말론, 하나님 나라, 천국(천년왕국) 관련 책자와 논문들을 읽고 연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계시록은 세세한 설명보다 먼저 큰 틀을 잘 잡아야 하고, 핵심 개념들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도 제 안에 남아 있는 몇 가지 큰 원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이다. 따라서 특정 구절 해석 시 성경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2) 계시록의 핵심은 네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그것은 교회들(1-3장), 세상(4-16장), 큰 바빌론(17-20장), 새 예루살렘(21-22장)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얻기 원하시는데, 타락 후 세상이 출현했다. 세상은 큰 바빌론으로 발전하나 장차 한 순간에 망하지만, 교회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어 영원히 존재한다. 3) 계시록은 장래 일들을 4-11장과 12-22장의 두 부분으로 나눈다. 전자는 주님의 승천부터 영원 미래까지의 일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후자는 이들 중에서 중요 대목들을 더 자세히 제시한다(회복역 성경, 요한계시록 개요 참조).
“세상의 왕국”: 이 말씀을 대하면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몇 마디 말로 묘사할 수 있을지 막막해서 주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런 중에 성경에서 세상(코스모스, 2889)은 여러 의미로 쓰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에서는 죄 있는 타락한 사람들을,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에서는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이 세운) ‘질서 있는 체계’(system)를 가리킵니다(요 3:16, 요일 2:15). 그러므로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놓여 있다”(요일 5:19)라는 말씀에서의 세상은 ‘사탄적인 세상 체계’와 ‘타락한 인류로 구성된 세상 사람들’ 둘 다입니다. 따라서 이 개념을 위 “세상의 왕국”의 의미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참고로 현재 세상은 공산 진영인 중국과 러시아가 한 축이고, 민주 진영인 미국과 EU가 또 다른 축이며 각 나라는 이해관계에 따라 이 둘과 서로 얽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축은 구약 다니엘서의 ‘거대한 (인간) 형상’ 발 부분의 ‘철’과 ‘진흙’에 해당합니다. 만일 이런 관점이 맞다면, 위 본문은 바빌론 제국, 메도-페르시아 제국, 마케도니아-헬라 제국, 로마 제국, ‘부흥된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인간 정부들의 끝부분에서, 돌이 이 형상의 발을 쳐서 산산이 부술 것을 예언한 것의 성취입니다(단 2:33-34). 계시록의 또 다른 곳에서도 세상이 극도로 발전된 형태인 ‘큰 바빌론’이 정치와 상업과 종교로 서로 얽혀있으나, 어느 한순간(in one hour)에 멸망할 것을 말씀합니다(계 17-18장, 특히 18:3, 19 참조).
“그리스도의 왕국”: 사실 이 그리스도의 왕국도 제대로 설명하려면 책 한 권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이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자신이 왕이자 그리스도의 왕국(영역)이며, 그분께서 씨로 뿌려진 몸인 교회가 또한 왕국입니다(계 17:14, 막 4:26-29, 롬 14:17). 그러나 이 왕국은 현재 어둠의 세상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일곱째 나팔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그분의 (천년)왕국이 공개적으로 선포될 것입니다. (물론 그후에 새 하늘 새 땅에서도 그분은 영원무궁히 왕으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참고로 성경이 묘사하는 이 천년왕국은 인간 생태 환경에 현저한 변화를 예고합니다. 즉 “한 왕께서 의에 따라 통치”하셔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고’, ‘광야와 사막에 시냇물이 흐르고’,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눈먼 이, 귀먹은 이, 다리 저는 이, 말 못 하는 이가 치료되고’, ‘백 세에 죽는 사람이 아이’일 것입니다(사 11, 35, 65장).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소위 게임 체인저는 사탄이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계 20:2-3). 그리고 이러한 사건에 단초를 제공한 것은 부활한 이기는 이들인 사내아이의 휴거입니다(계 12:5, 7-9).
이 모든 것들을 알았으니 이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먼저는 위 본문 말씀이 속히 성취되기를 기도할 필요성을 느낍니다(마 6:10). 또한 형상의 발을 쳐서 부순 돌이 “큰 산이 되어” 온 땅을 채울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서도 날마다 증가되시라는 기도가 있습니다(단 2:35, 골 2:19).
오 주님, 이 땅에서도 마귀를 대적하여 서 있고,
장차 사탄을 공중에서 이 땅으로 내쫓을 수 있는 사내아이를 속히 얻으소서.
그리하여 계시록 11장 15절의 실재를 속히 성취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