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의 이단성 비판 1 - 기타글 포함]
성경진리토론방
, 2004-07-18 , 조회수 (355) , 추천 (0) , 스크랩 (0)


1. 상식이란,

상식이란, 기본적인 지식의 체계와 사고의 틀을 말합니다. 상식이 없다면 몰지각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상식이 있는 사람만 지각이 있다고 하는 것은 상식이란 인간 사고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지식인들 가운데에서 몰지각한 사람을 만납니다. 상식을 벗어난 자기 사고의 틀에 박혀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는 사고의 틀이 어찌 짜여져 있는가에 따라서 자신의 사상으로 고착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보면 그리스도인은 상식을 초월한 사람들이지요. 그리스도로 인하여 순교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육신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육신의 한계를 신앙으로 초월한다는 것에 대하여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상대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을 볼 때에는 육신에 매어 달려 있는 육적인 존재로서의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하여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같은 원리로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 이단이 생긴다는 것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같은 토양에서 같은 말씀을 먹고 자라났는데 어찌 이단이 생겨나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분명하게도 이단은 생깁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하나는 이단아 가룟유다 입니다.

이로 보건데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사고의 틀이 어떤가 하는 것에서 이단성향이 있다 와 없다로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상식이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이단성향은 발전하게 되어 있는 것이며, 이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은 마음이 가는 대로 발이 가고 손이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욕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에 대하여 도전해 보고 싶은 도전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진리를 받는 사람의 상식이 건전한가의 정도에 따라서 보존 혹은 변질될 수도 있으며 수호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2. 상식에서 본 윗트니스 리의 기독관

윗트니스 리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중국인의 특징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유전적으로 불교와 가깝다는 것이지요. 불교의 토양에서 역사가 반복되어진 특성이 있으며 불교는 중국의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불교적 사고의 틀을 유전적으로 제공해 줍니다. 중국인의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배경에는 불교가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지적을 하는 것은, 불교에서 최고로 말하는 지고한 선의 완성은 부처가 되는 것이며, 고도의 마음 정화와 수양을 통하여 결국에는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문화라는 겁니다. 이 문화 속에서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는 성경을 보았고 성경을 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책을 쓰기 위하여 신학자들의 책을 섭렵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책에서 만나지는 글들에 대하여는 자신의 사고와 같은 사고나 논조에 대하여는 깊이 빠져 들게 되고 자신의 사고와 논조에 반하는 책들에 대하여는 한 페이지도 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책으로 만나는 스승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에 반하여 스승이 있는 제자들은 스승의 책에 대하여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배우게 되고 익혀야 합니다. 왜냐면 점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지요. 여기에서 자신의 논조와 사상이 다른 스승의 책을 통하여 또 다른 사상과 접하여지게 되고 사상의 폭과 깊이가 넓혀지게 됩니다. 이는 나중에 자신의 영역 안에서의 사고와 사상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겁니다. 실상 학문은 자신의 고유한 세계 안에 들어 있는 사고와 사상의 틀을 부수고 정돈하여 바르게 세워 주는 것이 학문의 역할입니다. 따라서 스승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결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12사도는 상상조차 안 되는 것처럼 스승이 없는 제자는 없는 겁니다.

3. 윗트니스 리의 신학 사상에서 보이는 부처와 아리우스

스승이 없는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자유로운 연구와 해석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사고의 영역 안에서 책을 접하게 되었고 책 속에서 여러 가지 문화와 입장들에 대하여 만나 보았으나, 결국은 자신들과 가장 가까운 입장에 있는 아리안 주의자들의 책을 선택하였고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아리우스는 양태론을 주창한 자로서 아리안 주의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었으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능력을 행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로 보고 있음), 최종적인 십자가에 대한 죽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으며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로 인정하여 살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셨다고 주장하였으며 325년 니케야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당하였습니다. [세계철학대사전, [아리우스], (서울 :대한교육출판공사), 1980, p.688.] [교회사 핸드북, [공의회와 신조],David F. Wright, (서울 :생명의 말씀사),1989. p.156.]

아리안 주의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었으나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었으며, 하나님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 는 논리로, 인간을 내세우는데 있습니다. 이제 윗트니스 리의 주장과 어떤 점이 일치하는지 보십시요. 똑같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신과 합일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합일사상을 말하는 것으로,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을 자신을 사람 속에 넣어서 사람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같게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윗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p.10~11), 여기에서 "하나님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 이 말해지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 으로 말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으로 인간이 체현을 통하여 하나님과 똑같이 되는 것을 구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위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10), (위트니스 리,「하나님의 경륜」, p.244).

이들은 (고전 15:45)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영이 되었나니"를 신합일주의의 근거로 삼고 있으며, 이 근거를 토대로 논리를 전개하여 체현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이 신비로운 연합, 신비로운 체험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체현을 통하여 하나님이 되셨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를 믿으라" 이들이 체현을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지방교도로서 잘 믿으면 예수님처럼 될 수가 있다." 이 말에 지방교도들은 깊이 빠져 들었고 위트니스 리의 교리에 미치고 있는 중인 겁니다. 아래의 증거는 이들의 주장이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증거) ① "만일 당신이 요한복음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당신은 태초에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표현 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뒤 마지막에 그 분이 영이 되신다(20:22). 말씀이신 그 분은 땅에 있는 전기 줄이시다. 즉 그 분은 안테나이다. 이 두 가지 말씀이 영이 요한복음6장63절에서 함께 왔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안테나와 접지 선이 하나 될 때 전기가 온다. 말씀과 영이 섞여질 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달된다"(28. p. 39, 9-16줄 , 윗트니스 리 주장).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말씀과 영이 합해져 자기들의 속으로 들어 오신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말씀과 영이 전기처럼 전달되어진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말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지방교도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전기줄로 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 다만 형제일 뿐입니다.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인 하나님의 구별이 사라졌습니다. 창조주와 합일되어 버린 인간도 아니오. 하나님도 아닌 귀신과 같은 존재들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이들에게서 나온 베뢰아에서 귀신론을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 안형식, [인터넷 시대의 영성과 레마선교회의 영성에 대한 비판], 근간. ***

왜 이런 주장이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에게서 나왔을까요? 불교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는 사고의 틀에서 나온 사상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윗트니스 리가 보는 예수 그리스도는 부처와 같은 존재이며 다만 이름만이 바뀌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게서는 성령이 주장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들에게 있어서 성부 하나님의 존재는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옥황상제에 불과 합니다. 결국 윗트니스 리의 사상이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으나, 이름이 바뀐 부처를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말하고 있으나 옥황상제를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윗트니스 리의 사상이 지극히 인본주의이며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적그리스도적인 사상으로 간주합니다.


3.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한국교회에 끼친 악영향에 대한 분석

1. 신학 사상의 비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중국적 기독교 사관은, 현대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신학은 정통교회관과 성령관에 대하여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베뢰아를 비롯한 인본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신학을 퍼뜨린 점을 먼저 들 수 있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의 신학의 핵심은 성령의 사역에 해당되는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사역으로 대치시킨 점에서 크게 두드러집니다. 이들은 삼분설을 주장하여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처소로, 혼은 정신이며 더러운 생각과 각종 악이 혼재할 수 있는 좌소로 구분을 하고 있으며, 육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할 죄가 기생하는 저급한 처소로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 받았을 때 거듭나며 (중생), 그 거듭남이란 영을 말함으로 자신들의 영은 결코 죄와 상관이 없는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는 인간론을 말함으로, 인간의 영은 그리스도와 버금갈 수 있는 존재로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추종자들에게서는 성령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생깁니다. 성령의 존재에 버금가는 자신들의 영의 존재가 있는데, 왜 성령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가 내 영에 거하므로 내가 곧 그리스도의 형제라고 말하며 이른바 [형제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삼은 성경구절은 고린도 전서 15장이며,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을 근거로 하여 "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영이 되었나니" 를 증거로 자신들의 교리를 발전시켜 인간론과 구원론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1+1+1=1 이라는 등식의 삼일론을 말하며 성부는 성자이며 동시에 "성령이시다" 로 주장합니다. 신론이 망가져 있다는 말인데 이는 성령의 좌소와 사역 그리고 성령의 위상에 대하여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체험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에 대한 경험으로 말하고 있음으로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무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좌소를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끼워서 생각하고 있는 소치를 드러내면서 한 면으로는 아주 중대한 오해를 야기시키는데 철저한 인본주의적인 사상으로 발전시킨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틀 안에 성부 하나님을 끼워 넣는 엄청난 실수와 오만과 무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샤벨리안 주의의 [성부고난설]과 일치하는 주장이 되겠습니다.

증거) ③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에서 계시되는 바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경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한다. 물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신다. 하나님은 근본이시오 그리스도는 근본의 체현이시며 이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서 실체화되신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체화이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신 바로 그 하나님의 체현이시다"(11. P. 8, 5-12 ; 윗트니스 리 주장).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특징은, 인간의 이해의 영역 밖에 있는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는 용감하게 제외시키고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는 인간사고의 영역에서 기독론을 다루고 있는데,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상에는 유물사관이 배어져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하여는 심각할 정도로 약화시키고 있는 점입니다. 이 점은 지방교회나 회복교회가 [중국적 기독교]라는 특징으로 구별할 수 있는 증거이지요.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를 주장하면서도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 내 말을 지키면" 이라는 중대한 조건을 의도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적인 양태가 [말씀] 임을 부인하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라고 주장하는 중대한 오류를 드러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에 더하여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로서 성도 안에 들어오신다."는 공교한 주장을 함으로 [말씀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진리로 알고 있는 정통교회의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경의 위치는 자신들의 주장에 꿰어 맞추기 위한 근거로 사용할 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아주 중대한 근거와 전제를 빼고 해석함으로 성경전체를 자유주의로 해석하며 인본주의적인 토대로 접근하고 있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릴 수 있는 정도의 위상을 가진 천사 정도의 위상으로 존치 시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은 불러도 성령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예수 이름으로 해결됩니다.

위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은 표본이 베뢰아이며, 베뢰아에서 귀신론을 등장시킨 것은 위트니스 리의 성령론과 교회론의 모호함 때문입니다. 베뢰아에서는 예수의 이름이 만병통치약이며 만들어져 있는 귀신을 내어 쫓는 처방전입니다.
따라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업적은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 신학 사상의 배급]에 있다는 결론입니다.


2. 신학적 근거에 의한 비판

이제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분석하여 비판하여 보겠습니다.

(1) 신론

① "성경 말씀의 권위를 믿는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불리어진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아버지라고 불리어진 그 아들이 바로 아버지라는 사실을 받아 들여져야한다....예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아들은 영존 하시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7. P. 64, 1-10줄 ; 윗트니스 리 주장).


② "더욱이 고린도후서 3장17절에서는「이제 주는 그 영이시니」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이해하는 바로는 주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데 일치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또 주님이 그 영이라고 말한다. 그 영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 영이 성령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라고 불리어지고 주님이신 그 아들은 또한 그 영이시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임을 의미한다"(7. P. 64, 11-17 ; 윗트니스 리 주장).

③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에서 계시되는 바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경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한다. 물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신다. 하나님은 근본이시오 그리스도는 근본의 체현이시며 이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서 실체화되신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체화이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신 바로 그 하나님의 체현이시다"(11. P. 8, 5-12 ; 윗트니스 리 주장).


위의 ①, ②, ③ 주장은 전통적인 아리안 주의의 양태론입니다. 아리안 주의를 그대로 옮겨서 사용하고 있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이들은 체현이라는 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되는 과정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되셨음을 공교하게 말합니다. 이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샤벨리안의 [성부고난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신 그 하나님의 체현이다" 곧 근본 하나님이신 성부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체현하시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신다" ③에서 이들의 주장은 샤벨리안 주의의 성부고난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윗트니스 리의 교도들은 4세기 이단의 전형적인 주장을 현대에 배포하고 있으며 이는 인본주의적인 성경접근과 자유주의 성경해석을 적용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신학을 하지 않으면 자유주의와 인본주의의 위험성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주장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평신도 교회라는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에 도달하였으며, 교파와 교단으로 특정 지어진 교회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고 있던 한국의 무지렁이들이 위트니스의 추종자들이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그 물에 그 고기지요.


⑥ "여호와이신 삼일 하나님-아버지, 아들, 그 영, 출애굽기 3장 15절과16절은 여호와이신 그리스도가 삼일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시한다.「삼일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이 세분이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유일한 하나님이 삼일(三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셋-하나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한 분이나 셋이며 셋이나 한 분이다. 그분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신 한 하나님이시다(마28:19). 이것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비밀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가 셋이며 셋이 하나인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분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시다"(16. p.9, 하1-9 ;윗트니스 리 주장).

위트니스 리는 "우리는 어떻게 하나가 셋이며 셋이 하나인지를 설명할 수 없다."라는 말로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그리스도는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분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시다."라는 말로 비참한 설명을 마치고 있습니다. 이는 위트니스 리가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지극히 무지함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으며, 지극히 혼돈되어 있는 상태를 열거함으로 스스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함을 자신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셋인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인 하나님이 되시는지와 하나인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셋이 되는지 알 수가 없으며 이것을 신비하다"고 말함으로 더 이상의 삼일론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위의 주장에서 감히 [우리는] 이라는 말로 모든 기독인들을 기만하고 있는 오만함까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통교회의 장로 및 교역자들이라면, 적어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하여 정립해 두고 있다는 사실을 위트니스 리는 모르고 있던지 아니면, 자신이 모르고 있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정통교인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납득을 못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위트니스 리는 거짓말과 오만을 처처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래의 교회론을 보십시오.



(2) 교회론

1) 변질된 기독교의 또 다른 영성 형제교회와 워치만 니, 지방교회와 위트니스 리는 합작하여 [대륙적 기독교]를 만들어 냈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 이어지는 [형제, 지방 교회]는 변질된 기독교의 또 다른 영성의 하나입니다. 워치만 니의 [기독관]은 위트니스 리로 이어지면서 [대륙적 기독관]으로 변질되었다. 즉 중국화 되었다는 말이지요. 중국에 토착화된 기독교의 문화는 지하교회의 양식을 띠고 목사를 선생의 자리로 만들어 놓았으며 기존 교회와 직원의 틀을 지하 교회화 시켜 놓았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성령론]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성령론이 달라지면 [교회론]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한 귀결인 겁니다.

정통교회를 부인하는 기독교, 목사를 타락한 천사쯤으로 몰락시킨 저들의 교리, 지하로 숨어 버리는 성령론, 여기에서 나온 영성이 어떤 영성이겠는가? [워치만 니]의 판박이인 [위트니스 리]는 [대륙적 기독교]창시자로서 워치만 니와 동격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의[성령론]에서 사도행전 15장의 예를 들면서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 회의는 단 한 번 "공의회" 밖에 없다면서 현 기독교의 운동이라는 이름의 사역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독자적인 모델의 교회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름하여 지방교회로 불리우는 형제교회가 그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오직 성령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결정해야지 사람이 결정해서는 안될 것"으로 말하고 있는 바, 교회에서의 중대한 회의에까지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고하기를 "우리는 기독교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 이라며 [교회의 회의]를 비난합니다. ( 위트니스 리, [성령], (서울:한국복음서원), 1989, p.627-631)

[리]는 에베소서에 나타나고 있는 교회의 머리와 몸을 소개하면서 이를 하나로 말하고 " 그 몸인 교회는 종교나, 교리나, 신학이나, 행위나,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위하는 일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모호한 말을 통하여 결국 교회의 회의를 정면으로 부인하기 위한 포석으로 삼고 있습니다. ( ibid, p.626)
리는 여기에서 기성교회를 향하여 한 편으로는 치면서 한 편으로는 자신들의 교회론을 만들어 내면서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는 작업에 착수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결국 리가 기성교회와 각 교단의 교리에 중대한 도전을 한 목적은, 자신의 교회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음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2) 리에 의하면, 교회의 회의 (당회, 노회, 총회)를 통하여 치리되고 있는 칼빈주의의 정치형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인데 ,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a. 왜 교회의 회의를 중요한 전통이라 하는가? 에 대하여

종교 개혁이 일어난 16세기를 효시로 하여, 17세기는 혼란기이며, 개혁주의가 세워지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혼란기를 틈타 진화론에 편승한 이성주의와 휴머니즘이 일어났으며, 개혁주의는 영국의 성공회, 도이치의 루터란 처치, 러시아의 정교, 로마의 케톨릭으로 분류되어 독자적인 틀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칼빈의 장로교 정치는,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제네바를 중심으로 [의회정치]의 모습을 가지고 출현하였고 르네상스로 인한 이성의 팽배와 이성의 절대가치에 휘둘려 있던 혼란한 사회를 평화롭게 만들어냈습니다. 제네바에서 의회 정치를 하다가 한 번 축출되는 고배를 마신 칼빈의 장로교 정치는 다시 칼빈을 불러 옴으로 해서 [장로의회]정치를 구현하게 되었으며 이는 구라파의 교회에 장로교 정치를 뿌리내리게 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개신교는 칼빈의 장로교를 완전히 답습했으며 실상 개신교는 [칼빈주의에 입각한 의회 정치]로 요약됩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성결교와 감리교의 출발점인 웨슬레 목사의 사역으로 인하여 장로교에서도 구별된 (메도디스트)들이 출현하기에 이르러 개신교는 18세기 말엽부터 분열하여, 특징이 있는 교단으로 성격이 규정 되었습니다.

17세기에 영국에서 피난하여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청교도들의 초기 신앙이 점점 쇠퇴하여 갈 즈음에, 웨슬레와 동시대 사람인 죠나단 에즈워드를 통하여 미국 전역에[영적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18세기와 19세기 어간에 죤 웨슬레를 중심한 [감리교]와 찰스 웨슬레를 중심한 [성결교]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안식교와 여호와증인, 순복음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각 교단은 [중요한 회의]를 통하여 분립하였고, 교회를 세웠으며, 선교사를 파송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솟아 난 것이 아닌 것이지요.

b. 교회의 회의를 무시하고 있는 모순에 대하여

예루살렘 공의회는 전적으로 장로들의 회의였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에 따랐습니다. 모세 시절에 이미 장로회에 해당되는 족장들이 있었고 이는 각 지파의 대표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이들 각 지파들의 대표들을 통하여 장로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충언에 대한 결과이기도 하며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장로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장로회의 역사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 참고 * (출 16:22) "회중의 두목" 에서 (출 18:17절 이하)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민 11:16-25)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와 유사"로)

c. 중대한 교회의 결의에 대하여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교회는 장로들로 인하여 치리 되었으며, 신약시대에는 (예루살렘 공의회)로 당당한 치리권을 가지고 이방교인들에 대한 일체의 [신앙의 모범]까지 결정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중대한 일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나바와 바울이 [공의회]에 의하여 안디옥 교회로부터 안수 받고 [선교사]로 파송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공의회는 사도를 세우지는 않았으나 공식적인 선교사를 파송할 위력과 짱짱한 권위가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따로 세움을 입었고 이들을 안수한 것은 공의회였다는 사식을 주목해야 합니다. ( 행 13:1-3)

d. [리]가 말하는 목사직과 교사직에 대한 오해와 모순

[리]는 사도행전 13장을 통하여 교사인 니게르를 목사로 오인하고 있으나, 사도행전의 어떤 귀절에서도 니게르와 루기오, 마나엔이 [목사]에 해당하는 직을 수행한 것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e. 교회의 역사는 [회의]의 역사이다.

343년에 콘스탄틴 대제의 시절에 이미 [니케야 회의]를 통하여, 이단에 대한 규정과 예배 모범, 정경에 대한 연구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후로 중대한 교회의 [입장]과 교회의 [진리수호]에 대하여 많은 중대한 회의를 통하여 교회의 입장을 확인 혹은 정리했으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3) [리]에 의하면 사도적인 본래의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인데, 사도 바울을 통하여 천명되어지고 세워진 [목사직] [감독직]을 버리고 [교사직]으로 바꾸어 돌아 가자는 주장이기에 우리는 그를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리는 자신의 권위를 사도 바울 이상으로 잡고 있으며 리를 따르는 추종자들에 의하여 리의 권위는 사도의 권위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겸손을 가장하여 교사직을 말하나, 이는 교회의 중대한 회의의 전통과 목사직에 대한 오해를 유도해 내기 위한 기만전술입니다. 도리어 칼빈주의와 대치시킴으로, 자신이 보다 더 우월하다는 교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리]가 말하는 리의 기독교를 변질된 [대륙적기독교]로 부릅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결국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그의 추종하는 세력인 청년들을 중심으로 정통 교회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며, 이것으로 오늘날의 [형제교회] 및 [지방교회]를 탄생하게 했다는 도출되어 있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들은 기독교인 듯 하면서도 전혀 양태가 다른 이단입니다. 이들의 영성에서는 우리 정서와는 전혀 다른 [지하 저항운동]을 보는 듯 하며 또 다른 몬타니우스를 보는 듯 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3) 구원론

위트니스 리는 신과 합일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합일사상을 말하는 것으로,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을 자신을 사람 속에 넣어서 사람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같게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윗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p.10~11), 여기에서 "하나님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 이 말해지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 으로 말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는 것을 구원으로 말해지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10), (위트니스 리,「하나님의 경륜」, p.244).

이들은 (고전 15:45)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영이 되었나니"를 신합일주의의 근거로 삼고 있으며, 이 근거를 토대로 논리를 전개하여 체현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이 신비로운 연합, 신비로운 체험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왜 이들이 체현을 말하는 것일까요.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체현을 통하여 하나님이 되셨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를 믿으라" 이들이 체현을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지방교도로서 잘 믿으면 예수님처럼 될 수가 있다." 이 말에 지방교도들은 깊이 빠져 들었고 위트니스 리의 교리에 미치고 있는 중입니다. 아래의 증거는 이들의 주장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증거) ① "만일 당신이 요한복음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당신은 태초에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표현 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뒤 마지막에 그 분이 영이 되신다(20:22). 말씀이신 그 분은 땅에 있는 전기 줄이시다. 즉 그 분은 안테나이다. 이 두 가지 말씀이 영이 요한복음6장63절에서 함께 왔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안테나와 접지 선이 하나 될 때 전기가 온다. 말씀과 영이 섞여질 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달된다"(28. p. 39, 9-16줄 , 윗트니스 리 주장).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말씀과 영이 합해져 자기들의 속으로 들어 오신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말씀과 영이 전기처럼 전달되어진다는 주장이지요.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말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지방교도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전깃줄로 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 다만 형제일 뿐인 겁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인 하나님의 구별이 사라졌습니다. 창조주와 합일되어 버린 인간도 아니요 하나님도 아닌 귀신과 같은 존재들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이지요. 결국 이들에게서 나온 베뢰아에서 귀신론을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지방교도들을 살리는 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체로 들어 오셔서 자신들을 영은 하나님과 같이 되었고 다만 아직 인간인 몸으로는 죄를 지을 수도 있으며, 인간의 한계인 죄의 문제는 자신들의 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혼은 생각이며 그 생각 중에는 악한 생각도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아직 극복해내지 못한 어린 신자들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이들은 자신의 영 속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의 실체까지를 포함하여 넷으로 구분합니다. 즉, 영과 혼과 육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가 합하여 넷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증거) ② "그 분은 주, 말 씀, 영이라고 불리우는 한 분 인격이시다. 주님은 또한 생명이시며(요14:6), 말씀과 영이시다(6:63; 롬8:10), 주, 말씀, 영, 생명은 하나 안에 있는 넷이다"(28. p. 48, 하 2-4).

이들은 위의 논리로 그리스도를 자신과 동기화를 시키고 있으며 동기화 시키는 과정의 필수요건으로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하나님으로 말했다가, 한 분의 인격으로 말했다가 동시에 넷으로 말하면서 혼란을 증폭시키고 이것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고 혼란이 가중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이 약한 탓으로 돌리도록 유도하고 있는 겁니다. 다음은 이들이 어떤 구차한 논리로 지방교도들을 현혹시키고 있는지에 대하여 밝혀 줍니다.

증거) ⑤ "신약은 우리에게 완결된 영 생명을 주는 영이신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내주하심을 분명히 계시한다(롬8:2;9-11). 디모데 후서 4:22절은 주께서 우리 영에 계신다고 말한다. 복합된 생명주는 영이신 완결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 안에 내주 하신다. 의심할 바 없이 우리는 사람이지만 신성한 영이 우리에게 더해졌다"(27. P. 145, 5-10줄 ; 윗트니스 리 주장).

"생명을 주는 영이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신성한 영, 신성한 영이 더해진 우리의 영" 넷이 말해지고 있습니다. 혼돈 속에서 혼돈으로 연결되어지며 오리무중인 이들의 말장난은 어디까지 계속할 것인가! 다음은 이들이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제목의 찬송가입니다. 이 찬송을 보면 산 너머 산입니다. 아주 험한 험산 준령입니다. 이들이 찬송을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과 자신을 동질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의 충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

1절, 이제 우리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 되었네. 부활하신 하나님 사람 승천하여 그 영되셨네.

2절, 승천하신 예수로부터 내 영 안에 그 영이 임했네. 그의 모든 실제 이-제 우리 체험 되게 하셨네.

3절, 예수 그리스도의-영 모든 성분을 포함하였네. 신-성과 인성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 감춰져

4절, 이 영 안에 포함돼 있네 죽음의 효능 부활의 능력. 승천 보좌 권위와 왕국 하나님의 모든 성분이

5절, 이 영이 그 모든 성분을 내 영 안에서 역사하시네. 그의 기름부음 통하여 나도 주의 풍성 누리네

6절, 나의 모든 비결 되-신 만유 포함한 그 영 인하여. 하나님 내 모든 것 되어 내 안에서 역사하시네.
(위트니스 리, [성령], (서울:한국복음서원) 1989, p.48)

(4) 삼위일체론의 요소.

삼위일체론을 말할 때에는 중대한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 삼위 하나님의 각각의 존재방식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 분 하나님의 본질에 대하여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지와 어떤 방법으로 영생에 이르도록 견인해 가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기본적으로 풀어져야 하는 요소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상호내재 하신다고 설명으로 생략하는 것으로는 삼위일체론이 되지 못합니다. 이 요소가 설명이 되지 않을 때에 우리는 이단적이라고 말하며, 이와 유사한 다른 근거를 제시할 때 이단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전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양육되어지고 성장하며 최종적인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의 처소로 말해집니다. 모든 종교에는 종교의 배경이 되는 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경에는 어떤 기준으로 구원이 말해져야 하고 어떤 기준에 근거하여 양육되어져야 하는가 하는 기본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을 경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조건이 말씀되어지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으로 말씀되어지고 있는 구원의 조건은 창조주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이를 율법이라고 말하며 복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인간의 삶은 수천 년을 통해도 변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수천 년을 통과하여도 변치 말아야 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근거되지 않는 말은 철학이라고 말하며 인간수양이라는 뜻으로 "도"라고 말을 합니다.

성경은 귀와 절과 각이 서로 맞게 되어져 있습니다. 구약에서 말씀되어진 내용이 신약에서 나오고 있으며 신약에서 인용되는 글이 구약에서 출처되어집니다. 성경의 저자는 각 각이지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에 감동되어진 분들이 성경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각각의 시차와 역사와 문화를 달리하여 기록된 예언이 수백 년이 지나서도 이루어지는 것은, 저자들을 성령께서 감동하셨기 때문이라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풀기 위하여는 성령의 감동함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말씀이 뿜어져 나오거나, 성령에 감동되어 글이나 책을 써서 펼쳤을 때에, 그 말씀을 듣거나 글을 읽은 분들의 생각의 틀이 바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의 틀이 퍼지면서 사상으로 발전됩니다. 따라서 사상을 추적하면 어떤 생각인지가 나오며 과연 성령의 감동을 입은 생각에서 나온 글인지, 아닌지가 분별되고 판단되어지는 것이지요. 근거를 가지고 비판하는 것이며, 판단하는 것입니다.

(5) 지방교회의 "삼신론" 이라는 신조어에 대하여

기독교내에는 삼신론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구분 못하는 자들에게서 양태론이 나옵니다. 이것이 3세기에 일어난 샤벨리안 주의이며 그 유명한 "성부고난설"입니다. 양태론이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존재양태에 대하여 구별을 하지 못할 때에 빠져드는 이단사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샤벨리우스(Sabellianismus)를 따르던 분별력이 없는 자들을 통하여 사상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샤벨리안 주의 혹은 양태론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세계철학대사전, [사벨리우스 항목], (서울 : 교육출판공사, p.478.)

삼신론이란, 고조선 시대의 삼신 사상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천제 (환인), 천주 (환웅), 단군을 일컬어 삼신으로 불렀습니다. 따라서 지방교회의 김oo씨를 비롯한 지방교인들의 삼신론 사상은 고조선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며, 단군교와 밀접하지 않고는 삼신론을 말하는 기독교인은 없다는 점을 알아 두어야할 것입니다.

지방교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기독교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삼신론" 이라는 말로, 원세호 목사와 최삼경 목사를 조사한 통합측 교단의 이단심사위원들은 근거도 없는 지방교인들의 신조어를 양성화 시켜 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뢰와와 이명범씨의 레마선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던 통합측에서 베뢰와와 레마선교회의 원조격인 지방교회의 주장을 수용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6) 워치만 니와 지방교회의 영향

워치만 니의 영향을 받고 김기동 목사는 베뢰아 아카데미를 세워서 귀신론을 널리 펼쳤으며, 평신도였던 베뢰아 1기생인 이명범씨는 레마 선교회를 창설하여 평신도로서 성경 사역을 빌미로 하여 워치만 니의 사상을 고급 베뢰아로 발전시켜 각 교단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현재 베뢰와의 귀신론을 주창하는 인사들은 각 교단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실정에 있으며 워치만 니의 사상과 환영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복음을 변질시키고 있는 주역들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기복사상이 퍼졌고, 물질만능주의와 혼합되어 있는 인위적인 영성운동이 펼쳐지고 있고 지방교회 및 평신도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방교회와 워치만 니가 고후 3:17을 등장시켜서 인위적인 성경해석으로 접근하도록 운동한 덕분이지요. 그래서 베뢰아 및 이단들은 [자유적인 성경해석]을 외치고 있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용감한 평신도 및 교역자들에게서 자유주의신학이 판을 치게 된 것입니다. 이들에게서 [예수복음]이 주창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도깨비 방망이가 되어 흥부네 집의 박씨가 자라나게 하며 [대박]이 터지는 [세상복음]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워치만 니의 사상을 퍼뜨리고 있는 지방교회에서 줄기차게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내재하신다는 주장을 못 버리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는 이미 김oo씨와 지방교인들의 주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빌면 재림주이며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실체 그대로 자신들에게 오셔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자신들은 구별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주님으로 내 안에 깃들어 계시는데 어찌 나를 심판하시겠느냐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지요.

4. 지방교회가 이신론이라는 근거

워치만 니의 경륜을 인용한 지방교회의 김oo씨는 다음과 같이 출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와 떨어진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나타난 하나님이요, 그 영은 실제가 되신 그리스도이다" (87-경륜, 15쪽).이제 주(主)는 그 영이시니 (고후 3:17). 이 말씀은 성령이 그리스도와 떨어진 분이 아님을 증명한다. 주(主)는 그리스도 자신이요 또한 그 영이시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5). 여기에서도 성경은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가 그 영임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생명 주는 영이 성령임을 깨달아야 한다." (87-경륜, 15쪽)."


그리고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습니다.

" 누차 말씀드리지만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방면에 대해 무지할 때 양태론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태론이 아닙니다. 위 인용문의 출처를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87-경륜, 15쪽)이라고 되어 있지요? 그 책의 내용이 [경륜적인 방면의 하나님의 역사]를 다뤘다는 말입니다. 본질적인 삼위일체는 아버지, 아들, 성령님이 영원토록 구별되고 독립되십니다.

그러나 성경본문에는 마치 아버지가 아들이시고 아들이 성령인 것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이것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려하다가 나온 해석 관점이 바로 구속 방면의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경륜적인 삼위 일체인 것이지요. ["양태론이 아닙니다. 21631번 글을 형제 님이 남겨 주셨습니다.2003-04-20 오전 11:12:48에 작성된 이 글은 9번 조회되었습니다.] (출처 뉴조게시판)

위의 해설에서 주장하기를 몇 번을 말해도 이해가 안되지요? 하면서 자신들의 해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들도 이해가 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이야기가 됩니다. 위의 내용은 전형적인 양태론이며 이신론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이신론이다, 양태론이다 라는 지적을 피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해석으로] 경륜론을 등장시킵니다.

경륜론이란 인간 예수께서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순종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륜론의 해석 근거를 고후 3:17에 근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정작 주장하는 것은 고후 3:18절입니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지방교회는 삼위간에 대한 구별을 못하고 있음을 자신들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심히 고민하여 경륜론을 내어 놓았다고 말합니다. 성령에 의한 해석이 아니라, 워치만 니의 고민에 의하여 해석되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에게서는 성령께 감동되어진 흔적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인간이었다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보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령의 사역을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위적으로 대치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하 감옥에서 고민하다가 나온 사상. 그래서 이들을 [중국적 기독교] 혹은 더욱 세분하여 [중국적 예수교]라고 분류합니다. 이들에게는 실상 삼위일체론이 없습니다. 각각 떨어져 있고 두툼하며 비싼 책만이 존재하는 겁니다. 이단들에게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겉은 같은 데, 속은 전혀 다른 사상이 숨어 있는 것이지요. 이단성에 대한 비판은 이단사상에 대한 비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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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형식 목사    http://lwww.lordlove.org 


  지방교회를 대적하는 이유 


1.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상이 복음의 본질마져 훼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비틀어 짜보라. 피가 나올게다" 라고 증언했습니다. 영웅도 성경을 알아 보았다는 말이지요.

복음의 역사에는 그리스도의 피를 효시로 하여 사도들과 교부들 그리고 처처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런 복음을 훼손하는 자들에 대하여 지극히 분노함입니다.

2.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상은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을 노략했고, 많은 동역자들을 믿음의 법에서 파산시켰습니다. 혹 자는 위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상에 빠져든 그들의 책임이 아니겠느냐고 하겠지만, 책에 굶주려 있던 시절에 워치만 니의 사상은 이단인지 아닌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결국 이단으로 판정이 되어진 교회론과 기독론 그리고 성령론의 잘못된 사상에 대하여 판정이 있기까지 수 많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성경접근과 해석의 방법에 뿌리깊고도 치명적인 해악을 끼쳤습니다.

이단사상에 대하여 검증되어지기 까지의 기간은 교단별로 적어도 연구기간을 거쳐서 판정되기까지에는 2, 3년이 지나가야 합니다.

3. 이단으로 판정이 내려졌을 때에 이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상은 한국의 교회를 오염시켰고, 구원파와 베뢰아 와  신흥  이단종파들을 만들어 내는 토양이 되어있었습니다.

4. 단지 책을 사서 보았다는 이유로 이단이 되어졌다면, 이단의 책은 즉시 폐기되어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단으로 어렵게 판정을 내렸어도 엉기고 게기고 협박을 하는 행위로 저들은 자신들의 만들어져 있는 철밥통을 버리지 못하는 겁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 있는 헌금하는 교도들이 있는데 왜 그걸 버리겠습니까.

나중에 지옥에 갈 망정, 현실에서 등 따숩고 배부른데  여기가 천국이지, 나중에 회개하고 천국에 가면 되지 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찐저!!!

5. 천국을 말하는 것은 너무 오랜 후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결국 나중에 콩깍지가 벗겨지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자신들의 영혼이 황폐화 되어 있으며 정통교회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들의 몰골을 바라보며 이를 앙다물고 분개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6. 그리고 이들은 정통교회에 돌아 와서는 정통 교회의 목사와 신학자들은 그 동안에 무얼하고 있었느냐고 머리로 배를 들이 받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목사들의 질이 낮고 학력이 미달이고 자질이 빈약한 이유로 자신들이 방치되었다고 퍼붇습니다. 결국 이 분들이 목사를 비방하고 평신도 교회를 다시 찾는 이중의 순환구조를 갖고 교회를 비난하는 세력들이 됩니다. 정통교회에 돌아와서 온전히 정착하는 성도는 몇 안됩니다.

대개가 열심이 있는 목회자들이며, 열심이 있는 성도들이었지요. 더 잘 믿어 보려고 했던 노력으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예수 복음 타령]에 넘어가서  이 시대 이 거리의 방랑자가 되어버린, 신파극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이 말입니다.

7. 이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먼저는 넘어간 자신에게 있겠고 다음으로는 지방교회가 이단이라는 확고함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있고 다음으로는 삼위일체론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못한 목회자와 신학자들에게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 인터넷 세계 선교회] 대표 안형식 목사

Read : 36,  2004/07/16 Fri 10: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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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동훈 


  반박글입니다.(펀글) 


출처: 합동교단 자유게시판
제목 : 답변(반박)글입니다. 작성자 : 김00

최대한 객관적이고 균형있는 내용이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1. 워치만니, 위트니스 리사상이 복음의 본질을 훼손했다?

복음의 본질은 <주님자신>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역사하심>입니다. 워치만니와 위트니스 리
는 그리스도와 교회, 또는 생명되신 주님과 그분의 충만(엡1:23)을 너무 말해서 탈이라면 탈입니
다. 1) 안형식 목사님이 보시는 '복음의 본질'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위 두 분이 2) 구체적으로
'어디서'(출처) 3) '어떻게'(내용) 그 복음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말씀인가요? 근거있는 답변을 부
탁드립니다.


2. 이단으로 판명되어진 교회론, 기독론, 성령론의 잘못된 사상?

1) 누가 2) 언제 3) 어떤 내용의 교회론, 기독론, 성령론을 4) 어떤 기준으로 이단이라고
판정했다는 말씀입니까? 오히려 이를 무리하게 비판하던 예장 통합측 모 목사님이 소속교단
에의해 아타나시우스의 신조와 다른 삼신론 사상 소지자로 판정된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 구체적인 표현은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처럼 그 성도들이
거주하는 경계를 기준으로 한 교회들(복수)로 나타난다는 것이 이단적인 교회론인가요?


3. 이단으로 판정이 내려졌을 때, ..신흥 이단 종파들을 만들어 내는 토양?

현재 (지방)교회를 이단이라고 공식 판정한 교단은 통합측과 고신측 두 곳 뿐입니다.

그런데 <통합측>은 (지방)교회를 이단이라고 연구하여 보고한 당사자(최00 목사)가 교단 이대
위소속 이단상담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지방교회를 양태론이라고 몰아부친 바로 그 판단기준
(하나님은 한 영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 영들의 하나님이다. 세 인격이나 한영의 하나님이라고 말
하면 양태론이다 라고 주장)이 아타나시우스 신조와도 상충되는 삼신론 이단사상이라는 결론이
났습니다. 재단한 기준인 자가 틀렸다는 말입니다.

고신측은 정순행 총회장님 명의로 <성경>이 아니라 웨스트민스터신조 등<장로교 교리>로 판단
한 것이니 양해를 구한다는 해명서를 보내왔습니다. 각기 자기 교단교리로 남을 판단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절대기준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서로 간에 이단이 될 뿐입니
다.

워치만니 위트니스 리 책자를 전적으로 출판하는 리빙스트림미니스트리는 미국 성서공회
토마스 넬슨 출판사, 존더반 출판사, 무디 프레스 등등이 회원으로 있는 미국복음주의출판사
협의회(ECPA) 정회원입니다. 물론 엄격한 신앙 검증을 통해 가입되었고 지극히 복음적인
출판물이라고 인정되었습니다. (http://www.ecpa.org 참조).

지엽적인 교리에 이견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는 참되게 거듭난
주 안의 형제요, 복음적인 성경 교사입니다. 합동교단이 기장측이나 통합측 감리교 쪽을 포용하
는 그 범주라면, 성경의 무오성, 처녀탄생, 대속적 죽음, 몸을 가진 부활, 주님의 재림과 기적을
믿는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를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처사입니다. 아시분들은 다 알
듯이 당초에 통합측이나 고신측이 (지방)교회를 일방적으로 이단이라고 했던 것은 사실은 이런
교리나 진리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몇 년을 연구한 결과도 아닙니다.


4. 단지 책을 사서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단이 되었다면? 철밥통? 나중에 지옥?

주장하시는 핵심 요점이 무엇인지요?

참되게 거듭난 사람이 더 깊은 진리를 추구해 나가다가 워치만니와 위트니스 리의 책자를
읽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두 분의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구원이 취소
되고 지옥가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칼빈의 성도의 견인 교리와 모순이 생기지 않나요?


5. 천국을 말하는 것은 너무 오랜 후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천국에 장래 도래한다는 면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엄연히 현세적 천국도 말하고 있습니
다. 즉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마5:10)에서 동사
시재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6. ???
7. ???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풀린 말, 근거가 없는 엉뚱한 말, 자기 추측에 불과한 말은 다 사실아님으로 거짓말의 범주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해에 오해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의 아비인 사탄 마귀에게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간시키는 도구로 악용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서 비판할 때에도 <참되게 아는 만큼> 그리고 <진실에 근거한 것만> 이런 공간에
소개되기를 바랍니다.

Read : 22,  2004/07/17 Sat 10: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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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안 형식 목사님께... 



예전 저의 친정 아버님께서는
건축일을 하셨더랬습니다.

봄에 시작하신 집짓는 일이
간혹 장마기간이 길어져서
마지막 정리 공사를 마치지 못하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좀 무식하면서 돈이 좀 있는 시골의 아저씨 중 한분은
밤중에 술에 잔뜩 취해가지고 저의 집에 찾아오셔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댓습니다.

속좋으신 저의 친정 아버님은
서너시간이나 달래고 어랠시며
장마 그쳐야 무슨일을 해도 할 것이 아니냐며
날을 거의 새셧지만

이 막무가내 아저씨는 새벽 두세시까지
동네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대더군요...

전 그때 형기왕성한 20대 초반이였더랬습니다.
그 아저씨의 막무가내도 참을 수가 없고
그저 죄인처럼 술취하신 분을 달래는
아버지도 이해가 되질않아

참다 참다 새벽 두시반쯤이나 되어서
나가서 한마디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죄를 지어는지는 모르지만
이 새벽에 남의집에 찾아와 서너시간이나
이러시는 것은 상식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니냐라고...

갑자기 어린 제가 한마디 한소리에
놀라셨는지 시계를 보더니
미안하다고 몇번이나 하시더니
이렇게 늦은 시간인지 몰랐다면서
돌아가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곳 '나눔방'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서
주님을 누리고 체험하고 한것을

함께 전람하는 얼마간은 좀 편안한
그런 글을 올리는 곳입니다.

목사님이 보시기에는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상식을 언급하신 분이시니
그저 상식선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이곳은 이런 화염병을 터트리기에는 합당한 곳이
아닙을 알려드립니다.

갑작스레
이렇게 남의 방에 들어오셔서
마구잡이 욕설^^을 퍼부어 대시니
당혹^^스럽군요..

개인적으로 무슨 일이 있으셨기에
여긴지 저긴지도 구별을 안하시고
그저 '지방교회'란 단어에 질겁을 하시며
이렇게 무례를 범하시는지...

길게 길게 쓰신글을
제가 지우면
혹이라도
말씀도 잘하시고 논리적으로 따지기를
좋아하시는 분으로서의
안목사님께서
저처럼 무지한 사람과 사소하지만
언쟎은 일이 생길까 싶어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부디 본인의 글을 가져가시길...

인테넷이란 공간이 비록 열려있기는 하나
그래도 각 방마다 특성이 있고
그 특성을 따라 사람들이 모이고 또 함께 글을 쓰는 것이
인터넷 안에서의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골 촌사람도 아니시고
일반 평신도도  아니신 목사님께서는
최소한 글을 올리시려면
그정도는 생각을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자신의 감정이
폭발한다하여
남의 방에 와서 온갖 배설물를 흐려보내는 것은
목사님으로서 기본 체통도 안서는 일이겠죠...

이 방의 방장이며
평신도로서 목사님께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Comment : 1,  Read : 32,  2004/07/16 Fri 19:57:25


비자  한마디 덧 붙이자면... 앞으로 이런 글(방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을 다시 올리신다면 사전 통보없이 목사님의 글의 분위기에 어울리 방(토론방)으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참고하시길...
200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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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주여, 우리(저와 안목사님, 지방교회)를 불쌍히 여기소서 


안목사님의 글과, 방장님, 그리고 반박글에 형제 사랑이 없음을 느끼며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주여 우리로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으로 사랑을 보이셨건만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은 어찌하여 이리도 불쌍하고 편협하며 미움만 가득한 마음인지요? 주여 우리로 십자가를 알게 하소서.....

우리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통해 걸어가소서. 주님은 사랑이요, 자기 부인이요, 온유함이요, 생명이시며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몸인 교회(이땅의 모든 믿는이들)로서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아무쪼록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해 하는 우리들,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더욱 확대되게 하는데 간절한 우리들, 내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힌 삶을 실제적으로 사는 우리들, 우리안에 거하시는 기름부으심을 실제로 알고 따르는 우리들, 사랑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이 되게 하소서.

방장님, 주님께 돌이켜 마음을 다스리소서.

안목사님, 주님을 위해 열심을 내는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허나 사실에 바탕을 둔 비판이 주님을 위하는 것일 것입니다. 최삼경 목사님, 원세호 목사님, 그리고 원목사님의 글을 바탕으로 한 안목사님의 글엔 사실이 아닌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에게 사실 장로교나 지방교회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구는 장로교에, 누구는 지방교회에 속하면 이는 곧 주님의 몸을 나누는 것이요, 주님을 기쁘게 하지 않은 잘못된 것입니다.

참된 지방교회는 한지방의 모든 성도들를 포함한 개념의 지방교회요, 참된 교회는 이땅의 모든 성도들을 포함한 교회입니다.

주여 이땅에 참된 지방교회가 일어나게 하시고, 참된 교회가 일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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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 


  안목사님!! 책 한권 소개해 드릴까요?? 



제는 작은 읍내에 사는
정말 촌사람이지요...

그래도
주님을 사랑하는 거라면
안목사님 뒤지지 않을 겁니다.

교계에 대한 넓은 안목은 없을지 몰라도
그래도
이런 저런 교계의 흐름은 조금 알것도 같습니다.

몇년 전부터
최삼경 목사님이 우리를 양태론자라고 마구 밀어붙이다
작년부터인가는
되려 자신이 삼신론자가 되어
본인이 속한 교단에서 '이단'으로 몰려
재명당했던 사실도 있죠.. 아마...


이번에 '예장연'에서 발간한
'정통과 이단 종합연구서'란 책 한번 구해
읽어보심이 어떠실지...

그책의 발간 목적이
제가 알기로는 170개의 장로교단 중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의 소속 80여개의 신학대학의
'성경적인 이단성판정'에 대해 합당한 기준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 연구해여 만든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책의 p442-443에 보면 윗치만니, 위트리스리 형제님과
그리고 지방교회에 대해 객관적인 소개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제가 약간 인용해보면...
'일부 비판자들은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판하고 있으나,
이는 전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들이 평신도들이라는 점에서
수용 가능한 부분이며 심각한 신학적 문제는
드러내지 않고 있다'라로 쓰여 있으며
'고신과 합동, 통합 등에서 이단으로
구정했으나, 재론의 필요성이 있다'라고
결론을 내린 것을 읽어 볼 수가 있습니다.

그저
내 이론에 내 생각에 이단 같으니까 이단이다...라는 식이거나
아니면
별로 철저한 연구도 없이
더구나 장소 구별도 안하고 아무데나 대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정말 상식없는 짓입니다.


-- 웟치만 니나 윗트니스 리는 불교적 분위기에서
자란 분들이 아닙니다.
삼대에 걸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으며
그분들의 모친들은 그 시대 상당한 신교육을
받은 분들로 어린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그시대에서는 아주 개혁된 사고를 가진 분들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웟치만니 형제님 같은 분은
1세기의 교부들의 문서로부터
형제님의 시대에 까지의
모든 영적인 서적들을 철저히 연구하고
종합 분석함으로서 성경을 연구했던
참으로 진지한 분들이십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조금씩 읽고 내 생각과 다르니 이단이다!!라는
식의 반론은 앞서 안목사님의
선배쯤 될 법한 최삼경 목사님의 사례가 있으니

되도록이면
좀 자중하시어 참된 연구 방식으로
그리고 좀더 진지한 자세로
내가 글을 어디에 올려야 합당한가에 대한
기초적인 생각부터 명료이 하시는 것이 어떠실지...

'하나님의 이기는자' 홈피에도
목사님들 같은 분을 위해 '토론방'이라는
화약냄새 나는 방도 만들어 놓았건만...
최소한의 방구별을 좀 하시길 바랍니다.

안 목사님!!
이 책 '정통과 이단 종합연구서' 한권 사셔서
한국 교계에 큰 흐름과
또 성경을 근거로한 기준에 따른
'이단성 판단'을 연구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감정에 치우지지 않은... 그런 연구를 부탁하면서...

Read : 14,  2004/07/17 Sat 16: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