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무슨 일이 있었든지 간에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하루가 모두에게 날마다 주어지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매일의 아침은 그날의 첫 단추와도 같습니다. 다시 새로운 역사가 이 아침에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역대로 경건한 사람치고 늦잠 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알파와 오메가’시요 ‘처음과 마지막’이신 그분께 나아감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 시간은 사랑하는 그분과 독대하는 시간입니다. 그분의 임재 안에서 그분의 영광 빛으로 적셔지는 시간입니다. 마치 주유소에 가서 자동차에 기름을 넣듯이, 우리에게 주신 그 하루를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는 영적인 기름을 넣는 시간입니다.
이런 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한다는 정해진 법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분께 나아갈 때 모든 다른 것으로 점유됨에서 나와서 그분께만 초점을 맞추는 것, 성경 말씀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시냇물’을 마시려는 목마른 사슴같은 간절함이 요구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성경을 펴서 매일 한두 구절 혹은 몇 구절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읽는 것이 도움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펴서 읽은 부분은 고린도 후서 12장 1-10절 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1절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묵상했습니다.
“자랑하는 것이 참으로 무익하지만, 내가 자랑하지 않을 수 없기에, 주님의 이상과 계시를 말하겠습니다.”
바울은 ‘자랑하는 것이 무익하다’고 말합니다. 주님,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 어떤 자랑도 뭇사람들 앞에서는 몰라도 당신 앞에서는 무익할 뿐입니다. 대단한 자랑거리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빛이 바래질 뿐인데, 하물며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요 항상 새로우신 당신 앞에서 그 어떤 자랑을 할 수 있을는지요. 마음 깊은 속에서 헛된 자랑과 헛된 영광을 구함에서 구원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또한, ‘바울이 조금 자랑 할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은 무엇인지요’하는 질문을 주님께 드려봅니다. 아울러 앞의 말씀에서 읽었던 고린도 교회가 현재 처한 상황을 떠올려 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와 목양을 받았지만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유대교도들)을 잘도 용납했습니다. 이 틈을 타서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한 거짓 사도들은 고린도 성도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마음은 바울만 아니라 그가 전한 신약의 사역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만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오직 그리스도로만 충만되는 신약 경륜의 진리로 다시 돌아오도록 뭔가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바울은 부득불 자랑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랑은 일반적인 자랑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업적이나 장점을 자랑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바울은 이미 이런저런 환경을 통과하면서 “주님의 능력이 사람이 약할 때 온전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체험한 ‘주님의 이상과 계시’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 아침에 그가 본 “셋째 하늘”과 “낙원”을 포함한 “엄청난 계시들”이 무엇인지를 다 소화할 시간이 없긴 하지만, 주님께 받은 계시와 이상을 다루는 참된 주님의 종의 태도와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하심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사실 요즘도 무엇을 보았다며 여기저기 다니며 간증 집회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크고 작은 혼란도 생기는 것을 봅니다. 미국에서 모 목사는 L.A.에 곧 지진이 나니 최대한 빨리 비즈니스와 집을 팔고 애틀랜타로 이주하라며 구체적으로 이사할 곳까지 지정해 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방 일어난다는 지진은 시간이 지나도 나지 않았고, 새로운 장소에 가서 적응하기도 쉽지 않아 결국 다시 살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급히 비즈니스와 집을 파느라고 경제적 손실을 본 것도 문제이지만,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참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도 갖게 될 불신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손실입니다. 최근에 한국에서도 곧 전쟁이 난다며 일부 기독교인들이 우왕좌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미 마지막 때에 사탄이 “온갖 불의의 속임수로 멸망하는 사람들을 속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리’ 이외의 것들을 관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착오를 일으키는 힘을 보내시어 거짓 것을 믿도록 하실 것”을 경고합니다(살후2:9-11). 만일 어느 누가 어떤 식의 예언과 계시의 말을 하더라도 그 안에 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보여 준 ‘그 분위기와 맛’이 없다면 가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바울은 하늘의 계시와 이상을 말하되, 극도로 “자제”함으로(6절)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2절). 오히려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고(5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했습니다(10절).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그의 고백대로 이런 일에서도 그리스도의 인격이 그를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은 그로 인해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영광을 나눠가지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그로 인해 그리스도 한 분만 나타나기를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바울 자신은 최대한 ‘약해져야’ 했습니다. 이 아침에 실제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살고 표현한 바울의 인격이 제 마음에 잔잔한 감동으로 누려집니다.
오 주님,
오늘 하루도 바울이 체험한 그 은혜를 우리도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 당신의 능력이 우리의 약함을 통해
온전히 나타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