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인터넷상에서 한동안 사용했던 필명은 갓맨이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졌던 진리의 방면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우리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우리의 존재 안에 생명으로 영접한 이들은 ‘하나님-사람들’, 즉 ‘갓맨’(God-men)입니다(요 1:12). 그런데 그동안은 구원을 말할 때 죄들이 용서받은 칭의의 방면만 강조되고, 참 포도나무에 접붙여진 가지들처럼 또 다른 인격이 우리의 인격과 연합되신 방면이 덜 강조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요 15:5). 오늘 아침에 아래 말씀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이 새롭게 다가왔고, 저의 필명이던 갓맨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힘을 다해 추구하십시오(딤전 6:11).
위 말씀을 여러 번 읽고 묵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우리가 피해야 할 “이러한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힘을 다해 추구”해야 할 위 여섯 항목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고 앞의 말씀과 각주들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위 말씀의 구체적인 실행을 염두에 두고 주님을 앙망할 때, 제가 해야 할 한 가지는 저렇게 사실 수 있는 유일한 인격이신 주님 자신을 더 먹고 누려 살아내는 것임이 깊이 느껴졌습니다(요 6:57). 그럼에도 아래 세 가지 항목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말할 부담이 생겼습니다.
의를 추구함: 하나님의 사람이 힘써 추구해야 할 첫째 항목은 의, 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에 대하여 올바른 것”입니다. 사실은 모든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서 전 시간으로 주님을 섬기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게 되고, 또 이런저런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원망들을 만한 일’(특히 돈과 태도에서)이 없도록,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음을 느낍니다(마 5:23-24).
관련하여 최근에 읽었던 사무엘과 바울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먼저 사무엘은 자기 사역을 마무리하려는 시점에서, “내가 누구의 소 … 누구의 나귀를 빼앗은 적이 있습니까? 누구를 속인 적이 있습니까? 내가 누구를 억압한 적이 있습니까? 내가 … 뇌물을 받고 눈감아 준 적이 있습니까? 그랬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돌려주겠습니다.”라고 말하여 자신의 결백을 공개적으로 검증받았습니다(삼상 12:2-5).
사도 바울도 “나는 (사역하는 동안) 어느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낸 적이 없으며, … 이 두 손으로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괴롭힌 적이 없고, 아무도 해롭게 한 적이 없으며, 아무도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처신했습니다(행 20:33-34, 고후 7:2).
함께 동역했던 한 형제님도 생각났습니다. 그분은 성도님들에게 식사 대접을 받으면 늘 “잘 먹었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했습니다. 또 무엇을 받을 때는 꼭 두 손으로 받고, 늘 존대어를 썼습니다. 오, 저도 이처럼 최소한 돈 문제에서 원망이 없게 하고 늘 겸손을 유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을 추구함: 본문이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용 면에서, 믿음을 추구하는 것은 삶의 현장에서 늘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주목하는 것”(히 12:2, 한글 킹제임스 성경과 회복역 참조)과 그 결과로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더 영접해서 받아들이는 것’ 임이 누려졌습니다. 즉 믿음은 객관적인 어떤 사실을 믿고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신성한 실재가 우리 안에 흘러 들어오는 것입니다(요 1:12, 고후 3:18, 계 22:1).
이처럼 믿음이 위 여섯 가지 항목에서 뿌리에 해당되기에, 바울은 “어떤 사람들은 돈을 따라가다가 믿음을 떠나 길을 잃었다.”라고 경고하고, “믿음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라”, “어떤 이들은 믿음에 있어서 표적을 놓쳤다.”라고 반복해서 믿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벧후 1:5-7, 딤전 6:10, 12, 21).
사랑을 추구함: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당 단어 원문은 신성한 사랑을 가리키는 ‘아가페’(26)입니다. 즉 우리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용 면에서 이것은 우리가 믿음을 통해 받아들인 사랑이신 그분을 누리고 체험한 후에 다른 이들에게 흘러 내보내는 것을 추구하는 것임이 밝아졌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교리적으로 하는 선포는 큰 호소력은 없음을 느낍니다. 대신에 수넴 여인 눈에 “늘 우리를 거쳐 지나가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고 관찰된 엘리사처럼(왕하 4:9), 저를 접촉하는 주변 사람들 눈에 제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오 주님,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늘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