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깨동무>(1967-1987)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월간지가 있었습니다. ‘동무’라는 말은 ‘친구’와 같은 의미이므로, 그 시절만 해도 ‘어깨동무’, ‘말동무’, ‘길동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북한에서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같이 싸우는 사람”의 의미로 쓰인다는 이유로, 요즘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들을 수 없어졌습니다.
‘교회’라는 말도 원래 의미에서 멀어진 사례에 해당합니다. 즉, ‘어느 교회 나가세요?’, ‘다니시는 교회가 어디 있어요?’, ‘오늘 주일인데 교회 다녀오셨나요?’는 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성경에서 특정 건물(예배당)이나 조직(교단)이 아닌 ‘인격체’(유기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전에는 <거듭난 사람들>이 교회이고,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이며,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이 교회(엡 1:23)라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그 무렵 어느 날 성경에서 “교회의 귀”(the ears of the church)라는 표현을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행 11:22). 그런데 아침에 아래와 같은 교회 건축에 관한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전과 달리 많은 느낌과 감상이 제 안에 있습니다.
그대는 베드로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건축할 것이니,
음부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교회는 ‘비밀 중에 비밀 중에 비밀’(삼중 비밀)입니다. 이사야 45장 15절은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말씀하는데, 그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이십니다(골 2:2). 또한 그 “그리스도의 비밀”이 바로 교회입니다(엡 3:3-4, 6). 따라서 ‘교회’라는 용어를 알더라도 그 교회의 실재를 영 안에서 보고 체험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아래에서는 위 ‘내 교회’(My church)가 ‘아닌 사례들’을 먼저 보고, 그다음에 주님께서 ‘내 교회’라고 하실 수 있는 참 교회 모습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끝에서 주님께서 ‘내 교회’를 어떻게 ‘건축’하시는지를 말해보겠습니다.
-“내 교회” : 다음과 같은 것들은 애석하지만 마태복음 16장 18절이 말하는 ‘내 교회’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1) 먼저 ‘성전 건축(헌금)’이라는 말에서의 ‘성전’은 주님이 말씀하신 ‘내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예배당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전(殿)”에는 살지 않으십니다(행 17:24). 참고로 성경에서 성전 개념도 점차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즉 성전은 ‘사십육 년 걸려 지은 돌집’(구약)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의 몸”으로, 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는 성도들 자신’으로 전진했습니다(요 2:19-21, 고전 3:16). 그런데 소속 성도들 중에 똑똑한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곳에서도 ‘성전 건축 헌금’이라는 말이 별 저항 없이 사용되는 것은 이러한 성전 혹은 교회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구약)도 ‘내 교회’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장래에) 건축할 것’(I will build My church)이라고 미래 시제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광야 교회’(행 7:38)라는 표현을 들어 이들도 ‘에클레시아’ 즉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에클레시아’(1577)라는 단어는 아데미 여신을 섬기며 사도 바울을 반대하려고 모인 폭도들(행 19:32)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어떤 문제를 결정하기 위하여) 따로 불러낸 무리’를 가리킬 뿐 그 자체가 ‘내 교회’ 즉 ‘거듭난 믿는 이들인 신약 교회’를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3) 그 외에, 신문 광고를 통해 성도들과 예배당을 팔아넘기는 경우나, 교회 앞에 특정 이름을 붙여 불리거나, 특정 사람(목회자, 전도사, 혹은 장로)이 개척했다고 해서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도 당연히 주님이 주인이신 교회라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 아닌 ‘교회’가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내 교회”에 해당될 수 있는 경우는 바로 다음과 같은 교회입니다.
온몸은 그분(머리)에게서 나온 그 풍성한 공급을 해 주는 각 마디를 통하여, 그리고 각 지체가 분량에 따라 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통하여 함께 결합되고 함께 짜입니다. 그래서 몸이 자람으로써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되는 것입니다(엡 4:16).
위 말씀은 주님을 머리로 하고 거듭난 모든 이들을 그 머리에 붙은 몸으로 삼은 한 신성하고 인간적인 유기체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주님의 몸인 교회는 우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뿐입니다(엡 4:4). 어떤 성경 교사는 이 몸을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의 확대(혹은 충만)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이 몸의 어느 지체를 박해한다면, 그것은 곧 주님 자신을 박해하는 것입니다(행 9:4). 저도 전보다는 이 몸에 대한 인식과 체험이 전진했다고 할 수 있지만, 솔직히 아직도 충분히 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이 몸이 ‘아닌지’에 대한 빛은 분명해졌습니다.
(내 교회를) 건축할 것이니 : 위와 같은 ‘내 교회’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생명주는 영으로서 제자들 안으로 영접되시고, 오순절 날에 지상에 나타난 교회로 형성되시면서 건축되기 시작했습니다(요 20:22, 행 2:1-4, 41-42). 이렇게 지상에 나타난 최초의 신약교회는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행 8:1)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가… 내 교회를 건축하겠다”는 주님의 예언은 이십 세기가 지나도록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아침에 주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건축하신다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안에 다음 세 가지가 깊이 새겨졌습니다.
첫째, ‘내 교회를 건축한다’는 말은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 자신(생명)이 증가한다는 의미이다(골 2:19, 엡 1:23).
둘째, 이것은 우리가 말씀 앞에 나아갈 때, 말씀 안의 물(생명)이 흘러들어와 변화, 즉 우리의 옛 성분을 씻어내고, 혼(생각, 감정, 의지) 안에 적셔지는 신진대사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엡 5:26).
셋째, 생명의 성장과 건축을 가장 방해하는 자는 사탄이며, 그는 우리의 자아를 통해 일한다(마 16:23-24).