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83회 - 여호와께 아들을 빌려드린 여인
에세이
청지기 , 2022-05-20 , 조회수 (279) , 추천 (0) , 스크랩 (0)


  주기도문에 ‘나라이 임하옵시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을 수도 없이 고백했지만, 그 구체적인 의미를 잘 몰랐을 때 겪었던 일입니다. 예전에 잠시 다녔던 직장에 불교 신자 한 명이 있었는데, 어쩌다가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그 친구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즉, 성경에는 제자들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kingdom)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이 있다고 했는데(마 16:28), 그들이 다 주님 재림 전에 죽었으니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저 말고도 다른 기독교인이 더 있었지만, 그가 이 말만 꺼내면 딱히 반박을 못하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곤 했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의 성취가 육 일 후에 있었던 (변화) 산에서 주님의 변형되심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후였습니다(17:1-2). 아침에 읽고 묵상한 아래 본문도 이러한 왕국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내가 기도한 것은 바로 이 아이 때문이었는데, 
… 그 간구를 그분께서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 아이를 여호와께 빌려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일생 동안 여호와께 빌려드린 아이입니다(삼상 1:27-28).

위 말씀은 한나가 혼을 쏟아 내는 기도로 어렵게 얻은 어린 사무엘을 여호와를 섬기도록 빌려드리며 한 고백입니다. 아침에 이 본문을 묵상할 때, 한나는 왜 이 상황에서 ‘빌려드린다’(lent)라는 말을 썼는지가 마치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저를 성가시게 했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무엇을 빌리신다는 것이 너무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주님을 앙망하며 추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이 단어(7592)에 해당하는 원어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요청하신 이가 되게 함”(let him be asked for YHWH)인데, 이것을 회복역 성경만이 아니라 KJV, 다아비 역, ESV, 웹스터 성경 같은 권위 있는 다른 영어 번역본들도 lent(빌려드린다)라고 번역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이 사사기 시대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였고 이상도 흔하지 않았으며”, 제사장인 엘리는 물론 그의 봉사를 잇게 될 아들들도 “여호와의 저주를 자초하는” 행동을 하는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삼상 3:1, 13). 따라서 한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통치하시는 공식 채널인 아론의 제사장 체계가 거의 궤멸 직전임을 알고, ‘그러면 이 아이라도 빌려다가 쓰셔요’라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한나가 사무엘을 나실인으로 여호와께 빌려드린 것은 일종의 ‘플랜 B’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민 6장 참조).

 

  이렇게 바쳐진 사무엘은 약 3살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을 절대적으로 여호와를 섬겼고, 여호와의 지시를 따라 사사 시대를 왕국 시대 전환시켰습니다(삼상 10:1, 25, 16:13).  그가 사는 날 동안 그의 행동과 생활과 일은 물론 그의 전 존재와 인격이 여호와 하나님과 일치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구약의 예표를 통해 얻은 빛 비춤과 이해를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하고 실천할지를 놓고 주님을 앙망했습니다. 그 결과 다음 세 가지가 제 마음 안에서 만져졌습니다.

 

  첫째, 한나는 애통하며 간절히 기도하여 시대를 전환한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무엇에 대해 애통하며 기도해야 하는지를 놓고 주님 앞에 있을 때, 문득 “애통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마 5:4)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아래 회복역 각주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전체적인 상황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부정적이다. … 하나님의 영광은 모욕당하고, 그리스도는 배척되시고, 성령은 방해받으시고, 교회는 황폐하게 되고, 자아는 부패되고, 온 세상은 악하다.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 대해 우리가 애통하기를 원하신다.”(각주 1)

 

  둘째, 주류 제사장 체계가 제구실을 못했던 구약의 사사 시대는 현재 기독교계가 처한 상황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 이유는 왕이신 여호와의 말을 무시하고 각자가 소견대로 행한 것입니다(삿 21:25). 따라서 ‘지금 내가 하는 이것이 머리와 왕이신 주님이 지시하신 것인가?’라고 끊임없이 질문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참된 왕이 되실 기회를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계 19:16).    

 

  셋째, 서두의 ‘나라이 임하옵시고’는 먼저 하나님의 다스림이 그 사람(혹은 단체) 안에서 방해받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지상 사역 시의 주 예수님 그리고 오늘날 교회 안의 소수의 이기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눅 17:21, 계 2-3장). 장차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주님은 이 이기는 이들을 교두보 삼아 사탄이 통치하는 이 세상 왕국을 끝내고, 그분의 왕국이 이 땅에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계 11:15). 저는 이것이 한나가 사무엘을 여호와께 빌려드렸던 일의  신약의 성취라고 깊이 느꼈습니다.

 

 

 

 

오 주님, 우리로 지금 왕국의 실재 안에 살고,

장차 오는 천년 왕국에서 공동 왕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매 순간 주님과 연합되게 하옵소서!

에세이,사무엘,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