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85회 - 힐라스테리온(화해 장소)
에세이
청지기 , 2022-06-03 , 조회수 (359) , 추천 (0) , 스크랩 (0)



  요즘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들이 가족의 일부로 여겨지며 정서적으로 서로에게 의지합니다. 그러나 사람과 동물은 한 가지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을 경배하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고고학이 발달했어도 역대로 동물이 신을 경배한 흔적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원시 시대부터 수많은 신들을 섬겨 왔습니다. 현재도 일본에는 약 8만 개의 신이 있고, 힌두교에는 놀랍게도 약 3억 개가 넘는 신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창조 시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네샤마’(숨)가, 사람 안에 들어와  사람의 영이 된 것에 기초합니다(창 2:7, 잠 20:27).

 

  한편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시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경배하려면 특정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막 안의 지성소, 더 구체적으로 시은좌(mercy seat)라고도 하는 언약궤 위의 속죄 덮개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 언약궤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어떤 이는 언약궤가 예루살렘의 황금돔 밑에, 또 누구는 에티오피아의 한 성당 안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물질적인 언약궤의 소재가 분명치 않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주님의 주권입니다. 왜냐하면 아침에 누린 아래 본문에서 보듯이, 신약 교회 성도들은 우리 영 안에서 언약궤의 실재로 계시는 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 14:6).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로,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드러내시어 화해 장소로 삼으셨습니다(롬 3:25).

 

  사실 몇 년 전에 위 본문을 대했을 때 회복역 성경이 개역성경의 ‘화목 제물’을 ‘화해 장소’로 바꿔 번역한 것에 대해 약간의 경계심이 있었습니다. 둘은 전혀 다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후에, 다음 몇 가지 이유로 회복역의 번역이 더 원문에 가깝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1) 해당 단어의 원문은 ‘힐라스테리온’(2435)인데, 개역성경도 히브리서에서는 이것을 ‘속죄소’라고 바르게 번역함(9:5), 2) 신뢰받는 신학자들도 “‘힐라스테리온’이 70인 역에서는 성전 지성소의 언약궤의 뚜껑을 지칭하는 전문어”(김세윤), 3) “로마서 3:25과 히브리서 9:5에서 사용된 ‘힐라스테리온’은 속죄단(贖罪壇)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변종길)고 말함. 4) 한편 요한일서 등에서 쓰인 화목 제물은 힐라스모스(2434)로서 다른 단어임(요일 2:2).

 

  물론 주 예수님은 그분 자신이 ‘화해 장소’(힐라스테리온)이시자 ‘화목 제물’(힐라스모스), 이시며, 심지어 ‘화해를 시키시는 분’(힐라스코마이)이십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는 ‘화해 장소’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그 말이 그 말 같아서 저도 헷갈렸고, 또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위 본문에 대해 좀 더 깊이 추구한 후에, (부활하신) 주 예수님 자신이 구약의 언약궤, 더 구체적으로는 그 언약궤의 중요 부분인 화해 덮개의 실재이심을 보게 된 것은 큰 긍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예전의 깨달음을 토대로 오늘 아침에 아래와 같이 더 전진된 빛을 제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첫째위 주제를 묵상할 때, 주님은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받고 은혜를 입어서 때맞추어 도움을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라는 말씀이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히 4:16). 그리고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은 우리 영 안에 계신 화해 장소(시은좌)이신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임이 밝아졌습니다. 아래 회복역 각주도 같은 취지로 이것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의심할 것 없이 여기 언급된 보좌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이다. … 그러나 믿는 이들인 우리에게는 은혜의 보좌가 되며, 이것은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 덮개(시은좌)로 상징되었다. … 하늘에 있는 보좌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롬 8:34) 바로 그분은 또한 지금 우리 안에(롬 8:10), 즉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각주 2)

 

  둘째주님은 또한 “우리 모두는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함으로써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고후 3:18)라는 말씀도 이 화해 덮개에 있는 ‘영광의 그룹들’을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존재가 영광 빛으로 적셔지는 문제임을 보여주셨습니다.

 

  1981년 스필버그와 루카스는 <잃어버린 법궤의 추적자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예루살렘 법궤의 행방을 유대 성서학자들의 자문하에 상상력을 동원해 추적했는데, 이집트 한 신전에 보관되었던 법궤가 우여곡절 끝에 미국 고고학자의 손에 넘겨져, 국방성 창고에 보관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진짜 법궤는 지금 거듭난 믿는 이들의 영 안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매 순간 영으로 돌이켜, 그 안에 머물면서, 주님의 영광으로 적셔지는 일만 남았습니다(히 2:10). 오, 이 어떠한 은혜와 구원인지요!

 

 

 

오 주님, 법궤로서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셔서 화해 장소가 되심을 찬양합니다.

이제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우리의 시선이 당신에게만 고정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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