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05회 - 휴거(2)
에세이
청지기 , 2022-10-25 , 조회수 (428) , 추천 (0) , 스크랩 (0)


휴거에 관한 두 번째 글입니다. 얼마 전에 우연한 기회에 어느 한 침례교 목사님과 휴거에 관해 이 메일을 주고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죄 사함 받고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은 모두 장차 동시에 휴거되고 천국에 곧바로 입성한다.’ 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지방 교회 측이 거듭났어도 첫 열매로 휴거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행위구원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분에게는 장차 있을 휴거가, 영적 생명이 성숙한 익은 곡식을 수확하는 문제라는 개념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휴거 문제는 참된 믿는 이들 간에도 이견과 다툼이 있어 온 복잡한 주제입니다.

 

 

며칠 전 아침에 산책하면서 아래 말씀과 관주들(살후2:1, 계12:5, 마24:40-41)을 읽고 묵상했습니다.

 

그 후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살전 4:17).

 

위 말씀에서 “이끌려 올라가”가 곧 휴거(携擧)입니다. 그런데 위 성경 본문이 주님의 재림 시까지 살아 있고 또한 ‘남아 있는’(alive and remain)이라고 말한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 말씀은 ‘대환난을 통과한 후에 여전히 (살아) 남아 있는’의 의미입니다. 믿는 이들 중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위 말씀이 말하는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는 본문이 계시록 14장입니다. 즉 이 14장은 크게 볼 때 대환난 전에 시온산으로 휴거된 십사만 사천 명(첫 열매)(1-5절), 3년 반의 대환난(6-13절), 이러한 대환난 후에 익은 곡식들이 하늘로 수확됨(14-16절)이라는 세 단락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첫 열매’(4절) 혹은 ‘익은 곡식을 거둠’(15절)과 같은 추수 개념이 담긴 언급들입니다. 따라서 이 두 단락을 함께 본다면, 위 데살로니가 전서 4장17절이 말하는 ‘살아남아 있는 이들’ 은 곧 계시록 14장의 ‘대환난 후에도 살아남아 있는 익은 곡식들’(믿는 이들)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미처 익기 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 익게 되는가? 얼마나 익어야 추수되는가? 저절로 익는가 아니면 사람의 노력이 필요한가? 등의 질문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의문점들을 짧은 지면에서 다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면들을 묵상해 보고 성경을 통해 답변을 얻는 과정을 가져보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휴거 문제를 묵상하는 중에 제가 얻은 빛은, 우리의 믿음 생활은 생명의 씨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존재 안에 뿌려져 자라시고 추수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의 자람을 막는 몇 가지 내적인 장애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깨어 있는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주님의 경고의 말씀을 귀 담아 듣고, 힘써 생명의 성숙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조금 더 살을 붙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의 씨로 우리 안에 뿌려지심은 익은 낟알로 추수되기 위함임

“하나님의 왕국은 이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리고서 밤낮 자고 깨고 하는 동안에 그 씨가 싹트고 자라지만…처음에는 잎사귀이고, 다음에는 이삭이며, 그다음에는 이삭에 꽉 찬 낟알입니다그러나 열매가 익으면 즉시 낫을 대는데왜냐하면 추수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막4:26-29).

 

 

생명의 성숙에 사람의 동역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쟁은 성경이 해답임

이 문제는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입장과 ‘사람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전자는 개혁신학 쪽이 후자는 성결교단 감리교단 등이 선호합니다. 개혁신학 쪽은 후자를 소위 ‘반 펠라기우스주의’ 혹은 ‘행위 구원’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쪽은 거듭난 후 은혜에서 떨어질 가능성(갈5:4)을 간과한 약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은혜에서 떨어짐으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적인 생명의 성숙이 지연된 책임은 우리에게 있으며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습니다주님은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우리 모두에게 이 문제를 엄중히 묻고 심판하실 것입니다(고후5:10, 롬14:10). 따라서 개혁 신학 쪽은 성급한 정죄보다는 아래와 같은 말씀들을 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에 두 남자가 밭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 둡니다.”(마24:40)

“그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마7:20-2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능동 수동의 원칙을 따름

“여러분이 육체를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지만, 그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롬8:13) 라는 말씀에 대해 신약 회복역 성경 각주는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았습니다.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하지만 반드시 그 영으로써 해야 한다한 면으로는 우리가 먼저 주도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 그 영은 우리를 위하여 그 일을 행하지 않으신다. 다른 한 면으로는 우리는 성령의 능력도 없이 우리 자신이 노력하여 몸을 처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각주3).

 

살아 있는 믿는 이들이 휴거되는 조건은 생명이 성숙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환경 속에서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자라시고(골2:19), 충만 되시게 허락해 드려야 합니다. 만일 실패했으면 즉시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자백하고 돌이켜, 신성한 생명이 분배될 수 있는 상태인 (생명의) 교통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요일1:3, 7-9).

 

결론적으로, 성경의 균형 잡힌 가르침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늘 운행하시지만 우리의 순종에 따라 그 은혜가 열매를 맺거나, 불순종에 따라 그 은혜가 거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부된 결과에 대한 엄중한 책임은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히12:28, 각주1 참조).

 

 

오! 주님, 이 시간도 우리 모두가 당신의 넘치는 은혜 안에 머물게 하소서!

우리 안에 떨어진 생명의 씨가 자라고 익어 이른 추수 때에
첫 열매로 거둬지게(휴거되게) 하옵소서! 아멘.

에세이,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