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환님의 모음글들
성경진리토론방
, 2004-06-30 , 조회수 (257) , 추천 (0) , 스크랩 (0)
그간의 사두환님의 글들을 따로 정리해서 올려 놓았습니다..
본게시판에 사두환님의 글들로만 점유되어있고 자칫 오해를 가져올수 있어서 취한 운영자의 정리 이오니 이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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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앞에 설 자 누구인가!   



공의 앞에 바로 설자는 이 땅에 그 누구도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므로 가능한 것일 때
성도인 우리가 바로 그들인 것이다.

동시에 공의는 성도인 우리를 끊임없이
그리스도 앞으로 몰아가게 하는 그물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그물을 벗어나서도 안되며
벗어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바로 이러한 그물을 벗어나려 거나 벗어났을지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기를 원하고
또한 충분히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하는 모토로 제시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이러한 상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기를 원하거나 머물러 있다면
그 심령은 올바른 회개가 상실된 상태의 지속이기 때문에
그물 안에 든 상한 물고기로서 존재할 것이다.

이 상한 물고기는 주의 때에 천사들이 반드시 다 가려낸다고 하였다.
때문에 성경은 이것을 우리들에게 엄히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은
교회 안에서 실제로 되어질 일이기 때문인 것이다.(마13:47-50)

따라서 그리스도의 세계에 있는 우리들은 공의로 형제를 지적할 수가
있는 것이며 동시에 상호 지적을 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라가 라 하는 심판 적인 말은 삼가고
오직 형제와 같이 지적하라고 하였다.(살후3:13-15)

진리의 세계는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현대는 이러함을 외면하고 무시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공의로 애써 지적하는 마땅한 형제애를 비판하는 말다툼과 말장난으로 대하며
심지어 많은 지도자들은 라가 라고 까지 말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한국교회여!
부디 지금에서라도 형제가 공의로 지적하는 우리들의 허물에 대하여
살갑게 받아 드리는 진솔함의 자리를 기뻐하시기를 바란다.
이러함을 몸소 우리가 실천함으로
그가 곧 그물 안에 든 참 보수며 동시에 자신의 진정한 진보를 나타내며 개혁을 이루는
교회의 한 일원으로서 참다운 천국 건설의 일군 됨일 것이다.

말세를 당한 이즘에 기록한 성경 밖에서 활동하는 지도자가(고전4:6) 대거를 이루며
또한 앞장서서 상한 고기를 자처하며 많은 이를 자신과 같이 미혹하고
있음을 영안으로 잘 살피는 지혜가 꼭 필요한 시대임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Comment : 1,  Read : 35,  IP : 219.250.177.183
2004/06/16 Wed 09:25:47


갓맨  오늘 아침에 주님 앞에서 이 한 말씀을 묵상햇습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롬8:4). 06/17 00: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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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리더쉽   


지도자의 리더쉽은 모든 일상신앙의 언행일치가 말씀에 준할 때
자생하는 것으로 이에 성도에 대한 마땅한 통솔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는 항상 성도의 모범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에서 벗어나는 언행의 곤란은 스스로 통솔력을
잃어버리게 되어져서 결국 교회 안팎으로 지도자의 문제가 불거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현대는 바로 이러한 지도자의 문제가 급부상하여 이로 인하여
교회가 마땅히 가야 할 방향을 상실하고 우왕좌왕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표리부동한 지도자들의 여전한 대거 활동에 의하여
마침내 현대의 한국교회는 표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해도
결코 크게 지나침은 아닐 것이다.

이러함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성령의 감동에 의한 말씀 증거에서 차츰 씩 벗어나면서부터 이다.
곧 말씀의 이해를 세상의 학문과 지식의 이해, 습득하는 수준의 학습법으로
몰아가는 식의 가르침과 설교에 의한 것이 제 일의 원인인 것이다.(마15:8-9)

현대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문제의 교육과 가르침이 대부분의 설교에서
부분적으로 돌출 되어져 나옴을 쉽사리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설교자의 만연에 의하여 지도자는 물론
성도 마저 영성의 피폐함을 벗어나지 못하여
드려지는 예배가 오히려 헛된 예배가 되어지고
이로 인하여 결국에 되어질 공허한 심령과 피폐된 영성에 의하여
바른 교회와 세상에 지탄의 대상이 되어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교회에 현 주소인 것이다.
 
  Comment : 2,  Read : 40,  IP : 219.250.177.183
2004/06/15 Tue 07:43:46

갓맨  ...일치된 삶을 살 때 06/16 03:40:23 
갓맨  참된 지도자는 우리 모두의 머리이신 주님 자신입니다. 지도자들의 리더쉽은 이 주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방향과 하시는 내용과 일치된 사람을 살 때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은 이땅에 오셔서 '생명(주님자신, 요11:25)'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요10:10). 그러므로 생명의 통로가 되는 지도자는 참된 지도자요, 생명과 무관한 일에 열중하는 지도자들은 실상은 '허깨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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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된 설교   


일반적으로 설교는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의 설교는 하나님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인 만큼
누구나 다 가능한 일만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리고 교회설교의 방법에 있어서는
여러 다양함에 대하여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설교자의 자질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필히 그 요소를 갖추어야만 한다.

곧 자신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짐에 있는 것이다.
유, 무식을 떠나 이 근본에 합당한 자에 설교의
결국에 있어서는
온전히 모든 것을 주 앞으로 인도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드려짐에 합당치 않는 설교자의 내심에는
자기 자신의 뜻과 소원과 의지를 완전히 비우지 못함에 있기 때문에
설교에 있어서 반드시 말씀을 빙자한 자신이 이것들이
주장되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대는 바로 이러한 설교의 물결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현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많은 지도자들이
자신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주를 따르며
동시에 지도자의 노선에 서 있기 때문에
그들의 설교에서 항상 자신의 것들이
노출되어 불거져 나옴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설교에 있어서는
온전히 드려짐에 있는 자라면 그 신분이
목사가 아닌 성도일지라도
충분히 교회의 설교자가 될 수 있는 것임은
주안에서 허락되어 지기 때문이다.

현대교회가 설교 자격의 유무에 초미의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위와 같은 근본적 자질을 갖추지 못한 자의
설교에 의하여 뭇 성도의 심령을 공허하게 함이
지나침에 있기 때문에
그 결과에 의하여 저절로 파생된 문제가 낳은 결과인 것이다.
 
  Comment : 1,  Read : 32,  IP : 219.250.177.239
2004/06/25 Fri 07:32:47


겨자씨  교회를 건축하는 설교만(고전14:4 신언, 예언)이 참된 설교이겠죠. 무엇보다 특정한 신분의 사람들만이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은 성경의 사상이 아닙니다(고전14:1, 5) 종교적 전통과 내면의 자아의 방해를 뿌리치고 성경의 말씀을 따라 하는 실행(설교, 신언, 예언)이 필요할 때입니다. 06/25 10: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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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소유한 세상심판의 권세   



성도의 결국은 주의 심판과 함께 하는 권세가 있으며(마19:28,계20:4)
동시에 세상과 천사 마저 우리의 판단할 대상에 불과하다.(고전6: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법과 정치 사회 언론에
스스로 연루되어 그 아래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성도가 되어 자멸을 자초하는
미련한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은
하루속히 이에서 벗어나기를 권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속된 것의 방법들을
그대로 교회에 적용하는 자들과 그 일들에서
속히 떠나는 것이 지혜요.
관계하거나 간섭하는 것이 오히려 미련한 것은
이들의 끝없는 혀의 오라줄에 결국에는 자승자박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국은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이
혀를 앞세워 혀로만의 정치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를 탓하기 이전 교회가 혀로만의
교회가 먼저 되어진 것을 회개해야 할 일이다.

참 성도 된 우리라면 교회와 정국에
거짓 혀로 역사 하는 어둠의 실체를 향한
영적인 싸움이 절실할 진데
물리적이거나 세상 적인 법칙에 동요하여
주권행세 하는 것은
크게 삼가야할 일임을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은

작금의 이 나라와 교회에
혀로서 망케 할 사단의 역사가
크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Comment : 3,  Read : 30,  IP : 219.250.177.239
2004/06/20 Sun 10:43:30


복음의메아리  So be it. 06/29 10:40:33 
복음의 메아  Amen. 06/29 10:39:25 
갓맨  갈6:8에 의하면 사람의 모든 활동은 1)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행위와 2) 그영(the Spirit)을 위하여 심는 것 두 가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 날에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두고 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06/22 00: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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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스트레스와 핏방울   


십자가 지시기 직전의 게세마네 예수님의 기도는
피의 땀방울로 적셨다.
이는 십자가 처형 앞에서 육체의 강한 반발적 저항에 부딪쳐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제어하기 위한 성령의 기도에 의하여
육체가 깨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오실 인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많은 간고를 겪었다고 하였다.
육체로부터 오는 수많은 간고는
육체의 강한 스트레스를 일으켜 결국 육체를 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자 역시 이러한 질고를 익히 아는 자라고 하였다.

하여 인자의 외모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이르기를
마른 땅에서 나는 줄기 같고,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어,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면이 전혀 없었다고 하였던 것이다.(사53:1-3)

주님의 공생에는 바로 이러하였고
바울을 비롯한 12제자들 모두 한사코 이 길을 갔던 것이다.
이어 초대 성도들 또한 이 길을 외면치 않았음을 성경과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이후에 성도 된 우리들도 이 길로 옮겨져야 마땅한 것이다.
특히 지도자의 무리는 뭇 성도에 앞장을 섬이
그 직분인 것이다.

이러함에 비추어 볼 때 현대는 과연 어떠한가!
지도자들은 지도자들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육체의 강한 저항에 못 이겨
성도의 참 본분을 망각한 채
제어되지 못한 육정의 발로가 폭탄처럼 폭발하여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짐승은 생존적 본능에 의하여
자신의 육체적 스트레스를 제어하지 못하고
항상 그 스트레스를 몸밖으로 노출하여 해결하고 만다.

이러함을 제어하지 못하는 우리들이라면
이 짐승과 별반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이 문제에 대하여 엄히 권하고 있는 것이다.(벧전2:11)

그러나 현대의 교회는 이 영적 싸움에서
밀리거나 패하거나 양보하는 악한 일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전국 도처에 비일비재하다.
하여 현대교회에 문제인 도덕성과 부패성과 타락상들에 대한 지적과
올바른 회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 이상은 잠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함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교회에도 아직 이런 반듯한 목소리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주께서도 바로 이 목소리를 이스라엘을 향했다는
그 이유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셨던 것이다.

말세를 당한 이즘에
이제 의식 있는 성도라면 주님을 본받아 이 목소리를 아낌없이
한국교회로 향해야 할 때인 것이다.

또한 이 와중에 우리가 분별해야 할 것은
같은 목소리라도 바리새 적인 교회도 이를 빙자하여
참다운 목소리의 흉내냄 일 것이다.
 
  Comment : 1,  Read : 31,  IP : 219.250.177.239
2004/06/19 Sat 14:28:08


겨자씨  우리 안에 참된 생명으로 오신 그리스도(골3:4) 이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그분 자신만이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므로.. 06/21 18: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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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강해설교)   



(본문)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계10:9-11-

본문은 이 작은 책에 대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그 성질과 효능과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성질은 입에서는 달고 배에서는 쓴 것이며
효능은 세상이며 목적은 증인된 삶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먹으면 그 입에서는 단맛을 내고 배에서는 쓴맛을 내게 하는
효력을 지닌 책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꿀의 단맛에 비유가 되어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이 꿀이 아무리 달아도 영의 꿀이므로 영으로 그 영의 입으로 먹는 것으로
말씀을 깨달을 때에 영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은 깨달아 먹는 것이지만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말씀을 먹는 양도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받아먹은 책은 믿음의 성분을 가진 책으로
영의 책이자 영의 음식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의 음식을 먹게 되면 확실한 믿음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믿음의 필요성과 활동성은 세상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이 믿음의 활동성은 영의 입으로 말씀을 먹고
그 말씀대로의 실천하는 것으로 이때에 그 영육은
아주 쓴맛의 고통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배에서는 쓰게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깨달아 먹고 소화를 하게 되는데 이 소화는 곧 말씀에 대한
실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은 먹고 소화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서의 우리는 믿음의 소화불량을 면치 못하여 늘 우리들의 허물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소화불량의 처방 약은 회개로만 치료 가능케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믿음의 목적은 복음의 증인된 삶을 요구하는 것으로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주신 믿음의 은사를 따라 그 목적을
성취한 사도 요한의 모범, 또한 후세에 우리들에게까지 동일한
이 믿음의 은사를 각자가 깨달을 때 주시기 위하여
미리 준비된 것이기도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말씀을 접하는 오늘의 저희들에게도
올바른 깨달음이 있어 그때 사도 요한에게 주신 강력한 믿음의 은사가
저희들의 입에도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
 
  Read : 32,  IP : 219.250.177.239
2004/06/26 Sat 12: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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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신앙!

예수님을 비롯한 구약의 선지자들과
사도 바울을 비롯한 12제자들 그리고 초대성도들은
광야 신앙을 하였다.
출애굽의 역사도 광야로부터 시작이 되었고
주님의 영적 출애굽의 역사도 광야로부터 시작이다.

이후 이어지는 주 재림 때까지
참 성도들도 역시 광야 신앙을 하여야 한다.
이 광야야말로 바로 우리들이 거해야만할 필한 신앙의 장소인 것이다.(계12:14)

우리들에게 이처럼 소중한 이 광야!
지금 그 광야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가
그곳에서 과연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신중하게 다시 한번 뒤돌아보아야만 될 일이다.

이 광야를 잃어버리고 하는 신앙은
666의 신앙에 접촉된 자신의 신앙상태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현대교회는 바로 이 광야를 잃어버린 위기의 교회로서
서 있는 교회가 부지기수임을 알아서
우리의 개개인은 과연 어디에 서 있는지 자신을 속임 없이
진솔하게 되돌아보고
광야에 서 있는 교회로 돌아서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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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전도

저는 우리 동네 수학교사로서 정년 퇴직을 하고
쉬시는 분과의 교제가 있어
틈나는 데로 복음을 소개하였다.

어느 날 이 분이 모 교회에 출석한다는 말씀을 듣고
함께 기뻐하였다.
두 주일이 지나서 나는 이 분을 만나
조심스럽게 교회에 잘 다니시는지 안부를 물었다.

대답은 너무 의외로 교회 시마이(졸업) 할란다는 것이다.
나는 의아해서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구역 예배에 참석하자고 해서 마지못해 갔더니
다과와 떡 내놓고 시시콜콜 하는데
억지로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좀 믿어 보려고 했는데 너무 성가시게 하여
이제 교회 시마이 하련다고 한다.

나는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할지 앞이 캄캄했다.
불신자로서 교회 나간지 한 주만에
억지로 구역예배에 참석케 하다니
참으로 기가 막히다.

교회가 이래놓고 수 차례 방문하여 교회에 나오라고
권면 하더니 요즘은 뜸하다는 것이다.

이 분은 평소 혈압 높고 건강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한 알에 만원이 더하는 비싼 약을 매일 복용하는 처지다.
말수는 적으나 늘 심리적 압박에
내적으로 괴로움이 있으신 분이다.

이런 애로가 있으신 분에게 교회가
이처럼 무분별하게 접근을 하다니
참 기가차고 기가 찬다.

오늘날 교회가 과연 무엇을 얻으려고 이처럼 열심인가?
영혼인가?
조직화인가?
정말 다시 한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주의 은혜로 전도의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교회의 이러한 형태에 대한
저의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결론으로 이들은 빗나간 전도의 일군이요 교회인 것이다.

Read : 22,  IP : 219.250.177.239
2004/07/01 Thu 0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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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주는 교훈   



전 올1월에 구정을 늑막염으로 병원에서 보냈다.
중간 노란색 염증을 큰 콜라병 1병 이상을 뽑아냈다.
퇴원 후 약을 6개월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늑막염은 결핵균에 의한 것으로
폐에 들어가면 전염성이지만
늑막에 들어가면 비 전염성이란다.

의사는 약이 독하기 때문에 충분한 영양보충을 하면서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정도 완치도 되었다 싶은 마음에
4개월 복용하고 지금은 복용 중단한 상태다.
정말이지 약이 독해서 먹기가 싫은 이유에서이다.

병이 독할수록 약도 따라서 독한 것처럼
신앙인인 우리를 향한 주님의 처방전도 매우 독하기는 같다.
영 죽을병에서 건지시는 약이니
독함에는 그 이상이 없을 것이다.

다윗이 간음 병이 났을 때 주의 손이 그대로 있었다면 다윗은 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단 선지가 주의 독한 약을 가지고 가서
다윗에게 주니 다윗은 겸손히 받아먹고
약의 씀에 의한 눈물에 침상이 뜨고 눈이 다 멀어질 정도로
식음을 전폐하고 쓰디쓴 눈물을 흘리고 마침내 살아났다.

주의 말씀은 한없이 쓰면서도 동시에 또 한없이 단맛인 것이다.
주의 경고는 병든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처럼 쓴맛의 작용이 우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도 성령을 따라 약을 좀 지어서 게시판(기독신문)에 던졌더니
쓰고 지혜의 단맛을 내는 경우도 엿보인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멋이 아닐 수가 없다.
난 이래서 그리스도인이 너무 좋다.

그러나 쓴 자체와 전달자만 보고
약의 제조자이신 주님의 성령을 무시하고
쓸데없는 지랄병을 더하는 사울 같은 이도 있다. 
난 이런 그리스도인이 너무 싫다.

주안에서 나의 싸움은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이런 지랄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Read : 18,  IP : 219.250.177.239
2004/07/01 Thu 14: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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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 질투 안 하십니까?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주님 너무 멋지십니다. 라고 하고 보니
하나님께서 섭섭하실까 싶어
이어서 하나님 너무 멋지십니다. 라고 했다.

잠시 후에 생각해보니 지금은 성령시대인데
성령님을 그만 쏙 빼놓음에 죄송해서
성령님 질투 안 하십니까? 라고 했더니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질투 안 한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령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범죄와 우상 섬김에 대하여는
무섭게 질투하시는 분이심을 새삼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현대교회 안의 심각한 우상은 도덕과 윤리와 인기이다.
특히 도덕과 윤리를 먼저 생각하는 설교와 목회
한국교회에 있어서 병적이다시피 이 일에 앞다투어 나가고 있다.

모 단체에서는 빠리의 나비부인 이라는 책으로
조 목사의 간음에 대하여 도덕적 비판으로 접근하고 있다.
생각지도 않은 이 책을 무료로 보내어 주어서 대충 보았다.
저자인 정귀선 아줌마도 이상하다.
성도로서 걸레 만 못한 이 따위 책을 왜 쓰는지
답은 뻔하다.
이 아줌마는 원래 인기를 먹고사는 직업인 오페라 가수인지라
인기 우상에 병듦이다.
이 책의 쓴 목적도 자신의 인기를 위한 것이다.

나는 조 목사의 성경왜곡적 측면에서 비판하고 투덜거리지
그 외 다른 면에서는 없다.
언젠가 여의순 조 목사 측근에서 나를 고발하겠다고
인터넷상에서 공개 발표 하길래 그러시라고 저의 인적상황을 자세히 올려주었다. 
그 후 카나다에서 저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 조 목사에 대한 비판의 글에 동감한다는 등
그러나 저의 신상에 대하여 조목 거리는 내용이었다.
통화 후 발신자 표시에 확인해보니 지역번호 02다
카나다에서 날아온 전화 같지도 않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도덕과 윤리를 앞세우는 목회와 신앙도 우상이요.
도덕적으로 남을 평함도 우상이다.
인기로 자신의 입지를 굳힘의 시도도 우상이다.

근래 기독T.V에서 강의가 한창인 장 00목사도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인기적인 발언이 코메디언 빰친다.
한국교회는 지난 시절 부흥강사들의 코메디 설교의 잔재에서
깨어나야 한다.
현실이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지난 시절 코메디 강사 치고 현재 제대로 목회 하는 양반 드물다.

한국교회 안에 도덕 윤리 인기의 우상을 향한
성령님의 대단하신 질투를 느껴야 할 것이다.

Read : 25,  IP : 219.250.177.239
2004/07/02 Fri 07: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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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석 이단정죄는 꺽인 가지들   



그동안 한국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각색병자와 귀신을 쫓는
이초석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하며
최면술 등의 귀신의 역사라 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교회에 시기를 받은 그는
더 이상 한국교회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향하고 있다.
남미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 등
북미 카나다
동유럽 러시아 우즈 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
남 아프리카 공화국 아프리카 가나
아시아 인도네시아 몽골 인도 일본 등

수많은 대형집회의 현장에서 귀신이 떠나고 각색 병든 자가
성령의 기적으로 나음을 받았다.
최근 인도 집회에서는 운집한 사람들의 밀침에 의하여
단상이 무너졌고 피곤에 지친 이 목사는
옆 사람을 의지하고
나는 피곤에 지쳤으니 성령께서 역사 해 달라는
애타는 호소는 눈시울을 젖게 하는 감동 그 자체이었다.

한국교회에 시기를 받은 그를 주님은
이방세계로 이끄심이다.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로 시기를 받음은
본방 이스라엘은 그 가지가 꺽이우고
이방 돌 감람나무 가지를 참 감람나무에 접붙힘을 위한 것이다.

이러함의 역사가 이제 한국교회에도 나타난 것이다.
회개하라! 한국교회여!
이제 더 이상 이초석 목사를 이단이라고 정죄하여
스스로 주의 가지에서 꺽이움을 받아 버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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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4 Sun 08: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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