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08회 - 서로 사랑하십시오
에세이
청지기 , 2022-11-11 , 조회수 (641) , 추천 (0) , 스크랩 (0)


  만 4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약간의 치매기가 있으신 연로하신 어머님도 뵙고, 제주도에서 있는 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교회들을 방문하여 한 몸 안의 지체분들과 소중한 만남과 교통을 나눴습니다. 예전 같으면 QT 자료인 아침 부흥 책자를 챙겨갔을 텐데,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최근에 있었던 국제 컨퍼런스 개요집만 가지고 갔습니다. 주제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기적인 건축을 위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함’이었습니다. 2주간의 여행 동안 아침마다 아래 말씀을 포함한 관련 구절 혹은 개요 일부를 묵상하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사랑에 대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전보다 더 깊이 제 존재 안에 새겨졌습니다. 앞으로 주님 앞에 서기 전까지 아래 한 구절의 말씀만 온전히 실천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새 계명을 여러분에게 줍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요 13:34).

 

 

  나이를 점점 먹어가면서 경험하는 한 가지는 무엇을 들어도 그것이 쉽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말이 진지하게 다가오고, 생각에 변화를 일으키며, 행동으로까지 옮겨지려면 평소보다 더 큰 충격력이 필요합니다.

 

 

  한 예로, 위 말씀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래 맞아. 주님이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지.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야.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 해’ 정도까지는 제 안에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위 말씀이 주님의 엄중한 명령으로 다가오고, 어떻게 해서든지 제 삶에 적용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무거운 부담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관련 주제에 대한 추구와 묵상을 통해, 사랑에 대한 ‘왜?,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이해가 제 안에 더해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왜 서로 사랑해야 하는가?성경에는 많은 요구와 권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계명’(commandment)이라고 할 때 그것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즉 그것을 어기면 반드시 그에 따른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민수기에는 안식일에 (계명을 어기고) 나무하던 사람이 진영 밖으로 끌려나가 돌에 쳐 죽임을 당한 이야기가 나옵니다(민 15:32-36).

 

 

  물론 신약에서는 계명을 어겨도 이처럼 육신이 죽임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영적인 죽음을 맛보게 됩니다. 그 근거는 요한일서입니다. 이 책의 주제는 신성한 생명의 교통인데, 이 교통을 끊어놓는 두 가지가 바로 ‘자백하지 않은 죄들’(1:5-2:2)과 ‘하나님과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2:311)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통이 끊어진 상태가 바로 영적인 죽음입니다(롬 8:6 상). 오 얼마나 많은 때, 이러한 죽음의 상태에 머물며 생명이 자라고 사랑이 우리 안에서 증가할 기회를 놓쳤는지요(살후 1:3). 이것은 마치 거북이와 경주하던 토끼가 낮잠을 잔 시간과도 같습니다. 성경은 ‘시간을 아끼십시오. 왜냐하면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합니다(엡 5:16).

 

 

  무엇이 사랑하는 것인가?이번 여행에서 “어쩌다가 사모가 되어” 19년 간 남편이 목회하는 동안, 자신 안에 사랑이 없는데 사랑을 해야 하는 사모의 위치가 너무 괴로웠었다고 고백하는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자신은 사랑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인지를 정말 몰랐다고 했습니다.

 

 

  만일 전에 누가 제게 같은 질문을 했다면 똑 부러지게 답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 중에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정의한 네 구절(4-7절)의 15가지 항목들을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고 외우면서 사랑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랑은) 남의 잘못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does not take account of evil)(5절)”라는 말씀이 저를 깊이 폭로시켰습니다. 얼마나 많은 경우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자기가 받은 상처와 그 상처를 준 사람을 곱씹음으로, 쉽게 계명을 어기고 영적인 죽음에 빠져있게 되는지요!

 

 

  그 외에도 국제 컨퍼런스 개요에서 다룬 ‘서로 사랑’에 대한 아래 여섯 항목들이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남은 일생 동안 이것들을 실천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1) 서로를 위해 기도함. 2) 서로에게 친밀한 관심을 가짐. 3) 서로 소중하게 보살피고 보양함(cherishing and nourishing). 4) 항상 서로를 덮어줌. 5) 서로에 대해 좋게 말함. 6) 결코 서로의 실패나 결점을 드러내지 않음.

 

 

  어떻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나?위 본문에서 ‘서로 사랑하십시오’에서 쓰인 동사는 신성한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파오’(25)입니다. 우리 안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일한 길은 이 사랑이신 분과 긴밀히 연결되고 적셔져서 그 인격이 우리 존재를 통해 나타나시게 하는 것뿐입니다. 아침에 읽은 신명기 말씀에 따르면, 1)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순종), 2) 그분을 굳게 붙잡음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신 30:20, 원문 참조). 더 구체적으로 하루에 한 구절의 말씀을 20번 정도 천천히 읽고 묵상하고 외워서,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형제자매들을 대하고 또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 것입니다(요일 2:5).

 

 

 

오 주님, 서로 사랑하라는 이 새 계명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지켜짐으로 

우리 모두가 ‘형제 사랑’의 교회생활 안에서 발견되게 하여 주옵소서!

에세이,서로 사랑하십시오,요한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